Life in the UK

영국의 겨울

by 수리양

영국의 겨울은 어렵다.


영국의 겨울은…. 까지 쓰고 빈칸 채우기처럼 그 뒤에 어떤 말을 써넣을지 잠시 고민했다. 너무 진심이 드러나지 않고 조금은 객관적인 표현이 뭐가 있을까 싶어서다. 영국의 겨울은 한국의 겨울만큼 춥지 않다. 하지만 더 어둡고 더 축축하고 더 으슬으슬하다. 영하 10도를 찍어도 하늘은 새파란 한국과 달리 영상 1, 2도만 되어도 주로 흐릿하거나 비가 오는 영국의 겨울은 왠지 더 춥다.


영국의 겨울은… 조금 가혹하다. 생명체에게 물만큼이나 중요한 해를 앗아가기 때문이다. 아침에는 해가 늦게 뜨고 저녁이 되기도 전에 해가 저버려서 햇빛을 잘 못 보니 우울감이 커지고 비타민D도 필수로 보충해주어야 한다. 하늘은 보통 회색이고 비도 자주 온다. 영국의 겨울은 한국과는 다른 의미의 월동준비를 하게 만든다. 김장도 아니고 수도관을 싸매는 것도 아니다.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한다.


한국에 살 때에는 일기예보를 거의 보지 않았다. 주로 해가 나오고, 비는 장마철에 몰아 오거나 가끔 봄비, 가을비가 내려도 그냥 그런가 보다 신경도 안 쓰고 살았다. 살면서 이렇게 열심히 일기예보, 주기예보를 챙겨보게 될 줄은 몰랐다. 하루에 사계절이 다 있기도 하다는 변화무쌍한 날씨 탓이다. 내가 보기에 옷을 겹쳐 입는 ‘레이어드 룩‘이나 카디건이나 스웨터 등을 허리에 감거나 어깨에 두르는 스타일링은 모두 영국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다. 좀처럼 날씨에 맞게 옷을 입기도 쉽지 않아서 겹쳐 입었다가 벗기도 하고 허리춤에 묶었다가 다시 입기도 한다.


대부분의 주거형태가 아파트인 한국에서 편한 줄도 모르고 당연히 여겼던 것들 중에 하나가 지하 주차장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나도 차도 실내에 있는 셈이다. 그래서 겨울이라고 특별히 월동준비랄 것도 없었다. 스키장등 눈 위를 여행할 계획이 따로 있지 않다면 말이다. 심지어 한국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본 이웃언니는 15층 집에서 미리 원격으로 차 시동을 걸어 실내를 따뜻하게 만들고 쾌적한 상태의 차가 지하주차장에서 기다리고 있기도 했다.


가을이 넘어가면서 영국의 슈퍼마켓 입구에는 월동장비들이 자리를 잡는다. 가장 흔한 것이 눈이나 얼음을 긁어내는 스크레이퍼, 그리고 얼음을 녹이는 디아이서 스프레이캔이다. 자동차 앞유리 덮개도 있는데, 나도 이번에 새로 겨울용으로 다시 하나 장만했다. 원래 가진 것은 사실 여름용 햇빛 가리개였는데 새로 산 겨울용은 조금 두텁고 사이드미러 주머니까지 달려서 사이드미러도 얼지 않고 보호가 된다.


지하주차장이 없는 주택에서 자동차들은 대부분 집 바로 앞 드라이브웨이나 집 앞에 난 길에 차를 세운다. 차고가 있어도 대부분 차고는 창고로 쓰기 때문에 차는 늘 야외취침이다. 그래서 겨울이면 월동준비가 필수가 된다. 일기예보를 보고 밤새 추울 것 같으면 앞유리 덮개를 덮어 두어야 한다. 혹시나 잊어버리거나 혹은 밤의 추위를 뚫고 나가서 장착하는 게 귀찮아서 안 해놓으면 다음날 아침이 힘들어진다.


차가 밖에서 잠을 자면, 차창 외부도 얼지만 내부가 얼기도 하고 습기가 차서 히터를 최강으로 한참을 틀어놓아도 잘 안 보인다. 내부에 생기는 결로 및 김서림 때문에 바쁜 아침을 위해 걸레나 키친타월이나 물기를 긁어내는 스퀴지까지 차 안에 비치하게 된다. 지하주차장이 있었다면 신경도 쓰지 않았을 문제다. 오늘도 맞은편 차 안에 천으로 부지런히 유리창의 물기를 닦아내는 동승자를 본다. 차 안에 상시 준비되어 있는 걸레일터다.


누군가 그랬다.

영국사람들은 왜 불편을 고치질 않느냐고. 생활에 불편이 느껴지면 개발하고 개선하면 되는데 왜 안 하고 불편한 대로 사느냐고.


그런 모습은 생활의 많은 부분에서 느껴지는 것인데, 개선보다는 수용이 익숙한 곳이라는 느낌이 있다. 어딘가에서는 이것이 종교의 영향이라고도 했다.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듯 삶의 수많은 굴곡을 헤쳐나가기보단 잘 안고 가는 것이다.


나도 영국살이를 하며 많이 내려놓게 되었는데 환경과 문화의 영향이 그렇게 무섭다.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한국과 달리 차분하고 조용하게 팩폭으로 기선제압하는 영국에서 큰소리쳤다간 본전도 못 건진다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바꿀 수 없는 것에 힘을 빼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은 내가 뒤늦게 종교를 갖게 된 후의 자세변경이라고도 할 수 있다. 안되면 되게 하는 파이팅 넘치는 패기로 부딪히기엔 너무나 견고한 영국의 성벽이다. 그런데 그것은 비단 영국만의 성벽이 아니라 우리의 삶이 워낙 그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 같다. 이것도 나이 듦과 함께 찾아온 변화라면 그럴 수도 있다. 어쨌든 어려서는 치열하게 들이받으며도 살아봤고 이제는 유연하게 받아들이며 살게 되었는데 그때는 그것이 맞았고 지금은 이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