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크리고 앉아 꽃을 피우자

영원히 모르겠지만 영원히 궁금할 것 같은..

by 청국

“아빠, 아빠는 할머니가 그냥 무조건 좋았어요? 다 커서도 할머니 보면 무조건 기분이 좋고 그랬어?”

어느 날, 친정아버지에게 이런 질문을 했더니 아버지는 왜 그런 걸 묻냐고 하셨다.

“아니.. 나는 그런 걸 모르니까 궁금해서…”

아버지는 “그런 걸 왜 몰라, 너도 참..” 이라며 한심하다는 말투로 이야기하셨다.

나는 이런 주제가 나올 때면 늘 과거를 잊는 듯 행동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에 또 한 번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아니, 나는 엄마가 없었잖아!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아버지는 그제야 멋쩍은 듯이 “그냥.. 뭐.. 모성애가 대단한 거지…” 라며 얼버무리셨다.


아이들을 키우노라면 아이들의 나에 대한 절대적인 사랑과 신뢰, 의지함에 놀랄 때가 있다.

주양육자인 엄마인 나를, 세상의 전부인 양 여기는 아이들의 모습에 위로받을 때도 많고 나만 찾아대는 아이들의 모습이 때로 육아가 힘들 때면 버거울 때도 있다.

육아가 버겁고 너무나 힘들 때면 도망가고 싶은 맘도 들 때가 있다.

평소라면 너그럽게 받아주었을 아이들의 모습에 화를 버럭 내기도 하고, 잘못된 훈육을 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화를 내고 혼을 내면 울먹거리며 서럽게 울던 아이들은 5분도 지나지 않아 또 나에게 안기며 해맑게 웃는다.

‘엄마’란 아이들에게 어떤 존재일까?

‘엄마’라는 단어는 아이들에게 어떤 느낌일까? 그리고 그 느낌은 커서도 영원할까?

이런 질문을 남편에게도 한 적이 있는데 말수가 적은 남편은 “좋은 느낌이지.”라는 짤막한 대답만 내놓았다.


나는 마흔이 넘은 지금도 ‘엄마’라는 존재가 궁금하다.

그리고 ‘엄마’라는 존재가 그립다.

나에게 ‘엄마’라는 존재가 있었다면 나의 지금 모습은, 인생은 달랐을까?

‘엄마’가 없었던 어린 시절의 나는 어땠을까?

그 시절의 나에게로 가서 ‘나’를 위로해주고 싶다.


이런 쓸데없는 자기 연민이 ‘엄마’라는 단어 앞에서 자꾸 생긴다. 그리고 날 연민 속에 빠뜨린다.

나는 ‘엄마’라는 단어가 주는 포근함도, 그 절대적인 사랑도 영원히 모르겠지.

하지만 그래도 호호 할머니가 되어서도 궁금할 것 같다.

엄.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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