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0명인 신용불량자가 트위터를 시작한 이유

고립된 방구석 룸펜의 사회적 조난 탈출기

by 방구석 룸펜

최근에 트위터를 시작했다. 10년도 더 전에 분명히 아이디를 만들었던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기억이 나지 않아서 다시 새 아이디를 만들었다.

생각해 보면 나는 평생 SNS와 거리가 먼 삶을 살아왔던 것 같다. 이유가 짐작되시는지? 내 닉네임 '방구석 룸펜'을 보고 대다수의 사람은 감이 왔을 것이다. 그렇다. '사회적 연결망'으로 이어질 친구가 없기 때문이다.

옛날의 국민 SNS이던 싸이월드부터 시작해서,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까지... 수 년이 멀다하고 명멸해 온 소셜 미디어에 이제 와서 계정을 만들었다는 고백으로 서두를 여는 이 글을 읽으면서, 분명히 의아하게 여길 사람이 적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한 반응이다. 사실 나조차도 좀 어이가 없을 지경이니까. 인스타 릴스나 틱톡 같은 숏폼 컨텐츠가 현대인의 뇌를 '팝콘 브레인'으로 만들고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는 시점에서, 굳이 SNS를 하겠다고 한다면 아마도 십중팔구는 말리려고 할 게 틀림없다.

그런데 내가 트위터를 시작한 이유가 사실은 뇌 기능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면 믿겨지시는가?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사회적 활동을 완전히 멈추면 심각하게 인체에 해로운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해외 유수의 대학에서 연구된 바가 있다. 고독과 사회적 고립감이 해마를 위축시키고 전두엽 기능을 저하시키는 등등, 뇌에 해로운 이유를 줄잡아서 오백 가지는 댈 수 있지만...

나를 포함해서 아무도 관심이 없을 뇌과학에 대한 얘기는 이쯤에서 접어두고, 서론이 더 길어지기 전에 진실을 말해야겠다.

뇌 기능 어쩌고는 결국 핑계에 불과하고, 실은 사람이 그리워서라고 한다면ㅡ 상식적인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마 퍽이나 우습게 들릴 것이다. ('아니, 찾을 곳이 없어서 트위터에서 친구를 찾아?'라는 독자의 내면의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것 같다.) 그래도 할 수 없다. 나는 자타공인의 '친구 0명'이자, 아웃사이더 중에서도 윗질에 속하는 상(上)아싸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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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땅에 헤딩하는 나 같은 초보 트위터리안들이 마주하게 되는 가장 큰 난관은 팔로워가 없다는 것이다. 트위터를 시작하고 꼭 3일째 되는 날까지, 내 팔로워 수는 20명을 넘기지 못했고,
추천 탭에 쏟아지는 수많은 피드들이 무색하게 무슨 글을 써도 벽 보고 혼잣말을 하는 느낌이 들었다.

ChatGPT 앱을 켜고 인공지능에게 물어봤다. GPT로부터 10여초 만에 돌아온 답변에 따르면, 새로운 트친들과 교류를 늘리고자 하는 초보들에게는 #트친소 태그를 달고 글을 쓰는 게 국룰이라고 한다.

검색해 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처럼 친구를 찾고 있는 트위터리안들이 잔뜩 있었다. 그 중에도 몇 가지 눈에 띄는 키워드가 있었으니, #일상계_트친소, #우울계_트친소... 같은 활동 계통별(?) 태그였다.

'그래. 아무래도 공통점이 많아야 서로 대화가 통하기 쉽겠지.'라는 생각에, 별 생각 없이 우울계 태그를 달고 자기소개를 입력했다.

[최종 학력은 고등학교 중퇴. 신용불량자에 히키코모리 경력 6년.]

내가 생각해도 참으로 보잘것 없는 이력이었다. 그렇지만 ㅡ 이제껏 현실 세계에서 평생을 감추고 살아온 바에야, 인터넷 상에서라도 솔직해져 보자는 마음에 ㅡ 백스페이스를 누르지 않고, 그 대신에 등록 버튼을 눌렀다.

하지만 그때는 몰랐다. 이 행동이 나를 그 뒤로 며칠 간 혼잣말 지옥(?)에 가두게 되는 첩경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다.

내가 입력한 자기소개가 너무 매운(?) 맛이 강해서였을까? 내 트친소는 조회수가 100에 육박할 때까지도 그 흔한 좋아요 하나 찍히지 않았다.

누군가 먼저 찾아오지 않는다면 별 수가 없다. 이쪽에서 찾아가는 수밖에는.

그 뒤로 나는 트친소를 올린 다른 사람들의 프로필을 돌아다니면서, 열심히 하트를 찍고 팔로우를 누르는 '선팔 요정'이 되었다. 그러나 실망스럽게도 나의 용기를 낸 선팔이 맞팔로 돌아오는 비율은 형편없었다. 아마 대략 15~20% 내외였을까?

그리고 그 주된 원인 중 하나로, 내가 무심코 적은 우울계 태그가 문제가 되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이미 며칠의 시간이 더 흐르고 난 뒤였다.

다른 사람들의 트친소를 숱하게 구경하고 나서 깨달았다. 일상계나 독서계처럼 평화로운 트위터 생활을 원하는 유저들에게 있어서, 우울계는 일종의 주홍 글씨로 작용하고 있었다.

[우울계, 멘헤라는 사절합니다.]

매일 있었던 일, 그날의 식사 메뉴, 영화 감상문 등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올리는 유저들의 트친소 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멘트였다.

하물며 그것이 내 특이한(?) 프로필과 결합되었을 때의 파괴력이란 상상만 해도 무시무시했다. 아마도 많은 트위터 유저들의 눈에 비친 나는, 하루 24시간 동안 타임라인에서 징징거려도 모자란, 극도로 성가신 사람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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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정작 진실은 그것과는 정반대였다.

나는 항우울제만 5년 넘게 먹고 있는 만성 기분부전증 환자다. 그것도 최대 용량으로 말이다. 그런데 인터넷을 하루이틀만 해본 것도 아닌데, 막상 내 우울한 감정을 타인에게 호소하는 글을 써본 기억은 지금까지 없다. 살면서 남한테 내 문제를 하소연한 적도 없다. 엄마한테 짜증이나 좀 내봤을까.

그렇지만 남의 고민은 많이 들어줘 봤다. 내가 특별히 이타적인 인간이라서 그렇다기보다는, 절실하게 다른 사람들이 고민하고 있는 것들로부터 어쩌면 내가 가진 문제의 해결책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절박함 때문이었다.

아마도, 이 모든 것의 시작은 오래 전 사춘기에 내 안의 자의식이 절정에 치달았을 때였던 것 같다. 어째선지 모르겠지만, 나는 어느샌가 모든 일상에 우울이 배경처럼 스며들어 있는 상태가 되어서, 이따금 우울하지 않을 때 내가 느끼는 기분은, 마치 라디오에서 DJ가 하는 멘트나, 서로 다른 시간대의 프로그램들 사이에 놓인, 전환점에서 잠시 틈입하는 포오즈(pause)에 가까웠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ㅡ 중요한 일에 한참 바쁘게 몰두해 있다가, 그 자리에 있다는 사실조차 잊고 있던 손님을 다시금 떠올리듯이 ㅡ 한동안 마음 속에서 잊고 있던 감각을 온 몸의 세포와 근육들 사이로 다시 불러오는 느낌이라고 해야 될까?

아무튼 간에 그 뒤로 십수 년에 걸쳐서 나의 우울감과 나를 서서히 구분할 수 없게 되면서, 어디까지가 임상적인 우울증이고, 뭐가 단순한 우울감인지 구분하는 일 자체가 내게는 무의미해졌다.

내게 있어서 우울은 말 그대로 존재의 조건 그 자체였다. 워낙 익숙한 것이기에 구태여 누구한테 토로할 성질의 것도 아니었다.

이런 감정이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우습게도 우울감 때문이 아니고,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정신과 병원에 찾아가게 한 범불안장애 때문이었다. 우울이 나라는 정체성의 뿌리에 달라붙은 곰팡이라면, 불안은 계절병처럼 더 직접적인 증상이었다. 내가 범불안장애라는 병명을 모를 때부터 불안은 끈질기게 내 삶을 갉아먹고 잠식해 왔다.

나와 면담하던 정신과 의사는 내가 자살 사고가 심각하다고 말했다.

"용케 버티셨네요."라고 했던가?

그 말을 듣고 나도 모르게 "네?"라고 되물었다. 세상에.

'죽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나요?'

이것이 그 순간 나의 마음속 외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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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에게 있어서 우울감이란 그냥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원치 않게 갖게 된 삶의 동반자와도 같다고 할까.

살다 보면, 나와 비슷한 상황에서도 대책 없는 용기와 추진력을 뿜어내는 낙관주의자가 부러울 때가 종종 있다. 아니, 사실 대다수에 가깝다고 말하는 편이 더 진실에 부합할 것이다. 게다가 '사는 동안 그 사람의 우울과 행복을 결정하는 주 기질은 대부분 유전적 요인에 의해 결정된다'는 근거가 점차 우세하고 있는 현재의 트렌드도 개인적으로 그다지 마뜩치는 않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에도 불구하고 되도록이면 결정론의 늪에 빠지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긴 하다. 그동안 살아 오면서 '우울한 현실주의 (depressive realism)'가 나를 구한 경우도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벌써 10년 이상 나를 따라다니고 있는 지긋지긋한 불안장애가, 사실은 원시 시대의 생존을 책임졌었던 대뇌의 편도체와 관련이 있으며, 현생 인류 중 누군가는 확률적으로 지나치게 고성능(?)인 위험 감지 레이더를 타고나면서, 이는 ㅡ 자연 환경에서의 생존 적합도와 관련이 있는 ㅡ 종의 다양성 측면에서 진화적으로 필수 불가결했다...는 해석 또한 내 마음에 적잖은 위안이 됐던 기억이 난다.

누가 뭐라 하든지 간에, 적어도 내게 있어서는 우울이 삶의 기본값이라는 생각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하지만, 동시에 이 한계를 붙잡고 살아나가는 것 자체가 나라는 인간이 벌일 수 있는 하나의 숭고한 고투이자, 이 우주 속에 떨어진 나의 생에서 주어진 역할을 가장 충실하게 완수할 수 있는 길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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