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에 떠 있는 동전에서 한 면만을 골라야 한다면
어느 유신론자의 인간 본성에 관한 소고
세상에서 가장 비천한 욕망과 고귀한 의지가 동시에 교차하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끊임없이 왕복하고 있는 영혼의 진자가 ㅡ 극단적인 선과 악이라는 ㅡ 어느 한 극단에 치우쳐진 순간에라도, 그 모든 것은 필시 우리를 이루고 있는 사념의 파편들이다.
만인이 우러르는 성자와 그 대극에 서 있는 극도의 멸시를 받는 악한이, 어쩌면 놀랍도록 유사한 본성의 토양을 공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때로는 적잖은 위안이 된다.
그렇다면 그 중의 어느 것이 진짜 모습인가? 과연 인간이라는 고유의 존재로부터 특정 속성만을 추출, 분리해 낼 수 있는가?
이처럼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에서 본성을 구분해 내려는 일만큼 무의미한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선의와 악의는 종종 다른 상황에서 발현되는 똑같은 본성의 양면이자, 어떤 프리즘을 거치느냐에 따라서 그 모양이 달라지는, 정동의 샴쌍둥이처럼 와닿기 때문이다.
오레오처럼 중간에 크림으로 달라붙은 두 겹의 과자를 억지로 떼어내는 과정에서, 인간에게 잠재된 복잡성이라는 특징은 쉽게 휘발되고 만다. 인위적으로 힘을 줘서 반으로 쪼개진 오레오는 더 이상 오레오가 아니다. 위아래로 크림이 묻은 초콜릿 과자일 뿐이다.
이렇듯 다층으로 퇴적된 인간이라는 존재를 오로지 한 방향으로만 단정하려는 시도는 일종의 신성에 대한 모독으로 느껴진다. 모종의 질서를 따라 인간에게 선천적으로 부여된 이런 불가해한 본성을, 현대의 실증적 렌즈를 들이댐으로써 원자 단위로 쪼개고 산산이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나의 오랜 지론이다.
모든 사람은 타인이 영원히 알아줄 길 없는 자기만의 고통과 좌절을 껴안고 살아간다. 그런 인간에게 있어서 모순은 필연적이며, 불가분의 개념이나 다름없다. 내가 인간인 이상, 조금 모순되더라도 그게 어떻다는 말인가? 비록 뻔뻔스럽지만, 나는 평소에 중고거래 웃돈 만 원 앞에서 한없이 추해지다가도, 새벽에 인터넷 게시판에서 읽은 익명의 사연에 눈물 흘릴 수 있는 나로 있겠다.
혹시 아는가? 이 다음에는 언젠가 당근 앱의 알림 창이 터져 나가더라도, 만 원 대신에 5천원만 받을지도 모르잖는가. 블랙박스는 블랙박스인 채로, 미지의 영역으로 남기는 것. 어쩌면 인간에게 허락된 최선의 지혜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