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몸을 던져 베팅하는 정면 승부의 미학에 대하여
'온라인 상의 인간관계는 오프라인보다 반드시 열등한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둘 다 똑같은 사람들이 교류하는 것이고, 관계에 기만 없이 임하는 진심을 가졌다면, 온라인이 오프라인을 궁극적으로 대체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마도 내가 이런 생각을 머리속에 떠올린 건 나 자신 스스로가 사회성 낮은 얼뜨기인 탓일 게다. 굳이 온라인 상의 관계를 필요로 하지 않는, 현실의 인간관계만으로 충분한 인싸거나, 또는 양쪽 모두에서 이미 충만한 경험을 얻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떠올리지 않을 테니까.
오프라인은 보통 온라인 속의 관계보다 더 많은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 친구의 친구. 친구의 애인. 친구의 부모님. 그리고 그들 각각에서 파생되는 중력이 낳는 복합적인 의미의 자장들까지. 온라인 속에서는 오로지 나 자신만 생각하면 된다면, 오프라인에서는 그 사람을 둘러싸고 있는 현실이 함께 따라온다.
그래서 타인과 관계를 맺음에 있어서 감수해야 할 일들의 체급이 다르고, (그로써) 그 관계에 걸어야만 되는 판돈이 다르다. 말하자면 백척간두의 낭떠러지를 앞두고 서로를 긴 밧줄로 느슨하게 얽어매고 있는 것 같은 사이가 된다.
의미론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바로 이 물리적인 실체가 특정 사람이 인간관계라는 게임에 임하는 자세를 다르게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뇌리를 스쳤다. 그 당사자가 좋건 싫건 간에,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진지하게 자세를 고쳐앉고, 상대방의 영혼을 직시하도록 말이다.
온라인 관계가 오프라인 관계에 가까워질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으로 진심의 존재를 전제했지만, 그 진심이란 과연 무엇인가? 적극적으로 내가 가진 자원의 일부를 투여해서라도 상대방(과의 관계)을 아끼는 마음? 비슷한 상처를 공유하는 존재들끼리의 연대? '나는 당신을 해치지 않겠다'는 무해함? 상대에 대한 있는 그대로의 존중? ...... 뭐가 됐든 간에, 이들은 무리를 이루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상 아예 무관하기가 힘든 감정들이다. (어쩌면 처음에는 그럴 의도가 없었을지라도 말이다.)
비단 인터넷뿐만 아니라 펜팔 등 물리적 실체가 없는 관계를 평가절하 하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특징 중의 하나는, 인간관계를 제외한 다른 비물질적인 것에 대해서도 보통 어느 정도의 냉소주의가 자연히 따라온다는 점 같다. 물론, 이는 해당 당사자의 방어적인 삶의 태도와도 연관이 있다. 어쩌면 이들은 냉혹한 삶의 이치를 저절로 달관했다기보다도, 더 이상 상처받지 않기 위해 가시를 세우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실은 이건 내 개인적인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다. 그 누구에게도 마음을 허락하고 곁을 주지 않으면 타인에 의해 공격당할 염려도, 배신을 걱정할 필요도 없으니까.
그러나 인체의 면역 세포가 오작동해서 건강한 세포를 잡아먹듯이, 지나친 자의식은 스스로의 정신에 독이 된다는 것이 내가 수년 간의 히키코모리 생활 끝에 깨닫게 된 경험칙이다.
인간은 타인과의 교류를 멈추는 바로 그 순간부터, 바로 다름 아닌 자기자신의 손에 의해 서서히 내부가 붕괴되고 자아가 피폐하게 되어 간다. 무언가(외부와의 소통을 멈춘 자아)가 풍선처럼 비대하게 부풀어 오를 때는, 거기에 일부러 구멍을 뚫어서라도 조금씩이나마 압력을 빼줘야 한다는 물리적 법칙은 늘 유효하다.
타인에 대해 얼마만큼의 진짜 자아를 노출시키도록 스스로 허락할 것인지는 결국 본인에게 달려 있다. 그러나 최악의 경우 스스로에 의해 가공되고 편집된 환상 속의 관계(자폐적 망상의 세계)로 만족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진짜 인생의 맛을 보고자 한다면, ㅡ 인생이 우리에게 주는 삶의 정수를 모조품이 아닌 진짜로 가치 있는 것의 형태로 얻고자 한다면 ㅡ 때론 적극적으로 인간이 리스크를 감수해야 함은 필연적일지도 모른다.
만약에 내게 누군가 자기 자신을 진짜로 세상에 드러내며 살아야만 할 이유를 묻는다면, 스스로에게 가슴에 손을 얹고 물었을 때 후회하지 않을 쪽을 택하는 것이 좋다고 답하겠다.
하지만, 대체로 현재의 자기자신에 안주하는 것과, ㅡ 매 순간마다 조금씩 ㅡ 타자라는 어쩌면 우리에게 영원한 미지로 남아 있을 영토를 개척하는 쪽을, 시험 삼아 보이지 않는 저울에 올려놓고 비교해 봤을 때, ㅡ 만약 둘 중에 하나를 반드시 골라야만 한다면 ㅡ 이것처럼 정답이 쉬운 문제도 찾기 드물다고 생각한다.
누군가 나한테 내가 가진 전 재산(남은 인생 전부)을 걸라고 하면 나는 당연히 압도적으로 후자에 베팅할 것이다. 대개 운명의 여신은 용기 있는 자를 편애해 온 까닭이다.
아니, 혹은 어쩌면 ㅡ 천 개의 눈을 가진 운명이라는 이름의 심판이, 길 모퉁이마다 도사린 매서운 눈초리로 우리를 위협하고 있을지라도 ㅡ 애시당초에 우리에게 선택지는 존재하지 않고, 어떤 경우에는 서로 체온을 나누려다가도, 도리어 부딪쳐 마모되고 상처를 피할 수 없도록 설계자에 의해서 기획되어 있는 판이라 할지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