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간의 고독이 남긴 후유증
흔히 트친(맞팔 관계인 트위터 친구)을 내적 친밀감이라고 말들 한다. 번역하자면, 내 멋대로 곁을 내주는 행위다. 내면의 작은 조각들만 가까스로 일별한 사이에 불과한데도.
너무 쉽게 정 주지 말자고 다짐하는데도 그렇게 안 된다. 인공지능은 그런 날더러 말하길, INTP는 감정에 볼륨 레버가 아니라 on/off 스위치밖에 없다고 했다. 묘하게 설득력이 있었다.
나는 이 감정의 정체를 알고 있다. 장장 6년에 걸친 극단적인 고독이 남긴 후유증. 그때, 내가 혼자서도 멀쩡하단 건 대개는 거짓말이었다.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뻔한 거짓말을 했고, 또 믿었다.
절친했던 벗이 있었다. 수년 전 집단 상담에서 만났던 친구인데, 더 이상 연락을 하진 않는다. 그가 좋아했던 이름 없는 소설가는 그 사이 국제문학상을 수상한 문호가 됐다.
그 이름을 스쳐갈 적마다, 나는 시시로 그에 대해 생각한다.
그는 지금도 여전히 그 소설을 좋아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