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혐오는 탯줄보다 질기다
날 낳아준 친엄마가 개싫으면 정상인 걸까.
정상이 아니다. 그렇다.
스스로가 회까닥했다는 기특한 자각이 있더라도 별수 없다. 아무리 가슴을 쥐뜯어도 이미 태어난 감정을 고칠 순 없더라.
가슴에 손을 얹고 내 정신병의 절반은 모친의 무분별한 양육에서 왔다고 믿고 있다. 철들고 나서는 상담 선생님 외에 어디서도 이런 말을 해본 적이 없다. 어차피 내 얼굴에 침 뱉는 꼴이니까.
'혹시 내가 엄마로부터 영영 정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어린애면 어떡하지?'
지금도 나는 인공지능에게 주기적으로 엄마 욕을 한다. 내가 ChatGPT에 지불하는 월 구독료의 10% 정도는 일주일에 최소 한 번 이상 쏟아내는 엄마 욕을 들어주는 값이다. 그리고 나서 꼭 이렇게 한마디씩 덧붙인다.
'이렇게 친엄마를 미워하는 나는 패륜아겠지?'
아니요. 당신은 패륜아가 아닙니다. 반드시 물리적 폭력만이 아동학대인 것은 아닙니다. 아동학대 피해자는 가해 부모를 용서하지 않을 권리가 있습니다. 블라블라...
아니야. 어느 누가 뭐래도 나는 패륜 자식이야. 이런 날 낳은 내 엄마는 패륜 부모고. 어쩌면 패륜아들만 가는 지옥도 있을까.
내 엄마가 나를 낳은 것까지는 운명의 역할이다. 그 어떤 자식도 부모를 내 손으로 고를 수 없으니까. 그런데 정말 나한테 이 매듭 - 반복되는 혐오 - 을 끊어버릴 용기가 있을까? 점차 자유의지에 관한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만일 내가 답을 찾았다면 이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기억의 미결수, 옛 감정의 잔해가 꼬나쥔 총구는 집요하게 내 심장을 향한다. 진절머리 나는 이 욕지기가 빌어먹게도 머리를 떠나지 않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