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펜(신용불량)의 기원을 찾아서

가족이라는 이름의 착취

by 방구석 룸펜

내가 아는 누군가의 이야기.


1. 태어나서 첫 알바(편의점 야간 풀타임이었다)를 하고 월급을 받은 날. 부모에게 들은 말. "우리 집 돈 없는 거 알지? 지금까지 먹여주고 키워줬으니까, 네가 생활비에 좀 보태 줘야겠다." 그리고 1년 꼬박, 알바비가 들어오는 족족 타인의 통장으로 이체되게 된다.


2. 알바 시작한 지 3달쯤 된 어느 날이었나. 그는 부모에게서 갑자기 이런 통보를 듣는다. "오늘이 내가 대출 갚는 날인데 돈이 없으니, 네가 신용대출을 좀 받아야겠다. 네가 취직했으니까 은행 어플 깔고 조회 좀 돌려봐. 나중에 갚아줄게."


3. 그는 아직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 그저 가족이면 으레 이렇게 하는 것이겠거니, 거부라는 선택지 따윈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 거겠거니. 부모가 진 고율의 대출(제2금융권, 카드사 현금 서비스)을 자녀의 낮은 금리로 대체할 수 있다는 합리적인 명분도 있었다.


4. 원리금 균등 상환. 대출금 2000만원. 매달 원금의 일부와 대출 이자가 들어갔다. 처음에는 약속대로 잘 갚아주는 듯했다.


그러다 대출 원금의 60% 정도가 남은 어느 날. "미안하다. 우리도 돈이 부족해서, 더 이상 네 대출금을 내줄 수가 없구나. 빌린 건 나중에 목돈으로 줄 테니까. 지금은 네가 어떻게 좀 알아서 해 봐라."


5. 그에게는 저금이 거의 없었다. 여윳돈은 "빚 값는 게 돈 버는 거"라는 명분 아래, 연 20%에 달하는 가족의 고금리 대출 상환에 모조리 들어갔다. 대한민국 20대 채무불이행자 목록에 그렇게 또 한 명의 이름이 올라갔다.


6. 한국신용정보원 통계에 따르면, 20대 채무불이행자 가운데 연체 금액이 1000만원 미만인 비율은 63%다.


29세 이하 신용불량자 10만여 명은 그리 먼 곳에 있지 않았다. 그동안 남 일 보듯 지나쳤던 금융채무 통계는 엄연히 누군가의 삶이었고, 현실이었다.


-----------------------------


7. 그에게는 나이 터울이 큰 여동생이 있었다. 그가 집안 빚이라는 멍에를 지고서 개-조-뺑이를 치고 있을 때, 여동생은 고3이었다.


그의 집안은 오래 전에 망했다. 순진했던 그의 기억에 따르면, 명절마다 선물을 챙겨주던 친절한 존재였던 은행이 악독한 채권자로 돌변한 순간, 중산층의 삶은 겨울 바다 속의 포말이 돼서 흩어져 버렸다.


8. 여동생은 고등학교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음대를 졸업하고 음악치료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그 계획에 눈물 겨운 박수를 보냈다.


여기서 그는 말을 멈추고 잠시 고개를 저었다. 그들에게는 물론 나름의 계획이 있었을 것이다.


9. 그녀는 수능을 치고 실기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수도권의 4년제 음대에 합격했다. 그녀로서는 이 결과가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았다.


그는 수년 전, 여동생이 재수를 선언하던 순간을 기억했다. 그녀는 어머니와 고함을 치며 날 선 대화를 주고받았고, 아버지는 그 옆에서 침묵하며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10. 세상에 자식 이기는 부모가 없다고 했던가? 결국 그녀는 원하는 것을 얻어냈다. 그렇게 재수는 삼수 사수가 되었고, 시간은 잔인하게도 이 일에 연루된 사람들의 얼굴에 몇 가닥의 주름을 새겨 놓았다.


그녀가 N수생의 신분을 이용해 타낸 용돈으로, 사놓고 먹다 남은 간식을 냉장고 구석에 처박아 놓을 때마다, 그는 은행 어플에 표시된 자신의 통장 잔고를 생각했다.


11. 가계 경제를 순환시키는 돈은 저 위에 하늘 어딘가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그토록 간절한 바람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가정도 기업과 마찬가지로 회계 장부의 수입과 지출이 일치하지 않으면 탈이 난다. 어딘가에서 예기치 못한 지출이 발생하면, 누군가는 그 돈을 메꿔야 했다.


한 사람의 장바구니에 새 디저트가 더해지면, 다른 누군가의 점심 식사는 순대국밥에서 편의점 도시락으로, 도시락에서 줄김밥과 삼각깁밥으로, 점진적으로 내려오게 된다.


12. '쓰는 사람이 있으면, 벌어오는 사람이 있다.'

이 간단한 이치를 떠올려야 하는 책임으로부터 면제된 계층도 이 세상에는 실제로 존재한다. 어떤 사람은 이 현상을 두고 '가족 내 카스트'라고 부르고, 혹자는 그걸 '아픈 손가락'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이런 명칭의 차이에는 현실을 바라보는 시점의 차이 ㅡ 계급의 상층에서 관조하는 입장인지, 또는 직접 하층에서 떠받치는 처지인지 ㅡ 가 뚜렷하게 반영돼 있다.


13. 이 이야기의 결말은 여동생이 4수 끝에 원래의 대학으로 복귀하는 걸로 끝난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이 과연 뭘 위한 거였냐'고 묻고 싶었지만, 이미 지나간 세월에 대해서는 더 이상 아무도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언제는 그런 게 있었냐는 듯이 서로 조심하며 쉬쉬할 뿐.


14. 누구도, 심지어 그 자신조차도, 어두운 상처 뒤켠으로 사라진 날들을 온전히 마주하려 하지 않았다. 그곳엔 가해자는 없고 오로지 피해자만 존재했다.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한철 드잡이도

사나운 입방아도 오간 데 없고

오로지 침묵만이 남았다.

작가의 이전글곁을 내어줄 수 없는 시대에 관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