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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언니 Jun 27. 2024

1 주년 이혼기념일 .

다시 돌아온 6월 27일 .







  어찌저찌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왔다. 1주년 결혼기념일일 대신 1주년 이혼기념일을 맞이했다. 두 명에서 한 명이 되었지만 빈자리를 느끼고 싶지 않았다.

  내가 좋아하는 것들 모아서 초를 켜고 플레이팅 했다. 꽃다발은 사진으로 남겨두고 꽃병에 얼음물을 담아 꽂았다. 백석동에서 사 온 방콕 케이크는 검정색 테이블에 색감을 더해줬다.

  케이크 설명이 담긴 종이를 읽어본다. '클레어 파티시에의 디저트가 당신의 하루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길 기대합니다.' 글자마저도 나를 위로하는 기분. 약간 센치해지려는데 진주가 케이크에 코를 대려는 순간 현실로 돌아왔다.




  작년 여름을 떠올렸다. 목놓아 울기만 해도 모자란 내 마음을 애써 누르고, 온갖 이성을 끌어다 사실혼 정리를 마친 내가 가여워 꺼이꺼이 울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는 그 친구가 죽을 만큼 미운 동시에 또 가여워 한참을 울었다.

  시간은 기억나지 않지만 어렴풋이 두 시간. 2020년 4월에 만나 울고 웃었던 '우리'의 3년이 그 두 시간으로 끝이 났다.





  그 끝으로부터 딱 1년이 지난 오늘, 너는 그날을 어떻게 기억할까. 1년이란 시간을 어떻게 살아냈을까. 나에게 정말 미안했을까, 너도 나만큼 힘들었을까. 시시때때로 너를 떠올려 미워하던 나였다. '나보다' 못 살기를 바랐고, 같은 하늘 아래 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분이 풀리지 않는 나날들이었다. 많이 무뎌진 것 같아 너와의 웨딩 사진을 정리하던 날에는, 다시 떠오르는 기억에 울다 지쳐 잠들곤 했다.

  평생을 이 마음으로 살아갈 줄 알았는데, 이제 응원까진 아니어도 '네 앞날이 나와 무관해진 날'이 드디어 왔다. 스물아홉 결혼, 그리고 스물아홉 이혼. 이혼하면 인생 망하는 줄 알았는데, 인생이 망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 "이혼 너 뭐 돼?" 하면 된다.





  이혼 1주년, 뭐 썩 유쾌한 기념일은 아니지만, 꽤나 힙하다고 생각하련다. "너 전남편 있어 봤어?" 뭐 이런 할리우드 느낌 정도로.














  



쫌 별난 기념일이지만 , 좋아하는 것들 다 모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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