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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주언니 Jul 01. 2024

경찰 합격하던 날 .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고등학교에 입학한 나는 처음으로 사랑에 빠지는데 그 상대는 영어 선생님. 시골 마을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랑 살아와 그 흔한 '윤선생님'조차 몰랐던 나는 그냥 교과서를 외워버렸다. 요즘은 영어 유치원이라는 것도 있다는데 난 영어라면 투니버스밖에 모르던 때였다. 그런 내가 교과서를 외웠다니, 사랑에 단단히 빠졌던 거다. 무튼 결과는 전교 5등. 뒤에서 5등이던 내가 앞에서 5등을 하니 선생님들의 관심이 한 번에 몰렸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더니, 그렇게 나의 공부 인생이 시작되었다.








  경찰이라는 꿈이 처음부터 확고했던 건 아니었다. 아빠의 사업이 몇 번 망했던 터라, '난 절대 사업은 안 해야지. 월급 따박따박 들어오는 공무원이 될 테야.'라고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공무원이라 하면 금산군청이 전부였다. 어릴 적 내 눈에 금산군청은 매력적이지 않았고, ‘아침에 눈을 뜨면 지난밤이 궁금했던’ 나는 그래 이거다 싶어 경찰을 선택했다.


  그날로부터 나의 장래희망 칸은 3년 내내 ‘경찰’이 적혔고, 아직 경찰이 된 것도 아니면서 그 단어 하나 써서 내는 것만으로도 왜 그리 으쓱했나 모르겠다. 무튼 ‘명탐정 코난’을 동경했던 나는 2015년 12월 24일, 진짜 경찰이 되었다.

















  '경기도 또 하나의 자랑, 경기청 가족이 된 것을 환영합니다.' 이 합격 문장은 아직까지도 줄줄 욀 수 있다. 눈이 펑펑 내리던 12월 24일 아침 8시 반, 긴장한 탓에 토할 것 같아 화장실을 들락날락거리던 날. 우리 할머니 생일이라 온 친척들이 우리 집에 모여 부담이 배가 되던 날. 생일상에 죄 없는 미역국만 말라가던 날이었다.


  그러다 '징-'하고 울리는 합격 문자 소리에 온 가족이 웃음을 찾은 그때를 잊지 못하겠다. 누구보다 내 소식이 궁금하지만, 행여나 부담일까 연락하지 못하고 있던 엄마에게 전활 걸어 "엄마! 나 박순경이야!" 하며 엄마를 울렸던 그때를 정말 잊지 못하겠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22년 6월, 햇수로 7년 차. 스무 살 후반을 달려가던 나는 동료 경찰을 만나 결혼했고, 그다음 해 이혼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무탈하게 지내오던 내가 직업에 대해 처음으로 회의감을 가져본 시기였다. 부부 경찰이었던 우리가, 저 날의 합격 문자만 아니었다면 만날 일 없지 않았을까. 나는 왜 하필 그 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으며, 너는 왜 하필 실습생으로 왔을까. 참 의미 없는 물음표들이, 한 때는 시도 때도 없이 나를 괴롭게 하곤 했다.


  하루는 대낮에 집 앞 주차를 마치고는, 불현듯 찾아오는 자책과 미움, 그리고 증오에 빠져 자정이 되도록 악을 쓰며 울었고, 어떤 하루는 편의점에서 맥주를 고르는 부부를 바라보다가 하염없이 울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입도 잘 되지 않는 물음표들이, 그때는 나를 많이도 울렸다.


 

















  이 글을 적다가, 오랜만에 클라우드를 열어 2016년도의 사진들을 봤다. 이 사진은 장롱면허인 내가 경찰학교에서 첫 운전을 했던 날이다. 내가 운전하는 차에 탄 동기 언니들에게, "언니들, 왼쪽이 브레이크 맞지? 오른쪽이 액셀이고."라고 물었다가 언니들이 차에서 다 내릴뻔한 그날. 사진 속에서 그때의 파란만장한 소리가들리는 것 같아 한참을 바라봤다.

  이 소중한 시절을 자책 섞인 가정으로 지워보려 한 내가 밉기도 하고, 나를 이런 생각에 빠지게 한 그 친구가 또 한 번 밉고, 이럴 거면서 한평생을 약속한 그 친구가 두 번 세 번도 더 밉고. 그렇게 한참을 미워하다가 또 사진 속 웃는 내가 귀엽고 또 가여워 모든 게 누그러지는 그런 날이다.


  아무튼, 살아보니 다 지나간다. 안 갈 것 같은 시간도 이미 저만큼 가 있다. 분명한 건 저런 날들이 몇 번 지나고 나면 야식 메뉴 고민에 더 진지해지는 날이 정말 온다. 오늘 야식이 치킨이라, 간만에 출근길이 설레는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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