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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예지 Dec 07. 2021

16화_퇴행성 허리 디스크 진단을 받고 알게 된 것들

달리기가 허리에 좋을까 나쁠까?  



새벽녘에 아무도 없는 거리를 뛰면서
내 발자국 소리를 들었을 때의 그 기쁨,
마치 인생의 소리처럼
항상 저에게 힘을 줬어요.

                                   배우 지성


유튜브에서 달리기 콘텐츠를 검색하다가 배우 지성이 이탈리아 피렌체 마라톤에 참가해 달리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지난해 1월에 방영한 tvN 'RUN'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지성을 포함한 4명의 출연자가 국내외 아름다운 러닝 스폿을 달리며, 시청자들에게 달리기의 즐거움을 전했다. 내가 좋아하는 지성도 러너라는 사실이 어찌나 반갑던지. 그런데 대회를 앞둔 전날, 누구보다 건강해 보이는 지성이 '선천적인 척추 분리증'을 겪고 있다고 고백하는 장면이 나왔다. "의사가 제가 선천적인 척추 분리증이라고 하면서, '살아가면서 어려움이 있을 거다'라고 하더라고요."(척추 분리증이란 척추뼈를 연결하는 부위가 분리를 일으키는 병으로, 나이를 먹을수록 더욱 불안정해지는 경향이 있다.)



지성만큼 심각한 건 아니지만 '9화_허리 통증으로부터 달리기를 지켜라!'에서 말한 것처럼 나 또한 20대 초반에 허리를 크게 삐끗한 후 2-3년에 한 번씩 허리 통증 때문에 일상이 무너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 달리기를 시작하고 세 달째에 허리를 다친 후, 평소 바른 자세로 생활하는 것의 중요성을 크게 깨달았다. 그래서 일상생활에서도 걷거나 달릴 때도 의식적으로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바른 자세로 생활하려고 무척 신경 써왔다. 그런데 올해 8월, 10Km 러닝을 한 다음 날 또 극심한 허리 통증 때문에 주저앉아버렸고, 치료를 받으려고 찾아간 정형외과에서 충격적인 진단을 받았다.




 


"퇴행성 허리디스크예요." 

엑스레이 사진을 가리키며 의사가 말했다.

"여기 4-5번이랑, 5-6번 요추 사이가 좁고, 디스크가 다른 디스크들에 비해 까만 거 보이죠?"

(*요추 : 척추뼈 중 등뼈와 엉치뼈 사이 허리 부위에 있는 다섯 개의 뼈)

"네, 그렇네요." 내 나이가 몇 살인데 벌써 퇴행성 허리 디스크란 말인가? 너무 놀라 말을 잇지 못했다.   

"허리 MRI 찍어본 적 있죠?"

"아니오."

"이 상태인데, 여태 한 번도 안 찍었다고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의사가 말했다.   

"허리 디스크일 수 있으니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해요. 다음 주 월요일 MRI 촬영하러 오세요."



퇴행성 허리디스크라는 것도 받아들이기 힘든데, 허리 디스크일 수도 있다니. 아득해진 정신줄을 간신히 붙잡고, 등산 스틱에 의지해 진료실에서 나오는데 간호사가 물었다. "보행 워커 드릴까요?" 허리를 제대로 펴지 못하고 고통스럽게 걷는 내가 애처로워 보였나 보다. 보행 워커에 의지해 힘겹게 걸음을 떼며 주사실로 갔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데 처참한 마음이 들었다. 침대에 엎드려 경막 외 스테로이드 주사(척수와 신경뿌리를 싸고 있는 경막이라는 막의 바깥쪽에 스테로이드를 발라주는 주사)를 허리에 여섯 군데 맞았고, 소염 진통체 5일 치를 처방받았다. 10개월 만에 다시 찾아온 허리 통증은 지금 내가 무엇인가 잘못하고 있다며 점검을 하라는 강력 경고 신호를 보냈다.



"자기 어제 아침에 10Km 달린 게 무리된 거 아냐?"

병원을 다녀온 나에게 남편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남편의 질문엔 일리가 있었다. 부산 친정에서 열흘 동안 여름휴가를 보냈는데, 새벽마다 바닷가를 달렸고 마지막 날에는 10Km를 달렸다. 그리곤 집에 돌아와서 청소와 짐 정리를 하다가 허리를 잡고 주저앉은 것이었다.



퇴행성 허리디스크가 무엇이고 어떻게 치료해야 하는지, 정말 달리기가 허리 통증의 원인인지 도서관에서 허리 통증 관련된 책들을 읽으며 두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았다. 퇴행성 허리디스크(Degeneration disc diseasd)란 척추뼈 사이에서 충격을 흡수해 주는 디스크가 퇴행되어 늙어버린 것을 말한다. 디스크가 퇴행되는 원인은 사람에 따라 다르지만 대표적으로 노화, 나쁜 자세, 유전, 허리 근력 약화, 과도한 운동 등이 있다. 누구나 나이가 들면 디스크가 늙지만 특히 오래 앉아 있거나 무거운 물건을 드는 등 허리에 안 좋은 자세나 무리한 동작을 지속하면 디스크가 납작한 모양이 되고 충격 흡수를 못해 허리 통증이 나타나는 것이다. 전 인구의 80%는 일생에 한 번 이상 허리 통증을 경험하고, 요즘은 20-30대, 심지어 10대도 약한 근력, 바르지 않은 자세 때문에 허리 통증을 겪는다고 한다.



퇴행성 허리디스크를 치료할 수 있을까?

서울대 의대 재활의학과 정선근 교수 저서 <백 년 허리(1) 진단편>에서 디스크성 통증을 치료할 수 있다고 말한다. 나쁜 자세, 나쁜 운동으로 디스크가 손상되는 것을 막고 좋은 자세, 좋은 운동을 많이 하면 디스크가 자연스럽게 아물어 튼튼해지고 아프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허리에 좋은 운동을 굳이 찾아서 하지 않아도, 나쁜 운동과 나쁜 자세만 피하면서 일상생활만 잘해도 시간이 지나면서 허리 통증은 좋아진다고 말한다. 칼에 손을 베어도 시간이 지나면 흉터가 생기면서 저절로 아무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허리에 좋은 자세를 잘 지켜 하루 종일 생활하면 젊은 사람은 3개월, 연세 드신 분들은 6개월 정도면 통증이 나아진다고 한다.  



그렇다면 허리에 좋은 자세, 나쁜 자세, 좋은 운동, 나쁜 운동은 각각 무엇일까? 허리를 낫게 하는 좋은 자세는 요추전만을 유지하는 것이다. 요추전만이란 가슴을 열고 허리를 뒤로 젖혀서 최대한 허리에 굴곡을 만드는 자세이다. 허리 통증 치료의 시작과 끝은 '올바른 자세'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허리에 나쁜 자세는 구부하게 앉는 자세, 양반다리, 다리를 꼬는 것, 쪼그려 앉아 일하는 것 등 허리에 무리가 가는 모든 자세이다. 허리 디스크를 튼튼하게 하는 운동은 '걷기'와 '달리기', 2차 자연복대라 불리는 활배근과 대둔근을 강화시켜주는 게 좋다. (자세한 내용은 <백년허리(2) 치료편>참조) 허리에 나쁜 운동은 허리를 앞으로 구부리는 스트레칭(허리를 구부리는 스트레칭을 하면 당장은 시원한 느낌이 들지만 디스크의 후방 섬유륜이 찢어질 수 있기 때문에), 디스크가 다 낫지 않은 상태에서 허리 근력 강화 운동을 하는 것, 너무 과한 운동이다.

 


'걷기'와 '달리기'가 허리 디스크를 튼튼하게 한다고? 정말일까? 눈이 번 뜨이는 말이었다. <백년 운동>(정선근 저, 아티잔)에서 허리와 무릎이 좋아진다는 구체적인 근거를 찾을 수 있었다.

최근 5년간 1주일에 20Km를 이상 달리기를 하는 사람과 운동을 전혀 하지 않는 사람들의 허리 MRI 영상을 비교했다. 달리기를 하는 사람들의 허리 디스크가 더 두껍고 디스크 속 수분 함량이 더 높았다.
하루 한 시간, 주 5회, 3주간 트레드 밀을 달린 실험쥐는 운동을 하지 않는 실험쥐에 비해 허리 디스크 속 세포 수가 크게 늘어나고 디스크를 구성하는 물질이 풍부해졌다.
무릎 퇴행성관절염이 상당히 진행한 60세 이상을 대상으로 하루 40분간, 주 3회 걷기 운동을 시켰더니 운동을 하지 않은 사람에 비해 3개월 만에 통증이 확연히 줄어들었다.



'달리기가 허리에 좋은 이유'와 '허리 건강을 지키며 달리는 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 수 있었다. "달리기는 척추 디스크에 충격을 가해 디스크 내부와 주변의 세포 활성화를 돕는다. 허리가 아픈 사람도 달리기를 해서 더 아프지만 않다면 달리기가 통증을 낫게 하는 데 도움이 된다. 하지만 걷기에 비해 충격 강도가 높기 때문에 정도가 지나치면 무리가 될 수 있다. 따라서 달리는 동안이나 달리고 나서 통증이 심하다면 쉬어 가는 것이 좋다. 달리는 거리를 줄이거나, 속도를 늦춰 통증이 유발되지 않는 포인트를 찾아야 한다. 달리기 대신 걷기, 자전거, 일립티컬 등으로 바꿔서 운동을 유지한 다음 차츰 달리기를 시작해 거리를 서서히 늘리는 것이 현명한 대처법이다.<백년운동> p.123"



책을 읽으며 달리기가 허리 디스크에 좋은데도 불구하고 내가 허리를 다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첫째, 열심히 노력하고 있지만 평소 자세가 좋지 않다. 둘째, 아침에 몸이 굳어 있는 채로 스트레칭을 하지 않고 달렸다. 셋째, 달리는 동안 통증이 있었는데 외면하고 달렸다. 며칠 전부터 달릴 때 허리가 묵직하면서 뻐근한 느낌이 있었고 시큰거리기까지 했는데 쉬지 않고 매일 달렸다. , 심지어 이 정도는 이겨내라며 몸을 혹독하게 밀어붙여 아픈데도 10Km를 달려서 허리가 감당할 수 있는 선을 넘어버렸다.






나는 달리기가 무리가 되어 허리를 다쳤고, 퇴행성 허리 디스크 진단까지 받았다.(퇴행성 허리디스크는 10대 때부터 나쁜 자세로 생활한 것이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내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공부하면서 좋은 자세를 더 단단히 내 몸에 장착하게 되었고, '걷기와 달리기가 허리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더 즐거운 마음으로 내 몸에 적절한 달리기 속도와 횟수를 찾아 건강하게 달리고 있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면 허리가 아픈 날은 달리지 않고 걷는다. 달리기 전 동적 스트레칭을 충분히 한다. 이틀에 한 번 달리고, 조금씩 달리는 거리와 속도를 늘린다. 거기에 더해 주 2회 근력 운동으로 허리 주변 근육과 몸 전체 근육을 강하고 탄탄하게 만들고 있다. (참고로 허리 통증이 생기기 전이나 허리가 완전히 낫고 나서 허리 근육 강화 운동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근육을 강화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디스크가 더 찢어질 수 있다.)



나처럼 더 건강해지려고 운동을 했는데 오히려 아프게 되면 운동을 탓하게 된다. 운동을 하다가 다시 다칠까 봐 두렵다. 수영은 피부가 따갑고 건조해져서, 배드민턴은 무릎이 아파서, 배구는 팔에 멍이 들어서, 기타는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그동안 얼마나 많은 운동과 취미를 아프다는 이유로 접었던가. 나는 이번 일을 계기로 깨달았다. 아플 때 쉬운 길은 원인을 운동 탓으로 돌리고 운동을 그만두는 것이지만, 현명한 길은 충분한 쉼, 의사와 상담, 내 몸과 질병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몸에 무리가 되지 않도록 운동 강도와 횟수를 조절해 운동을 이어나가는 것이라는 걸. 만약, 운동이 내 몸 상태나 신체적 특징과 잘 맞지 않는다면, 내 몸에 잘 맞는 운동을 찾아야 한다. 배우 지성은 선천적 척추 분리증 때문에 통증을 느껴 오히려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칫솔질을 해도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간다거나 여러 가지 증상이 많았어요. 그래서 운동을 더 신경 써서 하게 됐어요. 허리의 무너짐을 느껴서 재활에 신경을 쓰고 있어요"



운동을 하다가 다쳐서 운동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이런 말을 건네고 싶다. "운동, 우리 포기하지 말아요. 우리 몸에 적절한 운동 강도와 횟수를 찾아봐요. 운동으로 우리 몸의 약점을 보완하고 극복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더 건강하고 행복해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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