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런예지 Nov 17. 2021

15화_외적 동기에서 내적 동기의 세계로

그저 달렸을 뿐인데   

* 내적 동기 : 과제를 성취해야 할 이유가 학습자 내면에 있는 것으로, 학습자가 흥미, 호기심, 만족감, 성취감을 느끼며 과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것이다.

* 외적 동기 : 과제를 성취해야 할 이유가 학습자 외부에 있는 것으로 과제를 할 때 상과 벌, 평가, 경쟁이나 협동 등을 이용한다.  



너 4살 때부터 틈만 나면
엄마 뾰족구두 신고 핸드백 메고
골목길 걸어다녔어.
사람들이 귀엽다고 하니까 좋아서.


나는 어릴 때부터 주위 사람들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걸 유난히 좋아했다. 칭찬받고 싶은 마음에 집안일하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소리 내서 책을 읽었고, 명절엔 친척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는 걸 즐겼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를 통해 칭찬과 인정 욕구를 풀었다. 부모님이 두 분 다 말수가 적고 무뚝뚝한 성격이신데, 내가 좋은 성적을 받아온 날은 크게 기뻐하시고 환하게 웃으며 칭찬을 하셨다. 공부를 통해 선생님과 친구들의 인정까지 받을 수 있어서 공부에 몰두했다. 그렇게 나는 타고난 기질과 환경의 영향으로 칭찬과 인정이라는 외적 동기의 노예가 되었다.  




남에게 칭찬과 인정받는 일을 삶의 우선순위로 두니 하나둘씩 부작용이 나타났다. 성인이 되니 학교 공부 외에 운동, 여행, 취미 등 다른 일을 두루 경험하지 못해 삶의 내공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공적인 일에 많은 에너지를 쏟으니 일과 삶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건강마저 무너졌다. 자기 계발 분야인 독서, 운동, 외국어 공부는 후순위로 밀렸다. 정말 열심히 사는데 마음은 늘 헛헛했고, 자주 결핍을 느꼈다. 내면을 채우겠다며 그림도 배워보고, 악기 연주도 해보고, 배드민턴과 수영 같은 운동에도 도전했지만, 한결같이 3개월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곤 했다.




그 과정에서 내게 절실하게 필요한 건 성취감이나 만족함, 호기심 같은 내적 동기라는 걸 깨달았다. '도대체 마음의 힘을 어떻게 키울 수 있는 걸까?' 내겐 어렵고 막막한 인생 과제였다. 그런데 작년 8월부터 1년이 넘는 시간 동안 그저 달렸을 뿐인데, 어느 날 내적 동기의 세계에 발을 딛고 우뚝 서 있는 나를 발견했다. 두 아기를 키우느라 틈날 때 책을 읽는 것 외엔 새로운 걸 할 겨를이 없었기에 '달리기 덕분'이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달리기의 어떤 특징이 내적 동기를 키우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나는 달리기에 대해 탐구하기 시작했고 <내적 동기를 키우는 달리기의 매력 4가지>를 찾을 수 있었다.




첫째, 달릴 때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짧든 길든 목표한 거리를 달리고 나면 '오늘도 해냈다.'는 생각에 가슴이 뿌듯함으로 꽉 찬다. 나는 달리기로 작지만 야무진 성취감을 매번 손에 쥘 수 있었다. 행복 심리학자 서은국 교수는 자신의 책 <행복의 기원>에서 '행복은 강도가 아닌 빈도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아무리 강도 높은 행복이라도 시간이 흐르면 곧 사라지기 때문에, 오래도록 행복하려면 소소한 즐거움을 자주 맛보는 편이 낫다는 것이다. 성취감도 마찬가지이다. 탁월한 성취를 하는 것도 좋지만, 작은 성취를 꾸준히 경험하는 게 행복에 큰 도움이 된다. 500m를 더 달릴 수 있게 된 날, 달리는 속도가 전보다 조금이라도 빨라지는 날엔 더 큰 성취감도 느낄 수 있다.




둘째, 달리기는 '성장을 수치로 확인'할 수 있다. 러닝 앱이나 스포츠 시계를 이용해서 달리면 달린 거리와 전체 평균 속도, 구간별 속도 등을 확인할 수 있다. 누적 기록을 통해 과거에 비해 내가 '얼마나 더 먼 거리'를 달릴 수 있는지, '얼마나 속도가 빨라졌는지' 확인하며 나날이 성장하고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다. 달리기처럼 눈에 보이는 결과를 즉각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운동이 드물다. 예를 들어 요가는 요가 자세를 잘 익혔다고 해도 스스로의 느낌이나 강사의 피드백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수영은 자세가 매끄러워지거나 속도가 빨라진 걸 확인할 순 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강습을 받기 때문에 매번 수치로 확인하긴 어렵다.  




셋째, 달리기는 내 성장에 '만족'할 수 있다. 내가 그림을 배우다 그만둔 것도, 배드민턴 동호회에 나가다가 2개월 만에 발을 끊은 것도 너무 잘하는 사람들과 나를 비교했기 때문이었다. 나보다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들은 오랜 시간 끈기 있게 노력한 결과일 텐데, 그들을 보면 주눅 들고 못하는 내가 부끄러웠다. 열심히 애를 쓰다가도 생각보다 목표에 빨리 도달하지 못하면 포기하곤 했다. 하지만 달리기는 달랐다. 내게 맞는 속도로 혼자 달리니 누구와 비교할 일이 없었다. 빠른 러너를 만날 때도 있지만 그들은 순식간에 지나가니 크게 마음이 쓰이지 않는다. 오늘도 달렸다는 것 그 자체, 조금이라도 달리는 게 수월해지거나, 달리는 거리가 늘면 그저 만족스럽다.




넷째, 달리다 보면 '호기심'과 '도전 의식'이 생긴다. 조금씩 거리를 늘리며 달리다 보면 '내가 더 먼 거리를 달릴 수 있을까?', '더 빠른 속도로 달릴 수 있을까?'와 같은 내 능력에 대한 호기심과 도전 의식이 생긴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 스스로 한계를 시험해 보게 되고, 임계치를 넘어서며 성장한다. 대부분의 러너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첫 번째 관문인 '30분 달리기'를 통과하면, 5Km, 6Km, 7Km, 10Km 이렇게 스스로 목표를 잡고 거리를 늘린다. 나는 코로나 시대에 달리기를 시작해서 혼자서 10Km 마라톤을 여러 차례 달렸고, 15Km와 17Km 완주 경험을 바탕으로 곧 하프 마라톤을 뛸 생각이다. 언젠가 풀 마라톤, 트레일 러닝, 울트라 마라톤에 도전하는 내 모습도 호기롭게 상상해본다.  

 





그저 달렸을 뿐인데, 체력뿐만 아니라 뜻밖의 성취감과 만족감, 호기심과 도전 의식 등의 내적 동기까지 키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달리기가 일상 루틴이 된 후, 나는 누군가의 인정이나 칭찬이 없어도 내가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일을 매일 꾸준히 하고 있다. 책 쓰기, 에세이 쓰기, 독서, 초보 러너를 위한 블로그 운영, 영어 공부, 경제 공부 등 원하던 일을 꾸준히 할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고 도전하며 내 삶이 더 행복해지고 풍성해졌다.




그리고 <내적 동기를 키우는 달리기의 매력 4가지>를 내가 하는 일, 특히 글쓰기에 적용하고 있는데 매우 효과가 좋다. 첫째, 매일 구체적인 작은 목표로 쓸 분량을 정한다. 둘째, 글을 작은 단위(문단별)로 쪼개서 쓰며 성취감을 느낀다. 셋째, 성장을 시각화하기 위해 오늘 한 일의 내용과 소감을 작가 일기로 남긴다. 넷째,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고 내 성장에 집중하고 스스로를 칭찬한다. 다섯째, 목표를 달성할 때쯤 또 다른 목표에 도전한다. 기타, 혼자 하기 어려울 때는  오프라인 마라톤 참가처럼 함께 하는 시스템 속에 들어간다.



스스로 하는 힘, 성장의 경험, 자신감, 도전 의식을 키우고 싶은 분께 운동을 추천한다. 그중에서도 '달리기야말로 내적 동기를 키우기 좋다.'며 꼭 권하고 싶다.  



달리기로 내적 동기를 키우는 게 가능해?


라고 의심이 된다면, 오늘 밤 운동화를 신고 가까운 공원에서 첫 달리기를 해보자. '빼어나게 허술한 시작''뭉클하고 감동적인 성취의 순간'으로 바뀌는 걸 경험하게 될 테니.  


매거진의 이전글 14화_105살 할머니도 달리기를 한다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