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 핸드폰으로 뉴스를 보다가 눈이 번쩍 뜨이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기사 제목은 <<105살 미국 할머니의 '이제 바로 달리기란다'... 100m 세계 기록>>'(JTBC, 2021. 11. 12)이었다.새하얀 머리를 가진 여성이 붉은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힘차게 운동장을 달리는 모습은 내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았다. '105살 여성이 달리기를 한다고? 100m 세계 기록까지 세웠다고? 놀랍고 궁금한 마음에 빛의 속도로 기사를 클릭해 읽었다.
105살 여성 러너의 이름은 줄리아 호킨스이다. 호킨스는 11월 7일(현지 시간)에 미국 루이지애나주에서 열린 전미 시니어 경기대회 '100m 달리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땄다. 동일 연령대 선수 중 가장 빠른 1분 2초로 세계 신기록도 세웠다. 호킨스는 미국에서 유명한 고령 스포츠 스타라고 한다. '허리케인 호킨스'라는 별명만으로 호킨스가 얼마나 열정적으로 운동하고, 거침없이 도전해왔는지 그녀의 삶을 짐작할 수 있었다.
호킨스는 운동선수 출신도 아니고, 젊을 때부터 운동으로 유명했던 것도 아니다. 호킨스는 과거 교사로 일했는데, 퇴직한 후에 운동으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원래는 80세부터 사이클 대회에 참가하기 시작했는데, 100세가 되던 해 "사이클에서는 더 이상 동년배 경쟁자가 없다."며 단거리 달리기로 종목을 바꿨다고 한다. 2017년 시니어 대회 '100세 이상 여성 부문'에서 39초 62 기록을 세워 금메달을 땄고, 2019년에도 같은 대회에서 46초 07 기록으로 우승했다.
"1분을 넘기지 않으려 했는데 기록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기록에 대한 아쉬움을 표현한 호킨스의 소상 소감을 읽으며 감탄했다. 호킨스는 나이가 들어도 여전히 '더 나은 자신'을 꿈꾸는 '성장형 러너'였다. 진심으로 호킨스를 존경할 수밖에 없었다. 호킨스는 이미 이룬 명성과 각종 기록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이가 많아서요.', '체력이 예전 같지 않아요.' , '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어요.'와 같이 신체의 한계와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한 호소도 하지 않았다. 그저 기록에 대한 담백한 수상 소감만이 있었을 뿐이다. 나는 앞으로도 호킨스가 열정을 가지고 자기 한계를 넘어서는 도전을 계속할 거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전미 시니어 경기대회 '100'미터 부문에서 금메달을 딴 줄리아 호킨스 (출처 : JTBC, 2021. 11. 12자 기사 / 원출처 CBSNEWS, NSGA 트위터)
또 다른 매력을 가진 92살 여성 러너도 있다.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80세 청춘의 비밀'에 출연한 모리타 미츠다. 모리타는 70살에 달리기를 시작해 매년 일본 마스터즈 육상 대회 달리기 부문에 출전하고 있다. 모리타는 1년 내내 일주일에 세 번씩 코치와 함께 연습을 한다. 달리는 자세를 만들기 위해 허리에 타이어를 매달고 달리는 훈련도 소화한다. 한 번에 2시간이 넘는 훈련에도 모리타는 꼿꼿한 자세로 달리며 집중력을 잃지 않았다. 모리타가 90살 된 해에는 일본 미야자키 마스터즈 대회에서 100m를 23초 15에 주파해서 90대 여성 부분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메달을 들고 환하게 웃는 모리츠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92세 일본 달리기 선수 모리타 미츠 (출처 : 80세 청춘의 비밀 다큐멘터리 화면 캡처)
많은 러너들이 사랑하는 '작가이자 러너'인 무라카미 하루키. 그의 에세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으며 나는 달리는 삶을 더 사랑하게 되었고, 하루키처럼 달리기로 집중력과 지속력을 키우며 매일 글을 쓰게 되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하루키 못지않게 내게 깊은 인상을 남긴 사람이 있으니, 울트라 마라톤 이야기에 등장하는 여성 러너다. 하루키가 55Km에서 75Km 지점 사이를 고통스럽게 달리고 있는데 70세쯤 된 몸집이 작은 여성 러너가 하루키를 추월하며 말했다고 한다. "힘내세요."라고. 여성 러너가 오랜 세월 매일같이 달려온 하루키를 추월하는 장면이 너무 멋있고, 짜릿했다. 아마 하루키도 그녀가 인상적이었기에 100Km를 달린 11시간 동안 있었던 수많은 일 중 그녀의 이야기를 책에 담은 것이리라.
"예지야, 아침에 집에서 청사포까지 뛰어갔다 왔다. 드디어 화장실 갔어."
"와, 진짜 달렸어?"
"엄마 한 달 동안 관장했잖아.네가 말한 대로 운동 부족인 것 같아서 집에서 청사포까지 냅다 달렸지."
"하하하, 화장실 갔다니 다행이다. 집에서 청사포까지 왕복 5Km가 넘는데 달려갔다 왔다니 대단해 엄마. 진짜 달리기가 장 운동에 효과 있지?"
2주일 전 엄마가 흥분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를 했다. 엄마는 자격증을 따느라 3년 동안 수험생 생활을 해왔다. 오전 9시부터 밤 10시까지 중간에 밥 먹는 시간을 제외하고 하루 종일 독서실에서 공부를 했다. 책상에만 앉아있으니 몸이 많이 축났고, 한 달 전부터는 화장실을 가지 못해 이틀에 한 번 관장을 하며 괴롭고 힘든 시간을 보냈다. 달리기가 장 운동에 효과가 있어 엄마 몸이 조금은 편안해졌다니 너무 기뻤다. 그리고 지난 몇 년간 운동을 한 적이 없는 엄마가 집에서 청사포역까지 왕복 5Km를 달렸다고 해서 정말 깜짝 놀랐다. 5Km면 내가 달리기 시작한 지 8개월 차부터 달린 거리 아닌가? 64살 여성, 우리 엄마에게서 '러너로서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나에게 할머니는 우리 할머니 이미지로 남아있다. 우리 할머니는 건강하신 편이었다.작지만 다부진 몸에 잔병치레를 거의 하지 않으시고 80살까지 건강하게 살다가 돌아가셨다. 워낙 식욕이 왕성하셔서 여름엔 커다란 수박 한 통을 반으로 잘라 그 자리에서 반 통을 혼자 다 드셨고, 성격도 쾌활하고 활동적이라 늘 주위에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할머니와 운동은 먼 나라 이야기였다. 할머니가 걷는 것 외에 운동하시는 걸 본 적은 없다. 그래서 할머니가 되어 달리기를 하거나, 자전거를 타거나, 근력 운동을 한다는 것 등은 상상해 본 적이 없다. 아니 솔직히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호킨스와 모리츠, 70세 여성 러너, 64살 우리 엄마를 보며 내가 가진 편견을 확 깨뜨릴 수 있었다.
호킨스는대회가 끝난 후 인터뷰에서 "달리는 게 너무 좋다. 달리는 모든 순간이 마법 같다." "다른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되는 것도 좋다. 많은 사람이 나이가 들면 나처럼 되고 싶다고 하는데사람들한테 희망과 기쁨을 준다면 오래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라고 말했다.
모리츠는 "달리기는 인생에 있어 최고의 기쁨이죠. 저에게서 달리기를 빼면 아무것도 남지 않을 거예요."라고 말했다. 나는 달리기에 대해 여전히 뜨거운 열정을 가진 두 여성 러너의 말에 벅찬 감동을 느꼈다.
그래서 내게도 꿈 하나가 더 생겼다. 바로 '할머니 러너'가 되는 것이다. 이제 겨우 달리기 2년 차지만 꾸준히 달리는 삶을 살면서 조금씩 인생의 궤적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낀다. 하물며 기대 수명 100살까지 산다고 하면? 얼마나 더 놀라운 도전과 변화들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가 된다. 나는 나이가 들어도 계속 달리며 나의 하루를 활기로 채우고 싶고, 죽는 그날까지 '성장형 러너'이고 싶다. 또 '도전을 멈추지 않는 여성 러너'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것 같다.
누군가가 할머니 러너가 된 내게 달리기에 대해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테다.
"달리기는 인생에 있어 최고의즐거움이죠.숨 가쁘게 달리면서세상을 즐길 때 저는 진정 살아있다고 느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