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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예지 Feb 11. 2022

28화_처음부터 오버 페이스를 했습니다

하프 마라톤 준비기_1편

 하프 코스 신청이 완료되었습니다.


달리기에는 '마력'이 있다. 분명 5Km를 달리는 것만으로도 몸에 생기가 돌고 즐거움과 성취감이 컸는데, 내게 계속해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5Km를 달리는 게 익숙해지니 6Km, 7Km, 10Km로 더 먼 거리에 도전했고, 17Km를 완주했다. 하나의 퀘스트를 통과할 때마다 뭉클함을 느꼈고, 더 단단한 내가 되어간다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할 수 있을까?'라며 고개를 갸웃거리는 대신 "나는 할 수 있어."라고 외치게 되었다. 그렇게 쌓은 경험과 자신감을 바탕으로 지난 10월, 2021 손기정 평화 마라톤 하프 코스에 참가 신청을 했다.





17Km를 완주할 때까지만 해도 내년 봄에 하프 마라톤에 도전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17Km 완주 후 내가 꽤 성장했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다. 처음으로 평균 페이스 7-8분에서 6-7분 구간으로 진입했고, 초반에 힘들어도 끝내 해내고야 마는 내 끈기와 지구력을 믿게 되었다. 이온 음료로 중간중간 지친 몸에 당과 수분을 보충하는 요령도 익혔다. ‘왜 지금은 안돼? 내년 봄까지 기다릴 필요가 있어?’라고 스스로에게 물었다. 그 결과, 과감하게 11월에 열리는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결심은 했지만 내 실력으로 하프 완주가 가능할지 '확신'얻고 싶었다. 그래서 자주 방문하는 달리기 카페에 '어느 정도 실력이면 하프 마라톤에 도전할 수 있는지' 묻는 글을 썼다. "경험한 거리+4Km는 무난히 완주할 수 있어요."라는 희망적인 첫 댓글이 달렸다. 이어서 많은 러너들이 자신의 첫 하프 경험을 들려줬다. 15Km를 한 번 뛰고 하프를 완주했다는 러너도 있었고, 평소에 10Km를 자주 달리며 실력을 키워서 바로 하프 완주에 성공했다는 러너도 있었다. 심지어 달리기를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하프를 완주했다는 러너는 내 마음속 하프 허들 높이를 확 낮춰줬다.



대회까지 남은 시간은 40여 일. 목표를 세우고 운동 계획을 짰다. 하프 마라톤 1차 목표는 '완주'고, 2차 목표는 '속도 향상'이었다. 훈련을 위해 달리기에 대한 책과 온라인 자료, 유튜브 영상을 찾아봤다. 나는 '나의 달리기 코치'가 되어 실력 향상을 위한 운동 계획을 세웠다. 당시 평소에 5Km를 달렸는데 달리는 거리를 늘려 평일엔 6Km를 두 번 달리고, 주말엔 10Km, 2주일에 한 번은 15Km를 달리기로 했다. 속도 향상과 다리 힘을 키우기 위해 매일 스쾃 100개, 체계적인 근력 운동, 언덕 훈련, 인터벌 훈련을 하기로 했다.



"저, 안녕하세요? PT 받고 싶어서 왔어요."

의욕에 불탄 나는 다음 날 오전 바로 아파트 단지 내 헬스장을 찾았다. 카운터 뒤로 육중하고 차가운 트레이닝 기구들과 트레드밀, 실내 자전거, 전신 거울이 보였다. 7년 만에 다시 찾은 헬스장은 여전히 나에겐 부담스럽고 재미없는 공간이었다. 하지만 더 멀리, 더 빠르게 달리기 위해 근력 운동을 체계적으로 배우고 싶었다.     

"회원님 운동 목표가 있으세요?"

"네, 한 달쯤 뒤에 하프 마라톤을 뛰거든요. 제가 느린 편이라 하체 힘을 키우려고요."

"그럼 하체를 중심으로 운동 스케줄을 짜고, 등이랑 코어, 어깨 운동을 넣을게요."

"네, 열심히 할게요. 잘 부탁드립니다."  




'나만의 훈련' 첫날은 15Km를 달렸다. 집에서 출발해 한강까지 7Km를 달리려고 했는데, 생각보다 컨디션이 좋아서 하마터면 하프 마라톤을 완주할 뻔했다. 매일 스쾃 100개를 한 덕분인지 달리는데 다리가 짱짱한 느낌이 들어 시작부터 기분이 좋았다. 고덕천과 고덕수변생태공원을 지나 한강까지 가을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무엇에 홀린 사람처럼 7Km를 넘어서도 앞을 향해 달리고 또 달렸다. 가을바람이 옷 속으로 스며들어 땀을 식혀주니 힘이 들다가도 기운이 솟았다. 10Km를 달리고 잠깐 쉬며 '오늘 21Km를 다 달려버릴까?' 생각도 했지만 아직은 무리라는 생각에 15Km에서 멈췄다. 그래도 '자발적'으로, '혼자서' 장거리를 달렸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했다.

      


다음 날은 첫 개인 PT를 받았다. 빠르게 아파트 단지를 세 바퀴 달리며 몸을 달구고 헬스장에 들어섰다. 첫 운동은 백 익스텐션이었는데, 강사님의 친절한 설명과 시범 덕분에 가뿐하게 할 수 있었다. 이어 하체 운동으로 레그 레이즈, 케틀벨 들고 와이드 스쾃, 스미스 머신을 이용한 런지, 레그 컬 등을 15개씩 3세트 진행했다. 꾸준히 달린 덕분에 예전만큼 힘들지는 않았지만 역시 근력 운동은 만만치 않았다. 손 끝, 발 끝에 있는 모든 힘을 끌어모아 안간힘을 써서 개수를 채웠다. 한 가지 운동을 끝낼 때마다 숨을 고르며 얼굴에 맺힌 땀을 수건으로 닦아냈다. 마지막 운동을 마치고는 "하아"하며 기구 위에 완전히 퍼져버렸지만, 근육이 자극된 느낌이 나쁘지 않았고 '해냈다'는 쾌감이 있었다.          



셋째 날은 늦은 밤 동네 공원에서 6Km를 달렸다. 근력 운동을 한 다음 날이라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고 아팠지만 오늘은 달리기로 한 날이었다. 그래도 육아 퇴근 후 달리기라 마음만은 홀가분했다. 1Km를 달리곤 숨이 가빴지만 1Km 탑 6개를 쌓는다는 느낌으로 집중해서 달렸다.

'누나, 다리에 더 힘을 주고 달려야지.'

'기차 바퀴가 돌아가듯이 두 다리를 조금 더 빨리 굴려야 해.'

'발을 뒤에서 앞으로 끌어와 '툭' 놓는 느낌으로 달려봐.'

동생이 한강을 달릴 때 해 준 조언이 귓가에 들리는 듯했다. 안정감을 유지하면서도 더 빨리 달리기 위해 자세도 신경 썼다.  하프 마라톤에서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다.  

      


넷째 날은 등과 복부 근력 운동을 했고, 주말엔 언덕 훈련을 위해 올림픽 공원 몽촌토성을 달렸다. 손기정 평화마라톤 대회 코스 중에 '아이유 3단 고개'라 불리는 구간이 있다고 한다. 평소에 낮은 오르막도 올라갈 때 힘겹고, 내려올 때는 다리가 후들거리며 페이스가 무너지는데 어쩌나 싶었다. '적어도 걷지는 말자'는 마음으로 나 홀로 나무가 있는 언덕 아래에서 달리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500m도 채 못 가 심장이 터질 것 같았고, 허벅지랑 종아리가 미치도록 뻐근했다. 3Km 정도밖에 안 되는 거리를 달렸지만, 여러 언덕을 오르내리며 나는 완전 방전이 되어버렸다. 역대급으로 고통스러운 달리기였다.



그 결과 어떻게 되었을까? 훈련을 시작한 지 단 6일 만에 병이 났다. 너무 피곤하거나 무리하면 내게 찾아오는 단골 불청객, 방광염에 걸리고 말았다. 이틀에 한 번 6Km를 달리던 사람이 15Km를 달린 후 충분히 쉬지도 않고, PT와 달리기를 번갈아 매일 하니 몸이 버텨내질 못했다. 그리고 15Km를 달리면서 발이 앞으로 쏠려서 왼발 두 번째 발가락이 너무 아팠고, 발톱에 푸른 멍이 들었다. 일주일이 지나서도 방광염이 낫질 않고 뻐근하게 아픈 느낌이 계속 있었다. 나는 몸 상태가 걱정이 되었고, 예민해졌다. 예정된 훈련을 소화하지 못해 압박스러웠다. 마라톤 도전 과정에서 차근차근 성장하며 더 건강해질 것을 기대했는데, 오히려 스트레스를 받았고 운동과 일상, 일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삐거덕거렸다.     






조급함이 낳은 결과였다. 나는 나를 온전히 믿지 못했다. 더 빨리 더 강한 내가 되길 바래서 쉬지 않고 몸을 담금질했다. 분명 처음엔 '완주'가 목표였는데, "대회 전에 21Km를 달려봐야 실전에서 좋은 기록 나오는 거 아니에요?"라는 강사님의 말에 흔들렸다. 그래서 PT를 받을 때 내 능력 이상의 훈련도 최대한 소화해냈고, 몸에 무리가 될 정도로 과하게 달렸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 달리기도 벼락치기처럼 몇 번의 훈련으로 잘할 수 없는 종목인데 말이다.



매사에 완벽하려 할 때 우리는 항상 어딘가는 부족한 사람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자기만의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을 가진 채로도 온전히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낼 때 커다란 가능성과 마주할 수 있다.
<사랑한다고 말할 용기> 황선우     



달리기를 하지 않았던 시절 나는 초반부터 일에 너무 힘을 쏟아 나중엔 번아웃을 겪곤 했다. 이번엔 정말 부족한 채로도 온전히 해낼 수 있다고 용기를 내고 싶었다. 지금까지 달려온 것처럼 천천히 꾸준히 쌓고 싶었다. 만약 실패하더라도 과정을 성실하게 통과한다면 그 결과가 '몸과 마음의 성장'으로 남을 게 분명했다. 오버 페이스를 멈추고 힘 빼기의 기술을 발휘할 때였다.




* 브런치에 글을 쓴 지 6개월이 되었습니다. 달리기 실력도 필력도 아직 부족해서 글을 쓰고 발행할 때마다 '용기'를 냅니다. 글을 읽어주시는 구독자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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