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자체도 좋지만 결승선을 통과하는 그 순간의 환희가 너무 커서다시 또 마라톤에 도전하고, 더 높은 목표를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드는 건지도 모르겠다...
세 번째로 참가한 철원 DMZ 국제평화마라톤 하프 코스에서 기대보다 훨씬 좋은 기록인 2시간 14분 42초로 완주했다. 페이스 6분 50초 정도로 달려 2시간 30분 정도로 완주할 계획이었는데, 평소의 꾸준한 달리기와 BK러닝 클래스를 통해 배운 달리기 자세와 훈련 덕분에 기대 이상의 좋은 기록을 세웠다. 많이 얼떨떨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한 내가 너무 기특했다. 잘 달렸다는 사람들의 축하도 좋았다. 풀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다는 가슴속 타오름이 커져갔고 '가능'이라는 단어를 손에 쥔 느낌이었다.
'노력해서 안 되는 건 없잖아. 남은 시간 동안 집중 연습해서 올해 풀 마라톤을 완주하자.' JTBC 서울 마라톤에서 완주하기로 결심이 섰다. 그래서 달리기에 집중하기 위해 9월엔 체인지 러닝 크루 신규 멤버를 받지 않고 기존 멤버들의 성장을 돕는데만 힘을 쏟았다. 남편의 이른 퇴근 또는 연차를 쓰는 게 가능하면 주 2회 훈련을 했고, 매주 토요일은 BK러닝 클래스 멤버들과 장거리 달리기를 했다. 남산 북측순환로 1회전도 겨우 걷달로 해냈던 내가, 거의 쉬지 않고 3회전을 해냈던 날의 몸의 열기, 희열, 성취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번 10월에 열린 서울레이스에서도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동안 훈련한 결과로 또 한 번 레벨업을 하고 싶었다. 마라톤을 축제처럼 즐기고 싶고, 응원도 받고 싶어서 블로그에 나의 하프 완주 예상 시간 이벤트를 열었다. 지난 2시간 14분 기록이 무척 잘 달린 결과라고 본문에 썼지만, 다수의 사람들은 그 이상으로 내가 잘 달릴 거라 예상했다. 글을 쓰기 전엔 지난번보다 딱 1분만 당기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사람들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2시간 9분을 목표로 달리고 또 달렸다. 최종 결과는 2시간 10분 53초! 나에게 의미 있는 기록을 또 한 번 세울 수 있었다.
내뜻대로 일이 순조롭게 풀릴 때 뜻밖의 부작용이 등장하기도 한다. 또 한 번의 PB를 세웠다며 의기양양해 있는 내게 찾아온 건 꽤 신경 쓰이는 무릎 통증이었다. 대회 때 빠른 러너들의 물결에 동참해 오버 페이스를 하긴 했고, 달릴 때 17Km부터 꽤 많이 힘겨웠지만 고통스러운 것까지는 아니었기에 괜찮을 줄 알았다. 부상 없이 건강하게 완주했다고 생각했는데, 무릎이 아팠다. 예상치 못한 난관이었다. 통증을 무시하고 월요일 걷뛰를 했다가 다리를 쩔뚝거리며 걷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래서 정확히 6일 달리기는 쉬었고. 대회 후 2주 만에 한양대 트랙에서 1Km당 6분 30초 페이스로 12Km를 달렸다.
2주 정도 남은 JTBC 풀 마라톤. 내가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현재 내 몸과 마음 체력 정도론 벅찬 게 아닐까? 달린 후 부상 없이 일상생활에 복귀할 수 있을까? 머릿속을 떠다니는 질문들에 쉬이 답을 할 수가 없이 이리저리 휘청였다.
"코치님, 저 이번 JTBC 풀 마라톤 완주할 수 있을까요?" 서울레이스 후 무릎 통증이 있었고 회복했지만 불안감이 남아있다는 사실을 말씀드리며 김희연 코치님과 상의를 했다. "런예지님, 지금 러닝 크루 활동하면서 달리기 전도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해요. 달리기를 진짜 좋아해서 전도까지 하시는 거잖아요. 예지님은 잘게 잘게 달리는 편이라 지금 상태로 풀마를 뛰면 다리가 버티지 못해서 부상을 입을 수 있어요. 그럼 좋아하는 일을 못하게 될 수 있잖아요. 그리고 제발 달릴 수만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코치님의 이야기를 듣고 뭉클했다. '맞아. 내 심장이 튼튼하고 두 다리가 버텨주었기에 하프 마라톤 네 번 완주까지 올 수 있었어. 달리는 것 자체가 내겐 행복이고, 이 좋은 달리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고 함께 달리고 싶어 러닝 크루를 만든 거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치님께 완주 대신 두 번째 안으로 생각하고 있는 <제마에서 25Km, 손기정 마라톤에서 30Km 도전>을 말씀드렸다. 희연 코치님이 내게 해 준 말을 이것이다. "본인의 컨디션에 따라 스스로 결정해야 해요. 나를 가장 잘 아는 건 나니까요!" 결국 모든 건 내가 결정하고 내가 책임져야만 했다.
그래서 풀 마라톤을 완주하고자 하는 나의 목적은 무엇인지에 대해 생각해봤다. 단순히 풀 마라톤 메달을 목에 걸고 감격의 순간을 누리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풀 마라톤을 완주하고 싶은 까닭은 세 가지이다. 첫째, 풀 마라톤 완주를 위해 꾸준히 훈련에 참여하며 달리기와 근력 운동을 배우고 싶다. 둘째, 저질 체력인 사람도 누구나 꾸준히 노력하면 풀 마라톤까지 완주할 수 있는 체력을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셋째, 지금 하고 있는 일에서 더 도약하고 싶다. 새로운 성취를 통해 한 단계 더 나아간 내가 되어 책 쓰기, 유튜브 등 다양한 일에 도전하고 싶다.
두 번째로 나에게 한 질문은 '풀 마라톤 완주에 도전하기 위한 충분한 노력을 쏟았는가?'였다. 대답은 NO! 달리기라는 존재가 거대한 주춧돌처럼 내면 깊숙이 박혀있고, 몰입하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21Km 이상 달려본 적이 없다. 중장거리 인터벌 훈련도 해본 적이 없고, 다리 롤링의 감을 이제 익혀서 연습하고 있는 단계이다. 그래도 다행인 건 조금씩 향상되고 있는 내 모습이 즐겁다. 또 훈련한 만큼 대회에서 능력이 발휘되는 경험을 했다. 한양대학교에서 한 트랙런, 너무 힘들었지만 그 힘으로 다른 러더들의 에너지와 물결에 동참할 수 있었다.
최종 결정을 내리기 직전 운명처럼 만난 책이 있었으니 바로 대한민국 전 축구선수이자 축구 지도자, 손흥민의 아버지 손응정님이 쓴 <모든 것은 기본에서 시작한다>(손응정, 수오 서재)이다. 제목에 이미 저자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담겨있다. 바로 기본. 저자는 철저한 기본기 쌓기를 강조한다. 남들보다 늦게 축구를 시작해 기본기가 없어 죽기 살기로 뛰었고 그래서 몸이 금방 망가진 저자는 자신의 과거를 성찰하며 유소년 축구 선수들이 본인과 같은 상황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지도 철학을 세우고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한다.
"끊임없는 변수에 대응하려면 기초가 탄탄해야 한다. 차곡차곡 밑바닥부터 쌓지 않으면 기량은 어느 순간 싹 사라진다. 더 높이 올라갈 수 있으려면 바닥부터 사다리를 딛고 가야 한다. -혜성은 없다- 중"
그래서 나도 결심했다. 기본기를 키우기로. 지금까지처럼 나의 속도대로 느리지만 즐기면서, 어려워도 성실하게 풀 마라톤 도전을 위해 '기본기'를 탄탄하게 갖추려고 한다. 1차 목표는 10Km 1시간 내로 완주, 2차 목표는 하프 마라톤 2시간 내로 완주! 3차 목표는 내년 동아마라톤에서 풀 코스에 도전할 계획이다. 그럼 이미 신청해놓은 제마와 손기정 마라톤은 어찌할 것이냐? 둘 다 장거리 달리기 훈련용으로 삼기로 했다. 제마 때는 풀 마라톤 중 25Km까지 달리고, 손기정 마라톤에서는 30Km에 도전하려고 한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여전히 흔들린다. 첫 하프 마라톤을 완주하고 바로 풀 마라톤을 신청해서 도전하는 사람들도 있던데 나는 너무 신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42.195Km를 달려야 한다는 사실에 지레 너무 압박감을 느끼고 지레 겁먹는 건 아닐까? 이 글을 쓰면서 생각이 많이 정리되었지만 소리 없는 내적 갈등은 계속될 것 같다. 빨리 이루고 싶고, 반짝이고 싶은 욕망의 파도 앞에 휘청일 내 모습이 보인다. 지혜를 얻고 싶은 간절한 마음을 담아 독자님들께 묻는다.
"독자님들이 저라면 어떻게 하시겠어요? 올해 풀 마라톤 완주 VS 내년 풀 마라톤 완주 여러분의 선택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