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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량 Mar 24. 2023

시간이 빚은 식초 이야기

채연가 대표 임채홍+김태연 부부 인생소개서



여러분, 식초 자주 드시나요?

요리는 제가 또 젬병이라 몰랐는데, 이번에 식초 장인 임채홍 대표님과 인터뷰하면서 제대로 된 식초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는지 알게 되었답니다.


이번 인생소개서의 주인공은 두 사람입니다.

대한민국 최고의 발효식품을 만들겠다는 멋진 포부로 7년째 사업을 해오고 계신 임채홍+김태연 부부입니다.

'채연가'라는 브랜드도 부부의 이름에서 한 글자씩 따와서 지은 것이죠~

(난 이름 걸고 사업하는 사람 좋더라 ㅋ)


저도 사업하면서 '내려놓아야지' 몇 번이나 마음먹어도, 또다시 조급한 마음이 올라오곤 하는데요.

임채홍+김태연 두 분이 식초를 빚기 위해 몇 년을 기다리는 모습을 보고, 크게 감동받고 많이 배웠습니다.

일이 자라나는 과정에는 필요한 단계들을 거쳐야 함을 참으로 체감합니다.

내 그릇이 커지지 않으면 단계는 절대 뛰어넘을 수 없죠.

운좋게 뛰어넘어도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고요.


오르락내리락 인생의 다양한 굴곡에도 불구하고, 늘 웃으며 친절을 베푸는 임채홍 김태연 부부 대표님을 만나보았습니다.






시간이 빚은 식초 이야기

임채홍+김태연 인생소개서



채연가는 지리산에 자리하고 있답니다. 풍광이 너무 멋지다는~
어서오세요 채연가입니다~



식초의 가장 중요한 재료는 시간입니다.



글로벌 사업의 꿈이 무너지다


모든 일이 계획대로 아니 그 이상으로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세르비아에 오픈한 한식 레스토랑은 예상 매출을 훌쩍 뛰어넘어 하루 300만원을 벌어들였다.

2013년 당시 현지인의 월평균 급여가 15만원이었으니, 세르비아 돈으로 따지면 월 10억 정도를 번 셈이었다.


‘이제 고생 끝이구나’


한껏 들떠 아내에게 이민 준비를 부탁했고 조만간 아내와 두 아이는 세르비아로 들어올 예정이었다.


1년 전, 동유럽 전문 여행사를 운영하던 선배가 가슴 설레는 멋진 계획을 들고 왔다.

한달에 600~700명의 한국인 관광객을 데리고 올 테니 함께 해외에 한식 레스토랑을 차려보자는 것이었다.


효도관광 패키지를 주력으로 하던 터라 노년 고객층이 해외에서도 한식을 원하는데, 동유럽에는 한식점이 잘 없으니 직접 차릴 생각을 한 것이다.

먼저 한 국가에 레스토랑을 열어보고, 괜찮으면 동유럽 국가마다 분점을 내자고 큰 그림을 그렸다.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 야심차게 50평 규모의 4층 건물을 통으로 빌려 한식 레스토랑을 열었다.

워낙 물가가 싸 월세가 30만원 정도였기에 지를 수 있는 결정이기도 했다.


당시 가수 싸이가 한창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던 시기라 한식은 현지인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입지도 서울로 따지자면 성북동 정도로, 전통적인 부유층이 많고 대사관들이 여럿 몰려 있어 고급 접대 장소로 입소문이 났다.


그리고 우리 가게만의 비장의 무기가 있었는데, 바로 한국의 전통주, 막걸리였다.

10여년간 술을 만들어오던 경력을 살려 건물 지하에 조그마한 양조장을 만들고 직접 술을 빚었던 것이다.

어디에서도 맛볼 수 없는 수제 막걸리는 가게의 트레이드마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그런데 한 순간, 이 모든 것들이 산산히 무너졌다.

한식 레스토랑이 너무 잘 되자 세르비아의 동업자가 욕심을 낸 것이다.

나와 선배는 현지 법규를 모르니 사업 관련 일체 서류를 세르비아 내 한국인 동업자에게 맡겼던 것인데, 그가 서류 조작을 하여 모든 지분을 자신에게 돌려버렸다.

나는 하루 아침에 레스토랑에서 쫓겨나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됐다.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심정이구나 싶었다.


‘아내에게 뭐라고 말하지? 한국으로 돌아가면 이젠 뭘 먹고 살고?’


차마 사기를 당했다고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동유럽 곳곳에 한식의 위상을 떨치리라 야심찬 포부는 물거품처럼 사라지고, 나는 완전히 재기의 희망이 꺾인 채 한국으로 돌아왔다.



인생의 밑바닥에서 찾은 고향


한국에 와서 닥치는대로 일했다.

모아둔 돈은 세르비아 한식 레스토랑을 열 때 다 써버렸고, 아내는 두 아이를 낳고는 직장을 그만둔 상태라 가장인 내가 이 악물고 돈을 벌어야 했다.


백의종군 하는 마음으로 다시 음식점의 쉐프로 들어가 일하기도 하고, 전 직장인 한국전통음식연구소의 추천으로 해외 대사관 만찬의 요리를 담당하기도 하고, 인도국립대학에서 한 학기 동안 한식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다.


인도 호텔 측에 한식 메뉴 레시피 개발


그렇게 3년을 보내는 사이 늘 나를 지지해주던 아내가 지쳐가는 모습이 보였다.

돈을 못 벌어서, 크게 성공하지 못해서가 아니었다.

세르비아에서 돌아오면 가족끼리 함께 할 시간은 많을 줄 알았는데, 또다시 수시로 해외에 왔다갔다 하니 둘째 아들은 아빠 얼굴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할 지경이었다.


최선을 다해 일하는데도 제자리걸음만 하는 듯한 내 자신이 답답했지만, 딱히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가 문득 놀라운 제안을 던졌다.


“여보, 우리 함양으로 내려가 살면 어때?”

“함양? 갑자기 함양은 왜? 벌써 귀농이라도 하자는 거야?”

“응. 바로 그 얘기야. 어차피 우리 50대 되면 귀농해서 살기로 했는데, 그거 10년만 앞당기자. 당신 월급쟁이도 해보고 프리랜서도 해보고 동업도 해보고 해볼 거 다 해봤잖아. 고생하는 건 마찬가진데 이제 고향 가서 우리 사업을 해보자.”


처음에는 뜬금없다고 여겼지만 곰곰 생각해보니 말이 되는 소리였다.

언젠가 내 사업을 할 거라면 지금 귀농해서 사업을 일구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추진력 좋은 아내는 착착 귀농 준비를 진행했고, 2015년 함양 부모님 집으로 내려오게 되었다.


50가구도 채 되지 않아 가가호호 서로 얼굴을 모두 아는 작은 마을에 금새 소문이 퍼졌다.

해외에서 잘 나가던 임씨 큰아들이 쫄딱 망해서 고향으로 돌아왔다고.

집집마다 그 집 아들 어떡하누 하는 얘기를 들으니 어머니는 못내 속이 상하셨는지 눈물을 훔치셨다.

오죽하면 나를 불러다놓고 다시 서울로 올라가는 게 어떠냐고 하셨다.


개천에서 용났다고 시골 촌구석에서 나고 자라 해외에서 식당까지 차리는 자랑스런 아들이었는데, 동네 사람들 수근거림에 어머니 어깨가 축 처진 것을 보니 가슴이 찢어졌다.


“어머니, 저 대한민국 최고의 발효식품을 만들 거에요. 어머니 아들 임채홍이 만들면 이렇게 다르구나 모두가 감탄할 음식을 만들 거에요. 다만 발효식품은 시간이 좀 걸려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어머니에게 대차게 선포를 하고는, 없는 살림에 무리해 중고 승용차 3대를 사서 마을회관 앞에 세워두었다.

잘 나가는 사장처럼 보이기 위한 꼼수였다.

해외에서 사업 쫄딱 망해 돌아온 게 아니라, 고향에 제대로 사업하려고 내려왔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라도 하는 게 당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끝없는 시행착오


10년 넘게 일했던 한국전통음식연구소에서 주력한 분야는 전통주였다.

효모들이 열심히 활동해 술독에서 뽀글뽀글 술 익어가는 소리가 들리면 그렇게 흐뭇하고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아무 특별할 것 없는 재료가 작디 작은 미생물을 만나 훌륭한 맛을 낸다는 게 너무나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전통주를 만드는 것과 전통주 기업을 만드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일이었다.

이미 레드오션인 전통주 시장에서 내가 아무리 좋은 술을 제조한들 대기업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 부부가 함께 논의해 얻은 답은 식초였다.

양조장에서 쉽고 빠르게 대량생산 하다 보니 국내에서는 식초가 저렴한 식품으로 인식돼 있지만, 해외에서 발사믹 식초는 중저가부터 고가까지 다양한 상품이 존재했다.

고급 식초를 만든다면 이 시장은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만하다 싶었다.


그런데 문제는 제대로 식초를 만들려면 족히 2년은 걸린다는 것이었다.

고온 숙성을 하면 3개월만에도 식초를 만들 수 있지만, 전분질이 부패되면서 나오는 군내와 텁텁한 맛이 남는다.

10도 이하에서 저온 숙성을 하면 2~3년이 걸리지만, 마치 고급 위스키처럼 맑은 빛깔과 그윽한 향기 그리고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우리 몸에 이로운 유기산들이 고스란히 살아 있어 그야말로 몸을 살리는 귀한 음식이 될 수 있었다.


잠시 단기간 숙성 식초를 팔까 생각해보기도 했지만, 세운 뜻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될 일이었다.

생각 끝에 식초를 2~3년 숙성시키는 동안 청을 먼저 만들어 팔기로 했다.

마당에 식초가 담긴 항아리를 가득 묻어놓고는 배도라지청, 생강청 등을 만들기 시작했다.


배와 도라지는 농약 한번 치지 않고 직접 길러 재료로 사용하고, 함양의 특산품인 산양삼을 가미해 차별화를 두었다.

함양군 지리산 북동쪽 끝자락의 원산마을은 약초의 땅이라 불릴 정도로 삼이 유명했다.

물 한 방울 넣지 않고 오직 3가지 재료만을 고아내자 재료 본연의 맛이 살아있는 진득한 청이 만들어졌다.


생강청 역시 지리산 원산마을에서 직접 재배한 생강에 유기농 설탕, 배, 계피를 추가해 알싸하지만 달콤한 맛을 살리고 170시간을 고아 만들었다.


채연가 배청, 배도라지청, 생강청


내가 식품을 만드는 동안 아내는 브랜딩과 마케팅을 맡았다.

한국전통음식연구소 동료였던 아내 역시 전통음식에 대해서는 전문가지만, 사업체를 꾸리는 건 처음이었으니 하나하나가 다 난관이었다.

상품을 상품답게 패키지를 만들고, 온라인에 스토어를 구축하고, 상품을 알리고, 고객과 소통하는 모든 것들이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리산 깡촌 함양까지 내려온 우리에게 플랜 B는 없었다.

하기로 했으면 어찌 됐건 해야 했기에 우리는 역할을 나누어 상품을 팔기 시작했다.


다행히 아내의 사촌 동생이 디자인을 맡아줘 수 차례의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똘똘 뭉쳐 상품을 판매할 수 있었다.

처음에는 한두 개 팔기도 어려웠지만 조금씩 매출이 오르면서 공장을 지을 자본금이 서서히 모이기 시작했다.

함양에 내려간 지 5년만에야 우리는 꿈에 그리던 공장과 발효실 착공에 들어갔다.



전통한옥 천연발효실을 완성하다


어서오세요, 채연가의 심장 발효실입니다~
어우 요 튼실한 식초 항아리들!


식품을 제조하기 위해 원재료를 끓이고, 추출하고, 섞는 공정은 좋은 기계를 구비하면 되지만, 발효실을 짓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천연발효가 잘 일어나도록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해야 하고 바람이 들고 나게 설계해야 했다.

또 아내는 단순히 이곳이 식품을 제조하고 발효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와서 발효식품을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되길 바랬다.

도심 속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지리산 자연의 청정한 기운을 담뿍 느끼며 힐링할 수 있는 휴양처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발효실을 단순히 저장고가 아니라 건물 자체가 하나의 관광 상품이 될 수 있도록 건축적 미학까지 고려해 짓기로 했다.

전통한옥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살리면서 5~10도 사이 저온을 유지해 최적의 발효가 일어날 수 있도록 벽은 돌로 만들고 지붕 양옆에 구멍을 뚫어 바람이 자유로이 드나들 수 있도록 했다.


공장과 발효실을 짓는 데는 6개월이 걸렸다.

공장이 올라가기 시작하자 무엇보다 어머니의 기뻐하는 모습에 가슴이 먹먹했다.

‘임씨 큰아들이 정말 사업 제대로 하나보다’ ‘이 지리산 깡촌에 공장을 짓는다고 하더라’ ‘앞으로는 해외에 수출도 한더더라’ 동네 어르신들이 대견한 눈빛으로 바뀌자 어머니도 ‘그럼요, 앞으로 우리 채홍이가 함양을 전국에 알릴 거라니까’하고 한껏 자랑스레 대답하셨다.

가슴 한켠 죄송함과 민망함으로 묵직하게 자리잡힌 돌덩어리가 사라지는 느낌이었다.


발효실이 완성되자 아내는 채연가를 리브랜딩했다.

로고를 정비하고 회사소개서와 상품 패키지까지 새롭게 단장하고, 웹사이트와 SNS를 구축해 본격적으로 홍보에 나섰다.


그리고 올 2022년, 오랜 시간 준비해온 다이어트용 건강 식초와 한국형 발사믹 식초를 드디어 선보이게 되었다.



K-식초, 발효명가의 시작을 알리다


‘채연가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식초’


채연가 브랜드를 만들 때부터 생각해오던 모토였다.


이 방향 아래 두 가지 새로운 식초를 개발했는데, 하나는 커피나 청량음료 대신 매일 맛있게 음료처럼 마실 수 있는 ‘ABC 비니거’다.


물, 탄산수, 우유, 요플레 등 어디에 섞어도 상큼하고 부드럽게 어우러지도록 사과 식초를 기본으로 하되 비트와 당근을 섞어 풍성한 맛과 향을 살렸다.


세가지 기본 재료는 정했지만, 소비자의 입맛에 맞는 최적의 배합 비율을 찾기 위해 1년 넘게 수백번 레시피를 바꿨다.

상품을 완성한 후에도 다시 2개월간 체험단을 운영하며 피드백을 듣고 수정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ABC 비니거는 다이어트와 건강에 관심이 많은 여성층을 주요 타깃으로 잡았기에, 아내는 우리 입맛에 괜찮더라도 소비자의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색깔만 봐도 맛있는 ABC 식초~ ABC는 apple, beet, carrot에서 따왔답니다


그렇게 탄생한 ABC 비니거를 출시한 후, 매일 식초를 마시는 것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보여주기 위해 우리가 먼저 아침저녁으로 식초를 마시고 몸의 변화를 기록하기로 했다.


우리 부부는 둘 다 몸집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나는 석달만에 20kg를 감량했고 아내는 10kg를 감량했다.

특별히 운동을 하거나 식이요법을 하지도 않고 다만 하루 2번 물에 ABC 비니거를 희석해 마시고, 일일 수분섭취량을 2리터로 늘렸을 뿐인데 일어난 변화였다.


우리 부부가 식초 다이어트 성공의 롤 모델이 되자, 깜짝 놀랄 정도로 빠르게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면서 매출이 치솟기 시작했다.

올 3분기에 작년 동기 대비 300% 매출이 상승하는 것을 보고 기대했던 우리 부부조차 깜짝 놀랄 정도였다.


함께 매출을 견인한 것은 ‘ABC 비니거’에 이은 또다른 회심의 역작 ‘발사믹 식초’였다.


발사믹 식초는 이탈리아 모데나 지방의 전통 식초로, 포도주를 으깨어 서로 다른 재질의 나무통에 옮겨 담아가며 오랫동안 숙성시키기에 다양한 향과 풍미를 지닌 고급 식초이다.


이것을 한국에 맞게 만들기 위해 지리산 청정골 사과에 어떤 첨가제도없이 오직 효모만을 넣어 저온 천연발효 시킨 것이 채연가의 발사믹 식초였다.


가격은 250ml에 35,000원으로, 시중 식초에 비하면 상당한 고가였지만, 그만큼 좋은 재료와 우리 부부의 노력 그리고 무엇보다 3년의 시간을 견디며 몇 번이고 걸러 투명한 황금빛의 명품 식초를 만들어냈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이탈리아의 모데나 발사믹식초는 10만원이 넘었으니 내 기준에서는 오히려 한국형 발사믹 식초의 대중화를 위한 가격이었다.


K-발사믹식초 여깃소!


정성들여 상세페이지를 만들고 스마트스토어에 발사믹 식초를 공개하기 전날 우리 부부는 떨려서 잠이 제대로 오지 않았다.

과연 얼마나 팔릴지 도무지 짐작이 되지 않았다.


“여보, 몇 개나 팔릴 것 같아?”

“글쎄, ABC 비니거에 만족했던 고객들이 있으니까 10개 정도는 팔리지 않을까?”

“혹시 내일 하루 많이 팔리지 않더라도 실망하지 말자, 여보. 한달 정도는 지켜봐야 하니까.”

“응, 내가 온라인 마케팅 더 열심히 해볼게.”

“그래, 나도 기업 납품 가능한 곳 알아볼게.”


다음날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서 새로고침을 하게 될까봐 일부러 부산하게 일을 만들고 미팅을 잡았다.

저녁 무렵 집에 들어가자마자 아내가 호들갑을 떨었다.


“여보 여보! 오늘 몇 개 팔린 줄 알아?”

“안 그래도 괜히 실망할까봐 궁금한 거 꾹 참고 있었어. 몇 개야?”

“딱 10개!”

“하하하. 우리 귀신이네. 맨 처음에 배도라지청 올린 날은 딱 1개 팔렸잖아. 그때 비하면 우리 매출 10배나 올랐네.”

“응, 이번에 감이 좋아. 잘 될 것 같아, 여보!”


아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벤트를 진행하고, 기존 고객을 대상으로 출시 소식을 알리면서 발사믹 식초 역시 빠르게 매출이 오르기 시작했다.

특히나 기뻤던 건 요리 인플루언서들이 채연가의 발사믹 식초에 대해 크게 호평하며 응원을 보내준 것이었다.

맛에 진심인 이들에게 인정받았던 사실이 참으로 뿌듯했다.


발효식품이 워낙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니, 솔직히 돈을 벌기 위해 다른 길을 찾고 싶을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아내가 마음을 다잡아주었다.


“당신이 전통주에 바친 시간이 10년이 넘잖아. 그 일 정말 사랑해서 그렇게 오래 한 건데 포기하지마. 당신은 대한민국 최고의 발효 전문가야.”


동업자인 아내는 내가 사업가이자 장인으로 각인되길 바랬고, 계속해서 식초에 몰입할 수 있도록 격려했다.

가시밭길임을 알면서도 우직하게 시간을 갈아넣어 식초 외길을 걸을 수 있었던 건, 언제나 나를 믿어준 아내 덕분이었다.



함양에 세계인이 찾아오는 그날까지


올해는 창업 이래 가장 역동적인 한 해였다.

ABC 비니거와 한국형 발사믹 식초 출시에 이어, 1년에 단 100병만 생산 가능한 최고급 5년 숙성 애플사이다비니거를 선보였고, 미식+휴양+숙박을 결합한 채연가 관광 프로그램을 시도했다.


5년 숙성 애플사이다비니거는 발효식초의 정점을 보여주는 시도로, 무려 2톤의 사과에서 단 100리터만 나오는 귀한 식초다.

처음 2톤으로 식초를 만들어 다음해 전분질과 찌꺼기를 걸러내면 절반인 1톤이 되고, 그 다음 해에 다시 500kg, 5년차에는 100리터만이 남는다.


매년 전분질과 찌꺼기를 걸러주면서 식초 특유의 살짝 쏘는 듯한 향은 완전히 날아가고 은은한 사과향만 남는, 명품 중에 명품이라고 할 수 있는 식초이다.

식초의 가치를 아는 진정한 미식가들을 위한 상품으로, 채연가는 식초를 이 정도 수준까지 최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5년 숙성 애플사이다비니거
5년 숙성 사과식초라니 빛깔이 아주 그냥~


또 아내는 단순히 이곳이 식품을 제조하고 발효하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직접 와서 발효식품을 만들어지는 모든 과정을 보고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장소가 되길 바랬다.

도심 속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지리산 자연의 청정한 기운을 담뿍 느끼며 힐링할 수 있는 휴양처가 되겠다는 포부가 있었다.


발효실을 만들 때부터 휴양지 개념을 구상했던 아내는, 올 여름 알고 지내던 사업가 커뮤니티에서 스무명 남짓을 초대해 채연가 미식 페스티벌을 열었다.

바비큐 파티, 발효실 체험, 지리산 둘레길 걷기를 엮은 관광 프로그램을 시도해본 것이다.


채연가에 오면 지리산이 한눈에 굽어보인다.

사람들이 오면 아내는 발효실 보다 가장 먼저 그 멋진 풍광을 보여주었다.

도심에서 있었던 고민, 스트레스, 답답함을 날리길 바랬던 것이다.


그 다음 웰컴 드링크로 식초 음료를 한잔씩 드리고, 발효실로 이동해연차별로 숙성되고 있는 항아리를 보여주며 식초가 익어가는 과정을 설명한다.


발효실과 저장고를 돌고 나면 개울물이 졸졸 흐르는 지리산 둘레길로 간다.

숲내음 솔솔 나는 길을 고즈넉히 걷다가 개울가에 앉아 두런두런 얘기도 나누고, 또 기분이 나면 아이처럼 물장구도 치면서 마음껏 자연을 즐긴다.


슬슬 시장해질 때쯤 돌아오면 지리산 흑돼지 바비큐가 준비돼 있다.

우리 부부가 직접 기른 쌈채소와 직접 담근 김치와 각종 나물 그리고 마지막엔 고구마 디저트까지 배부르게 먹으면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면서 별이 뜬다.


지리산 얼른 한번 놀러가야겠군요 여행본능 뿜뿜!


서울 살다가 함양 깡촌으로 내려와 울적할 때도 있었지만, 아내는 평상에 앉아 밤하늘을 보면 일찍 귀농하길 정말 잘 했구나 하고 행복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그래서 손님이 찾아오면 꼭 해가 내려앉을 때까지 붙잡아두곤 했다.


내가 발효식품 제조의 중심을 잡고 있다면, 아내는 채연가 외연 확장에 중심을 잡고 함께 채연가을 이끌어 나가고 있다.

나는 우직하고 아내는 감각적이라 자주 의견충돌로 다투기도 하지만, 우리의 이름 한 글자씩을 따서 만든 채연가 브랜드 그대로 한쪽이 없다면 채연가 브랜드는 존재할 수 없음을 안다.


앞으로 우리는 마을 전체가 발효식품 관광단지가 될 수 있도록 더 넓은 텃밭을 가꾸고, 체험 공간을 짓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전세계인이 함양이라는 지명을 알게 되고, 손쉽게 한국의 발효식품을 먹고 즐기고 쉴 수 있는 그날까지, 우리는 지리산 밤하늘의 별을 보며 오늘도 행복한 미래를 그린다.


두 분 보면 최고의 사업 파트너는 배우자인 듯! :)



☞ 채연가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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