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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량 Mar 23. 2023

돈 되는 스테비아 토마토를 거절한 이유

선경농장 홍스팜 대표 양혜경 인생소개서



울산 엄마들에게 인기만점 논술 선생님이었던 양혜경님.

쉰을 눈앞에 둔 나이에 아버지의 방울토마토 농장을 물려받아 드라마처럼 커리어턴을 하게 되는데요.


공자와 플라톤을 사랑하는 우리 멋진 선생님이 기르는 방울토마토는 뭐가 다를까요?

그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생각의 비밀>에서 김승호 회장님이 노자 철학을 좋아하고 그것을 농사나 사업에 적용한다고 했던 구절이 생각났습니다.  


저 또한 사업에 뛰어들어 이런저런 일들을 겪으면서, 사업은 대표의 생각, 상상력, 가치관, 품성, 성향 등이 고스란히 반영되는 걸 느끼는데요.

올곧으면서도 한없이 넓은 품을 지닌 양혜경님을 보며 조만간 크게 성공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답니다 :)






돈 되는 스테비아 토마토를 거절한 이유

양혜경 인생소개서





어렸을 적 농부가 참 싫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면서도 죽어라 고생하는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며 한 가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갑작스레 태풍이 오거나 한파가 오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천재지변 앞에 이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고, 좌절하거나 희망을 잃는 게 아니라 큰 일 앞에서 의연해지는 법을 배웠다.
어떤 일을 하든 이것이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부분인가 아닌가를 따져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부분은 조바심 치지 않고 하늘에 맡긴다.



아버지의 유산, 방울토마토 농장


‘내가 잘할 수 있을까? 18년 동안 아이들만 가르친 내가 동생을 도와 그 넓은 토마토 농장을 살릴 수 있을까?’


동생의 연락에 김해로 내려가는 길, 머리속에 온갖 상념이 스쳤다.

무엇보다 가장 두려웠던 건 존경하는 아버지의 이름에 누를 끼치게 되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3년 전, 늘 태산처럼 우리 뒤에 우뚝 서 있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9천평에 달하는 토마토 농장을 남겨두고.


아버지의 뒤를 잇기 위해 여동생이 진작부터 농학을 전공하고 아버지의 농장 운영을 돕고 있었지만,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레 돌아가신 아버지의 빈 자리는 컸다.


토마토 수확량은 아버지가 계실 때만 못했고 공판장에서는 아버지에게 쳐주던 값보다 낮은 가격을 불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가 터지자 일본으로의 수출길이 막혔다.

선진농법으로 일본 신문과 잡지에 소개되면서 수출 물량이 상당했고 그 덕에 정부지원금까지 받을 수 있었는데, 가장 큰 판로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궁지에 몰린 동생이 나에게 SOS를 보냈다.


“언니, 이제 살 길은 온라인 판매밖에 없어. 그런데 우리 중에 아무도 온라인 판매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잖아. 언니는 선생님이니까 새로운 것도 금방 배울 수 있을 거야. 나랑 남편은 농장을 운영할 테니 언니가 판매를 좀 맡아줘.”


동생의 말은 반박할 여지가 없었다.

동생 부부는 농장을 운영하기만도 벅찼으니 온라인 판매를 익히고 신경쓸 여력이 없었다.


9천평의 땅을 운영하는 것이 부담스러워 동생들과 함께 일부를 팔까 생각하기도 했지만, 안 될 말이었다.

땅을 생명처럼 여기던 아버지였는데, 그 땅을 팔 수는 없었다.


그렇게 18년 동안 인문학을 토대로 논술을 가르쳐왔던 나는 갑작스럽게 ‘선경농장 홍스팜’ 마케팅을 맡게 되었다.


보고만 있어도 뿌듯한 요놈들!



돈의 유혹과 아버지의 철학 사이


나이 쉰에 온라인 마케팅을 배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공자와 플라톤, 각종 철학 고전을 바탕으로 논술을 가르치던 내가 자본주의의 꽃인 마케팅이라니, 더군다나 젊은 세대가 활개치는 온라인이라니.


스마트스토어를 열고 상세페이지를 만드는 기본적인 작업부터 키워드 광고, 블로그 마케팅, 인스타그램 등등 모두 낯설고 어렵게 느껴졌다.

거주하던 울산에서는 부모님들이 앞다투어 찾는 논술 선생이었건만, 온라인 마케팅에서는 초보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가장 큰 유혹은 스테비아 토마토 가공업자 측의 제안이었다.

좋은 품종의 토마토니 다른 농장보다 비싼 값을 쳐주겠다며, 스테비아 토마토 가공은 당신들이 직접 해서 팔겠다고 했다.

매출을 생각하면 당연히 수락해야 했지만, 아버지가 평생 지켜온 가치관이 마음에 걸렸다.


내 손주 손녀가 먹을 음식에 장난칠 순 없다.
정성껏 기른 토마토를 설탕물에 빠뜨렸다 꺼내 팔다니 그럴 수는 없어.


시중에서 파는 스테비아 토마토는 농산품이 아니라 과채가공품으로 분류된다.

농가에서 토마토를 대량구매한 후, 감미료인 스테비아와 수크랄로스를 녹인 물에 담궈 압력을 가함으로서 인공적으로 단맛을 주입하는 것이다.


소비자는 달콤한 토마토를 편하게 먹을 수 있겠지만, 자연 그대로의 토마토가 아닌 인위적으로 후가공한 토마토에 아버지는 눈살을 찌푸리셨다.

농약 한번 치지 않고 토마토른 기른 분에게 스테비아 가공업체의 제안은 씨알도 먹히지 않을 말이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감미료의 안전성 논란 이슈도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었다.


“다른 데 보다 비싸게 쳐준다니까 그러네. 지금 스테비아 토마토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인기인 거 알죠? 물 들어올 때 노 저어야 돼. 다이어트 유행도 맨날 바뀌잖아. 지금 팔아야 한다니까요.”

“네, 맞는 말씀이신데 저희는 자연 그대로의 토마토를 파는 게 좋아요.”

“허참 답답하네! 다른 농장보다 값을 더 쳐준다는데도 마다하니 별 수 없네. 평양 감사도 제 싫으면 그만이지.”


스테비아 토마토 가공업자는 혀를 쯧쯧 차고는 자리를 떴다.




농사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해


어렸을 때부터 우리 집에서 땅은 자부심이었다.

‘우리가 돈 많은 부자는 아니지만, 땅은 김해 제일 가는 부자다’ 라는 게 가족 간 우스개 소리였다.

그 땅에서 농약 한번 치지 않고 건강하게 기른 작물을 사람들에게 먹이는 건 아버지의 자랑이었다.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해.
그래야 인간에게도 지구에게도 이로워.


아버지는 늘 공부하고 연구하는 지식인 농부였다.

유년시절 배곯던 기억이 싫어 농부가 되겠다고 결심한 후, 책으로 농업을 배워 농사를 시작한 특이한 분이었다.


돈벌이 보다는 ‘제대로 된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셨기에, 어떻게 하면 자연친화적인 방법으로 더 좋은 토마토를 열리게 할 수 있을까를 끊임없이 고민하셨다.


남들은 토마토가 잘 열리도록 호르몬제를 뿌려 토마토 수정을 하는데, 아버지는 자연의 순리를 따라야 한다며 꿀벌 수정을 고집했다.

꿀벌 수정은 토마토 생산성에서는 명백히 마이너스다.

올 여름처럼 유난히 덥고 장마가 잦으면 꿀벌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그럼 토마토 열리는 양이 줄어든다.

몇 만원 짜리 식물수정액을 쓰면 쉽게 토마토가 열릴 것을, 굳이 자연적으로 수정이 일어나는 방식을 고집하신 것이다.


꿀벌수정 자연농법으로 농협으로부터 새농민 기술상을 받기도 했지만, 다르게 보면 자본주의 시대에 맞지 않는 참 고지식한 농부였다.


‘아버지, 아버지가 물려주신 꿀벌수정 자연농법, 저 이거 꼭 사람들에게 알릴 거에요. 그래서 제대로 기른 먹거리가 얼마나 맛있는지, 얼마나 때깔 좋고 싱싱한지, 어떻게 사람 몸을 살릴 수 있는지 보여줄게요!’


인간의 근원을 연구하는 인문학 한다는 큰 딸이 당장 돈이 된다고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사람 몸에 해로울 수 있는 방식으로 농작물을 기를 순 없었다.


고지식해 돈벌이 되는 것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지구를 이롭게 해서 작은 이득이 아니라 크게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다.


꿀벌수정 자연농법으로 일본 신문에 소개된 아버지
꿀벌이 요렇게 토마토를 수정한대요~



자연이 준 선물, 오래오래 탱글탱글한 토마토


스테비아 토마토 가공업체가 우리 토마토를 눈독 들인 건 이유가 있었다.

농약 한번 치지 않고, 그 흔한 식물호르몬도 쓰지 않았기에 토마토를 따서 3주간 실온에 놔둬도 상하지 않았던 것이다.


스테비아 용액을 주입해 후가공한 토마토는 유통기한이 일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아, 이윤을 극대화하려면 유통기한을 늘릴 수 있는 건강한 토마토가 필요했던 것이다.


온전히 내 힘으로 토마토를 팔아보겠다 결심하고 인스타그램에 하나하나 토마토 사진을 올리기 시작했다.

토마토를 재배하는 과정, 꿀벌이 수정하는 모습, 붉은 보석처럼 반짝반짝 윤이 나는 갓 딴 방울토마토 사진 등등.


하나둘씩 인친들을 쌓아가다가 공구를 진행하니 처음에는 몇 십명이던 구매자들이 점차 늘어나더니 100명을 넘어서고 몇 백명 단위로 늘었다.


공구를 전문으로 하는 셀럽들에 비하면 약소한 숫자겠지만, 늘 오프라인 도매상에게만 토마토를 팔던 우리가 온라인 판매를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러웠다.


고무적인 건 구매한 이들의 상당 비율이 스마트스토어에 긍정적 리뷰를 남겨주었다는 사실이었다.


‘하~ 진짜 완전 싱싱해서 2주 넘게 먹어도 멀쩡해요.
절대 다른 곳 못 가요.
쭈욱 재구매합니다.
판매자님 갑자기 없어지면 안 돼요.
저 여기 정착했는데 가끔 판매자 없어지는 경우가 있더라는~
오래 먹고픈 1인입니다!’


‘영롱한 꿀벌방울토마토 빛깔 좀 보세요.
정말 역대급 싱싱하고 탱글하고 맛있는 방토는 꿀벌방토밖에 없어요.
한번 맛보게 되면 시중에 파는 일반 방토는 맛없어 못 먹어요.’


‘꿀벌이 교배해줬다는 거 토마토 받으면 느낄 수 있어요! 진짜 자연 그대로구나! 건강하구나! 신선하구나! 진심이구나!


탄탄한 과육이 일반 방토랑은 차원이 달라요!
자연을 선물받은 기분.
감사해요.’


후기가 하나둘씩 쌓여가면서 조금씩 판매가 늘기 시작했다.


조선업에 종사하던 남편마저 조기퇴직하고 우리 부부가 스마트스토어에 매달려온 지 1년.

후기는 200개를 훌쩍 넘고 꿀벌방울토마토는 천천히 하지만 강력한 지지자들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꿀벌토마토 구매 후기들



인문학 하는 농부


코로나가 오기 전 농장의 주요 수입원 중 하나는 농장 견학이었다.

자연친화적이면서도 앞선 기술농법으로 농협을 통해 많은 농업인들이 농장을 벤치마킹하러 오곤 했다.


아이들을 가르치던 나는 견학 프로그램을 발전시켜, 내년에 체험 농장을 운영해볼 계획이다.


자연의 순리대로 사는 것이 어떤 것인지, 그것이 먹거리에 적용되면 어떻게 식물을 기르게 되는지, 다 함께 이로운 길은 무엇일지 등등 소크라테스가 제자들과 문답법을 즐겼듯이 농장을 거닐며 아이들과 대화 나누고 싶다.


어렸을 적 농부가 참 싫었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하면서도 죽어라 고생하는 모습이 싫었다.


하지만 그런 아버지를 지켜보며 한 가지 자연스럽게 몸에 밴 것은 자연에 순응하는 태도다.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갑작스레 태풍이 오거나 한파가 오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천재지변 앞에 이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되는 것을 보고, 좌절하거나 희망을 잃는 게 아니라 큰 일 앞에서 의연해지는 법을 배웠다.


어떤 일을 하든 이것이 내 힘을 할 수 있는 부분인가 아닌가를 따져보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최선을 다하고 할 수 없는 부분은 조바심 치지 않고 하늘에 맡긴다.


나는 이제 스스로를 ‘인문학 하는 농부’로 정의한다.


아버지의 뜻을 이으면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어떻게 농장을 잘 운영할 수 있을까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그리고 내가 내린 결론은 18년 동안 아이들에게 인간에 대해 가르쳐오던 교사 경력을 새로운 체험 농장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도시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농장을 보여주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섬세함을 느낄 기회를 줄 것이다.

자연의 순리를 따르는 것이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라 현명한 삶의 태도라는 것을 생각해보게 할 것이다.


이 작은 먹거리 하나부터 인간과 자연과 지구를 모두 살리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아이들에게 알릴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행복하고 보람찰 수 없을 것이다.


어머니 손에 방울토마토 한 가득~



☞ 양혜경님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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