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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수량 Feb 24. 2024

웹소설을 함께 쓴다는 것

<귀신 잡느라 연차 씁니다> 1년 3개월 집필기 (2)


전편에 이어, 리나모 작가님과 함께 1년 넘게 웹소설을 써온 과정을 이야기 해드릴려고 해요.

(이미 눈치챈 분이 계시겠지만, 

1년 넘게 썼다는 거 자체가 

고치고, 고치고, 또 고쳤다는 소리입니다 ㅋ)


자, 앞글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작품을 대형 플랫폼에 피칭했는데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1단계 분노, 2단계 부정, 3단계 타협의 심적 소용돌이 과정을 거친 후,

(네, 암 환자의 심리 반응 단계와 유사합니다 ㅋㅋㅋ) 

현실을 직시하고 다시 수정에 들어갔습니다.


사실 70~80%를 뜯어고친다는 건 새로 쓰는 거나 다름없습니다.

내가 썼던 걸 부정하는 건 진짜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고통스러워요. 

나와 작품을 분리해서 보면 되는데, 

작품을 거절 당하면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그렇게 고통스런 과정을 거치고 

또다시 대형 플랫폼에 피칭했는데, 


결과는 땡!!!

딩동댕이 아니라 땡!

충공깽이다 진짜!


이번에는 멘탈 붙들고 있던 작가님도 멘탈 나갔어요. 



그때 아주 큰 결단을 내렸습니다. 


동양판타지니까 로판 카테고리에 피칭하기 위해 

로맨스 요소를 강화하려고 무진장 애를 썼는데요. 


네, 우리 작가님은 워낙 필력이 좋으셔서 

장르 불문 소재 불문 기본빵 이상의 글을 써내는 분이지만요. 

사실 리나모 작가님이 좋아하고 가장 잘 쓰는 장르는 

약간의 미스테리가 있으면서도 서사성이 짙은 드라마 장르였습니다. 


자꾸 로맨스가 부족하다는 평을 들으니, 

발상의 전환을 해보자 싶더라고요. 


작가님, 내가 생각해봤는데 말야.
사람이 가진 능력의 200%를 발휘해도
성공할까 말까잖아.

근데 로맨스는 잔뜩 넣으려니까 
작가님 지금 쥐어짜내서 쓰고 있잖아.
그니까 가진 능력의 70%만 
쓰는 느낌이란 말이지.

이래서는 절대 잘 될 거 같지 않아.

우리 그냥 로맨스 확 빼버리고,
작가님이 자신 있는 판타지를 쓰자.

지금 시장이 
판타지는 남성향, 로맨스/로판은 여성향
이렇게 취향이 딱 양분화돼 있긴 해.
근데 내 생각엔 판타지 좋아하는
여성 독자층 분명히 있거든.

이 사람들이 여성향 판타지가 없으니까
남성향 판타지 보는 거라고 보거든.
사실 나도 그런 독자 중 하나고 말야.

그니까 리스키하긴 하지만,
우리 여성 독자 타깃판타지로 가보자. 

모 아니면 도인데, 
작가님이 최대한 능력을 발휘하는 쪽으로
가지 않으면
우리에게 성공 가능성은 없을 것 같아.

그러니까, 작가님 쓰고 싶은대로 써봐.


그랬더니, 작가님이 반색하는 거에요.


정말? 매니저님, 정말이야?
이제 내 맘대로 써도 되는 거야?
(이리 좋아할 일인가... 내가 그렇게 쪼았던 거야?)

나 사실 시다로크 때도 로판인데
로맨스 너무 적다고 독자님들한테
한 소리 들었거든...
로판은 로맨스 7, 판타지 3
이래야 하는데 나는 그 반대라고 ㅋㅋ
매니저님, 몰랐는데 나 로맨스 고자였나봐 ㅋㅋ
(작가님아, 웃음이 나오냐. 자랑 아닌데...)

이제까지 프로모션 통과할라고
그렇게 로맨스 구겨넣었는데,
내 맘대로 써도 된다니까 
마음이 막 설레네!


이리하여, 고난의 가시밭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남성 독자들이 떡하니 버티고 있는 판타지 카테고리에 

여성 작가가 판타지를 밀어넣어보겠다는 

어쩌면 시장에 역행(?)하는 길을 선택했으니까요. 


이제까지 저는 시장 생각 안 하고

내가 하고 싶은 거 해서 여러 차례 사업 말아먹어놓고

또 잘못된 선택을 내린 걸 수도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느껴졌어요. 


작가님 잠재력의 200%를 발휘하게 만들어야

조금이라도 더 승산을 높일 수 있다는 걸요.


팔리는 소설을 쓰기 위해 

'억지로' '애써서' '힘들게' 글을 쓰는 거라면

절대로 잘 되지 않을 것 같았어요.


그냥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아요?

하기 싫은 걸 억지로 해서 잘 된다는 게요. 


사이토 히토리씨도 그러잖아요.

막상 성공한 사람들을 보면 힘들지 않게 했다고. 

이게 놀고 먹고 대충 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게 아니라, 

본인이 잘하는 걸 명확히 알고, 

그 길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잘 된다는 거잖아요. 

성공은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거라는 뜻이잖아요.


뭣보다 작가님이 저리 신나 하는 걸 보니, 

잘한 선택이다 싶었어요. 


다시 수정한 작품의 제목은 

<부업으로 세계를 구하고 있습니다> 

느낌적인 느낌 오시나요?


네, 로맨스는 대폭 줄였고요.

현대의 흔한 직장녀가 주인공입니다. 

근데 이 여주 알고 보니, 이세계의 능력을 갖고 태어난 거죠.

(모름지기 주인공은 숨겨진 능력이 있어야 하잖아요. 해리 포터처럼 ㅋㅋㅋ)


글고 판타지의 꽃이 뭐에요?

게임 시스템이죠. 

성장 과정을 한눈에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게 

능력 스탯이 파바박 올라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게임 시스템도 넣기로 했습니다. 


회빙환 중 빙의 코드도 넣었습니다.

(이전에 이거 안 넣었냐고요?

네네. 지금 생각하면 정신 나감. 

이거 안 넣고도 웹소설 잘 쓸 수 있다는 오만은 버리세요.

그럴려면 그냥 장르소설 쓰면 됩니다. 

웹소설은 이거 없음 안 돼요, 안 돼. 레알참트루요.)


원래도 남성향 판타지는 꽤 읽었지만, 

샅샅이 분석하기 위해 게임 시스템 들어간 인기 판타지도 10여편 이상을 싹 다 다시 봤어요. 

그래야 작가에게 최고의 파트너로서 의견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



자, 정리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1. 장르 : 로판→판타지로 전환 

(타깃 독자: 여성향 판타지가 없어서 남성향 판타지를 읽고 있던 여성 독자 70% + 드라마적 성향 짙은 판타지를 선호하는 남성 독자 30%) 


2. 설정 : 게임 시스템 삽입 

(주인공 성장 과정 가시화)


3. 코드 : 회빙환 중 빙의 추가 

(현재 독자가 이입할 수 있는 장치 마련) 



근데 고치고 보니 웃기는 게 뭔 줄 아세요? 


분명히 이전에는 더 이상 수정할 데가 없다, 넘 완벽하다, 최고야! 이랬던 작품이

수정하고 나니까 구리게 보이는 거에요 ㅋㅋㅋㅋㅋ

쓸 당시에는 분명히 너무 잘 쓴 작품이었는데, 

수정하고 보니까 수정했어야 하는 작품인 거죠.


작가님도 그러더라고요.


매니저님, 넘 짜증나는 게 뭔 줄 알아요?
내가 봐도 수정한 버전이 
전보다 재미있다는 거야.
난 왜 한번에 이렇게 못 쓰고 이 고생일까?
이러다 끝없이 수정해야 하는 건 아니겠지?


아니, 근데 수정한다고 아무나 다 나아지나요?

수정해서 나아지는 게 실력인 거죠.


소소하게 고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갈아엎는 수준으로 수정하는 것 자체가

애초에 어지간한 멘탈로는 할 수 없는 거기도 하고요. 



그렇게 뼈를 깎는 고통으로 수정을 하고, 

또다시 대형 플랫폼에 피칭했지요.



두구

두구

두구……



네, 이제 짐작 가시죠??


대박이야~ 진짜~

또 떨어진 거 실화니?

와 나 진짜 인생에서 이렇게 많이 떨어진 적이 있었나? 

믿을 수가 없네. 

대체 뭐가 문제냐고!!!


네, 앞서 말한 그 반응 있잖아요. 

그 암환자 반응 ㅎㅎ

1단계 분노, 2단계 부정, 3단계 타협, 이거요.

이 반응이 또 오더라고요. 


작가님도 이젠 진짜 못 고치겠다고 소리 질렀어요.

요즘 웹소설 코드 뜯어맞출려고 옛날 자기 스타일 다 버리고 썼는데, 

이 정도로까지 바꿨는데 안 되면

이제 도저히 어떻게 더 고쳐야 될지 모르겠다고요. 

이전에는 최대한 요즘 웹소설 코드를 맞추자! 하는 목표가 있었는데,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니까 뭔가 방향성을 잃었달까...

하하하하하하...

(인생무상. 그저 먼산 보고 웃지요)


진짜 작가님이랑 저랑 하루 이틀 정신 나가 있었던 거 같애요. 


다 집어치고 싶었어요 ㅠㅠ


아, 진짜 내 눈이 썩은 걸까?

나만 괜찮아 보이나?


근데 집어칠 수 있겠어요??


9개월을 한 작품에 매달렸는데, 

작가님도 저도 물러설 데가 없었어요. 


작가님 왈, 5년만에 자신의 모든 걸 던져서 다시 웹소설을 쓰는데, 

이번에 포기하면 이제 기회가 없을 것 같다고

그래서 절대로 포기할 수 없다고 하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였어요. 

정말로 간절했습니다. 

제가 작가지망생을 위한 사업을 하겠다고 한 지가 4년이 지났고,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어요.


우리 둘은 서로에게 인생을 걸고 

이 작품을 같이 쓰고 있었어요.

(작년 말 작가님이 '난 매니저님한테 내 인생을 걸었어'라고 말해서 눈물 터졌잖아요 ㅠㅠ

안 잊어먹을라고 카카오톡 상태창 메시지 그 말로 해놨다는)



그래서 어쩌겠어요?


또 고쳤죠. 

하하하하하하...

(도인 되기 직전. 곧 선계로 비상할 상 ㅋ)


환골탈태 수준으로 또 들러엎었어요. 


이번에 제일 주안점을 둔 건 캐릭터의 변화였어요.  

빙의 코드가 들어가면서, 현대의 여주인공과 이세계에 빙의할 조연녀가 동시에 등장했는데요. 

조연녀 얘는 없애버렸습니다.

걍 회상 장면에 등장하는 걸로 ㅋㅋㅋ


여주인공 나왔으면 다 남자로 깔아야죠. 

디즈니 애니 보면 항상 주인공 옆에 마스코트처럼 붙어다니는 애들 있잖아요. 

피터팬 옆 팅커벨이라든가, 슈렉 옆 당나귀 동키라든가, 알라딘 옆 원숭이 아부같은 캐릭터요.

여주 옆에 여조 있으니까 별로더라구요. 

여주를 강조하기 위해서 여조 얘를 남성으로 바꿨습니다. 

귀신도 여성에서 남성으로 바꿨구요. 

가능한 다양한 남성 캐릭터들을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그리고 여주인공도 한층 더 쿨하고 멋지게 보이기 위해서, 성장 속도를 올렸어요. 

바닥에서 시작해서 차근차근 성장하기에는 

현대의 독자들이 기다려줄 수 없을 것 같았어요. 

초반에 고구마 엄청 많이 멕이고 사이다 줄 생각이었지만, 그러다가 목멕혀 떠난 독자들은 영영 돌아오지 않잖아요. 

그래서 초반 고구마 팍 줄였어요.


그리고 템포.

이야기의 전개 속도요. 


예를 들면, 


1. 1화 내로 세계관 주요 설명을 끝낸다


2. 3화 이내에 퀘스트가 등장한다


3. 5화 내로 남주인공이 등장한다


요런 식으로 초반에 독자가 빠르게 작품의 윤곽을 머릿속에 그릴 수 있게 

나름의 기준을 세우고 템포를 맞췄어요. 


그리고 작가님도 저도 새롭게 적용했던 게임 시스템 이해도가 높아지면서, 이 부분도 좀더 정교하게 설정을 정돈했어요.



요약하면 아래 3가지에요. 


1. 캐릭터 조정 및 변경 

-남성 캐릭터 증가

-주인공 주체성 강화 

-캐릭터 간 변별력 강화


2. 이야기 전개 속도 업 

-초반 고구마 대폭 줄임


3. 게임 시스템 정교화 

-퀘스트, 스킬, 신물 설정 쉽고 일관성 있게 정돈



제목은 <귀신 잡느라 연차 씁니다>

귀신/요괴 나올 거고, 현대 주인공 나올 거고, 뭔가 초능력 쓸 것 같은 느낌적 느낌 오시죠?



자, 그 담에 어떻게 됐냐구요?


네네, 드디어 통과했어요!!!

카카오페이지 드라마 카테고리에 오리지널 작품으로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에헤라디야~ 풍악을 울려라~)



우리 기분이 어땠을까요?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았을까요?


아뇨,

놀랍게도 막 엄청나게 감격스럽게 기쁘고 그렇지 않더라고요.


아, 이번엔 드디어 붙었구나.

역시. 드디어. 


이런 감정이 들긴 했는데

막 온 세상을 다 가진 것 같은 느낌은 안 들더라고요. 


혹시나 작가님 기분 초칠까봐 말 안 하다가

며칠 뒤에 작가님 기분 어떠냐고 물어보니까

작가님도 저랑 마찬가지더라고요?


아마, 우리 둘 다 전력을 다하고 탈진 상태여서 그런 게 아닐까 

또 떨어졌으면 또 다시 썼을 테니까, 

우리에겐 통과는 언젠가 올 게 분명했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은 그런 생각이 들어요. 


물론 기쁘지 않다는 건 전혀 아니에요!

내 작품을 알아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요.

인상깊게 읽었다는 그 말은 

정말이지 감사하고 또 감사한 일입니다. 


여주인공 이세인이 각성하기 전의 모습이에요.  요 때는 흑발흑안, 각성하면 백발청안이 되지요 ㅎ 본바탕이 이쁘니까 아주 머리색이든 눈동자색이든 뭘 해도 이쁜 거~

작품 보러 가기



실은 1년 3개월 동안 이 작품은 총 7번을 고쳤어요. 

통째 들러엎다시피 고친 게 4번이고, 

그 사이에도 제가 웹소설 관계자들 지인의 조언을 통해 20~30% 수정한 게 3번이네요. 



작가지망생 분들에게 꼭 얘기하고 싶어요. 

목적지까지 가는 과정이 힘들 뿐이지, 

도착하는 건 예정돼 있으니까 

절대로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요. 


그리고 또하나 덧붙이자면, 

몇 번이나 떨어졌을 때 

작가님과 저는 누구 하나 탈주할 거 같으면, 

나머지 한 명이 목조르러 달려오자고 

우스개 소리로 얘기했거든요 ㅎㅎ


누군가가 성공했을 때

과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 한 사람의 쾌거인 거 같지만

사실은 그 사람을 끝까지 믿어주는 사람이 반드시 있었다는 걸 이제서야 알겠어요.



늦게 깨달았지만, 

그래서 저는 그걸 사업으로 하고 싶어요. 

작가의 성공을 진심으로 도와주는 사람,

그런 집단을 만들고, 그런 서비스를 만들 거에요. 


그러면 내가 진짜 행복할 것 같거든요 �



긴 글 읽어주신 분 모두 감사합니다~



내 소설이 팔릴지 안 팔릴지 

진단받고 싶다면 누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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