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2.3. vs. 제주 @수원월드컵경기장
승강플레이오프 1차전이 있는 날.
이날은 올 겨울 들어 가장 추운 날씨가 예보되어 있다. 날씨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N석은 선예매 5분 만에 매진됐고 빅버드는 2층 좌석까지 오픈해야 했다.
우리가 1년 동안, 아니 2부에 있었던 2년 동안 인내해 온 노력들이 실질적인 결실로 이어지는 모습을 목격할 시간이 온 것이다.
승강플레이오프 1차전이면서 올해의 빅버드 마지막 경기, 어쩌면 2부 리그의 빅버드 마지막 경기일 수 있다. 여러 가지 의미를 담은 경기이기에 이날은 N, E, W석 모두 코어화를 선언했다. 패배는 떠올리지 않았다. 두 골차로는 이겨놔야 제주 원정에서 쉽게 가지 않을까. 빅버드의 전석에서 카드섹션의 장관이 펼쳐지며 선수들이 입장했다.
수원은 전략적인 숨 고르기를 통해 체력을 비축하면서 경기를 비교적 효율적으로 운영한 것 같다. 내가 다소 놀란 부분은 제주 선수들의 매서운 투지였다. 수원 선수가 잠시도 편하게 골을 다루지 않도록 거세게 밀착했다. 그 과정에서 반칙도 많이 나왔고 반칙이 인정되지 않았을 땐 심판을 향한 야유가 터져 나왔다.
대체로 잘 풀어가는 경기로 보였는데 골이 터지지 않았다. 제주의 수비가 견고한 탓인지 유효슈팅은 적지 않았지만 힘이 약하거나 골키퍼 정면이었다. 제주의 입장에서는 골이 먹힐까 위협받은 기회는 딱히 없어 보였다. 찬바람에 손발은 점점 얼어붙었다. 골만 터져준다면 금세 녹을 손발인데 더 얼어붙은 채로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이 시작되자 청백적 우산이 펼쳐졌다. 그 우산 위로 함박눈 같은 색종이들이 뿌려졌다. 검은 하늘에 조명빛을 받은 색종들이 흩날리는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되었다. 이건 수원만이 만들 수 있는 퍼포먼스겠다.
다른 때보다 양이 좀 많다고 느꼈는데 감상에서 빠져나와 피치를 보니 그라운드에도 색종이들이 상당량 뿌려져 있었다. 음... 수원이 공격할 진영인데 미끄럽지는 않을까 걱정이 됐다.
후반전에도 골은 터지지 않았다. 세라핌이 여기저기서 움직이고 있었지만 크로스가 공격수에게 정확히 전달되지 못했다. 여전히 빠르지만 어딘가 몸이 무거워 보였다. 이기제의 크로스도 이날은 대체로 정확도가 떨어졌고 골문 뒤로 훌쩍 넘어가는 킥도 있었다. 색종이들 때문이었을까. 플레이가 답답하게 전개되니 핑곗거리를 찾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경기 운영은 나쁘지 않았는데 골키퍼의 한 번의 실수가 재앙을 불러왔다. 키퍼가 나오기도 가만있기도 애매한 볼이었지만 그렇게 큰 점프를 할 필요도, 공이 이미 상대에게 넘어갔을 때 다리로 접촉을 시도할 필요도 없었다. 뚫렸어도 막아줄 수비수가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PK가 선언되었고 제주는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대단히 대단하고 중요했던 경기. 삼면을 둘러싼 응원이 역대급으로 펼쳐졌던 날, 그것도 홈에서 패배하고 말았다. 역시 스포츠는 응원의 부피가 승패에는 영향을 주지 않음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그러나 팬으로서는 그것 말고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제는 많이 당해봐서 아무리 열심히 응원해도 보답받지 못하리란 것도 알고 있다. 미리 체념을 장착한다. 그 체념의 앞에는 늘 희망을 품었다는 것도 알아두기 바란다. 이제 막판의 단 한 경기만이 남았다. 두 골 차로 이기면 되는 것이다. 수원을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