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0.12. vs. 천안 @수원월드컵경기장
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등교와 출근이 임박했음을 인지한 사람들의 우울함이 거리 곳곳에 흩뿌려져 있는 느낌이다. 이런 날 축구 경기를 보러 간다는 건 일종의 모험이나 마찬가지다. 승리한다면 연휴가 끝나는 아쉬움을 조금은 누그러뜨릴 수 있겠지만 패배한다면 월요일을 맞는 심적 부담감은 더 거대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날씨가 쌀쌀해져서 이제 반팔로 저녁을 버티긴 어려운 계절이 되었다. 그래도 N석은 반팔만 입고 온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자신과 동일한 열을 품은 팬들이 주변을 둘러싸고 있기 때문에 추위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 그러나 혹시라도 내릴 비나 바람을 대비한 탓인지 그들의 가방은 조금 더 부풀어져 있다.
선제골이 간절한 요즘의 수원이다. 한 방 먼저 먹고 끌려다녔던 경기가 많았다. 천안의 현재 순위가 하위권이라고 해도 경기 결과를 예측할 수가 없다. 이전처럼 또 선제골을 허용한다면 쫓아가기 바쁠 것이고 쫓아가다가 한 골 더 먹으면 승리를 챙기기엔 버거운 경기가 돼버린다. 잘 쫓아가서 드라마를 만들어도 승점은 고작 1점 만을 획득한 경기들이 몇 번 있었다.
3위 전남이 5점 차이로 쫓아온 현실에 경각심을 느낀 것일까. 수원이 이른 시간에 선제골을 만들었다. 일류첸코의 슈팅이 수비를 맞고 흘러나왔다. 뒤쪽에 있던 수원 공격수가 슈팅을 날릴 것은 명백했고, 보통 그런 식으로 굴러오는 공을 찼을 땐 하늘로 붕 떴다는 기억도 명백했다. 그러나 공격을 마무리 짓고 정리된 듯한 분위기는 가져갈 수 있던 풍경이었다.
그래서 기대하지 않았던 상황인데 뒤쪽에 있던 바로 그 수원의 홍원진은 내 예상에 반박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실로 충격적인 아름다움이었다. 붕 뜨기는커녕 낮고 빠르게 아래로 깔려서 골문을 향했다. 골의 방향도 키퍼의 손이 닿을 수 없는 골문 구석이었다. 홍원진의 침착성이 놀라운 골이었다. 너무 잘 차서 본인도 좀 놀라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어쨌든 드디어 선제골이 터졌다!
선제골의 시기와 상태가 너무나 훌륭했기 때문일 것이다. 수원은 이후에 네 골을 더 넣으며 천안을 5:0으로 이겼다. 얼마 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인지 모르겠다. 세라핌은 점점 무고사와 같은 존재가 되어가는 것일까. 그의 플레이는 날이 갈수록 빛나고 있다. 세라핌이 결장하는 수원을 상상하기는 끔찍하다. 박지원도 여전히 잘해주고 있고 김현도 살아나고 있다. 모든 것이 잘 돌아간다는 느낌을 받은 경기였다.
수원은 승점 3점을 챙겼고, 이날 인천은 성남과 비기면서 수원과의 승점차는 8로 줄었다. 다시 스멀스멀 희망이 꿈틀거리기 시작한다. 희박하지만 희망을 품을 수 있다는 건 하나의 경기에 여러 가지 시선을 갖게 만든다. 아무튼 월요일 출근길이 가벼울 것 같다. 동시에 멀리서 오셨던 천안팬들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월요일이 얼마나 무거울까. 스포츠는 참 잔인하고 불편하다. 그것은 인간이 잔인함과 불편함도 추구하는 존재라는 걸 의미한다. 다음 경기에서는 무엇을 느낄 것인지 기대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