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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sanasu Dec 03. 2023

경고가 두 번이면 퇴장입니다

2023.12.2 vs. 강원 @수원월드컵경기장


마지막 한 경기만 남았다. 이날의 경기로 세 팀 중 하나가 다이렉트 강등이 결정된다. 수원이라는 팀이 이런 상황을 맞이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가혹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고, 진짜 어떤 결말로 이 시즌을 마감할지 예측하기가 어려웠다.


지난 두 경기를 연승해서 그런지 빅버드 주변 분위기는 작은 축제 시즌과 비슷했다. 분명히 마지막 인사와 같은 발언을 주고받는 건 강등이 확정될 수도 있음을 염두에 두었다는 의미일 텐데 걱정스러운 얼굴의 다른 쪽에는 걱정보다는 조금 더 큰 기대와 희망이 엿보였다.


자리마다 커다란 색종이가 있어서 어떤 카드섹션일지 궁금했는데 청백적으로 하트무늬를 만든 모양이었다. 사방에서 파란 깃발이 휘날렸다. 마지막 경관일 수 있다는 경계심이 이 풍경을 더 아름답게 느끼게 해 주었다.



전반전 초반 관중석 누군가가 제주가 선제골을 넣었다고 얘기하는 소리를 들었다. 만약 제주가 수원FC를 이겨준다면 수원이 강원이랑 비기더라도 다이렉트 강등은 벗어날 수 있는 상태였다. 수원의 공격이 잘 풀리지 않는 모습이 자주 보였지만 실점의 위기도 잘 넘기고 있었기에 희망적인 분위기가 좀 더 우세했던 거 같다. 무사히 전반전을 마쳤다.


후반전 시작과 동시에 청백적 우산이 펼쳐지고 눈처럼 많은 색종이들이 흩날렸다. 그 모습을 만드는 사람보다는 바라보는 사람들을 위한 퍼포먼스다. 내년에도 이런 장관을 계속 연출해 낼 수 있을까, 하긴 2부 리그에 간다고 이걸 못할 이유는 없는 거잖아,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현재의 시간에 감사해했다.


후반전 시간이 지나갈수록 평화로운 분위기가 서서히 줄어들었다. 수원FC가 후반에 만회골을 넣었기에 수원은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나 자신도 제주가 이겨주는 그림에 너무 기대고 있었던 것 같고, 혹시 선수들도 마음 한켠 그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위협적인 슈팅은 나오지 않았고 드리블 돌파는 늘 결정적인 순간에 차단당했다. 추가시간 5분이 주어졌지만 왠지 이대로 끝날 것 같다는 예감이 떨쳐지지 않았다. 카즈키와 이종성의 부재가 평소보다 훨씬 크게 느껴졌다. 공격이 너무 단조로웠다. 극적인 골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팬들은 직감했을 것이다.


마지막 공격이 예상되는 시간, 양형모가 길게 공을 보냈고 운명적인 그 공의 향방은 강원 선수였다. 수원 쪽으로 공을 걷어내자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수원 강등이 확정되었다. 팬들도 선수들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진짜 실제로 일어난 일이 맞는가? 잠시 정신을 잃은 한탄들이 새어 나오다가 현실을 알아챈 인간의 두뇌는 인지된 상황에 대한 즉각적 반응 세계를 열어놓기 시작했다. 오열, 울분, 분노, 욕설, 저주 등의 감정들이 질서 없이 터져 나왔다.


누구의 잘못인가. 정말 누군가의 잘못일까. 차라리 어느 한 사람의 잘못이었으면. 작년에 한 번 기회를 허락받았음에도 그게 심각한 경고라는 경각심을 가지지 못했고 시즌 초반부터 너무 많은 실수와 과오를 저질러왔다. 경고가 두 번이니 퇴장인 것이다. 긴 시간 참고 인내해 온 팬들이 마지막에 받은 건 결국 이런 처참한 비극이었다. 예견된 사고였기에 수원 축구팀의 운영에 관여한 사람들은 전원 사퇴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그렇고 이제 우린 어떻게 되는 걸까. 지금의 선수들 중 2부 리그의 팀에 남아있을 사람이 몇이나 될 것이며 이날 찾아온 2만 명이 넘는 수원팬들 중 내년에도 경기장을 찾아갈 사람들이 몇이나 될까. 이날 우리 자신에 대한 확신이 약해 제주의 힘에 기대었던 것처럼 시간이라는 절대자의 힘에 기댈 수밖에 없다.


이 고통도 무뎌지게끔,

2부에서도 경기장을 찾아가고 싶은 욕구가 되살아나게끔,

시간이 우리를 차근하고 신속하게 다져주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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