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asanasu Jan 28. 2024

이반 투르게네프의 <대화>

언젠간 다 지워질 얼룩일 뿐이지만


인간이 감당하기 불가능한 높이와 추위를 가진 두 개의 봉우리가 근엄하게 우뚝 솟아 있다. 거봉이자 거인인 융프라우와 힌스테라아르호른. 그들이 어떤 말을 하려고 잠깐 머뭇거리는 시간에 수천 년이 지나간다. 그들을 사람으로 비유한다면 인간의 한평생은 그들의 눈꺼풀이 한 번 깜빡이는 시간보다도 짧다. 거대한 자연의 시선에 인간이란 찰나의 시간을 점유할 뿐이고 그마저도 대부분 자질구레한 얼룩만을 남기고 간다. 벌레 같은 인간들의 얼룩을 눈으로 다 덮은 후에야 이 두 거봉은 한 잠 잘 준비를 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거대한 자연의 시선에서 인간의 존재감이 아무리 하찮다고 하더라도, 인간은 그렇게 거대한 시선으로 살 수가 없다. 찰나인 시간에 잠시 벌레였다가 사라지는 인간은 그 짧은 시간 동안 각자의 우주를 만들며 살아간다. 그들이 우리를 의미 없는 존재로 단정 짓는 방식대로 우리는 이 시간을 의미 있게 받아들인다. 부자가 어찌 가난한 사람의 동전에 대해서 알겠는가. 거대한 존재든 미미한 존재든 다른 존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매한가지다. 봉우리는 둘 뿐이지만 우리는 수십억이다. 마음으로 만드는 시공간은 인간이 더 거대할 것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