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을 살아가려면 나의 외부에 대한 공포심을 유지해야 하고 나의 내부를 외부로부터 보호하려고 긴장을 놓아서는 안된다. 지루하고 무가치하지만 죽기 전까지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
그 현실에 사랑이 찾아드는 일은 부당할 만큼 희소한 기회일 뿐이다. 그러나 일단 나의 내부에 찾아들기만 하면 그간 공포의 존재로서 나를 압박하던 현실의 괴물들은 일순간 위력을 잃게 된다. 사랑을 잃는 것보다 두려운 일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좌지우지하는 사랑의 존재는 이미 나의 거대한 세계이고 우주가 돼버렸기에 현실은 사소하고 하찮아질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생이 슬픈 이유는, 그렇게 압도적인 사랑도 결국 현실이 휘두르는 압박을 피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만하탄의 선산>에 나오듯이 오직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른 건 다 잃어도 사랑 하나를 손에 쥘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