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많이 들었다고 느낄 땐, 단지 자신감이 조금 떨어져 엄살을 피울 때거나 이미 아주 멀찌감치 늦어버린 시기일 것이다. 재생할 수 있는가, 재현할 수 있는가. 이것이 늙음의 척도다.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감이 있어야 늙음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건 어둡고 괴로운 날들이다.
아프고 쓸쓸한 사람들이 보상받지 못한 채 부서져간다. 그리고 그중 가장 슬픈 것은 사랑하기에 기약 없이 나를 내맡긴 모든 것조차 함께 시들어 가는 일이다.
그러나 육신이 쪼그라들망정 회상이라는 기능을 이용해 우리의 가장 푸르른 시절을 생생하게 기억할 수 있다. 기억에 취한 날은 다음 날이 조금은 달라질 거라는 희망을 품게 된다. 역시나 다음 날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는다. 결국 노인을 주저앉히는 건 병든 몸이 아니라 신체와 동기화되지 못한 정신의 푸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