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부 1-6) Re-Writing 나의 다시쓰기

by 정영의


나의 <열하일기 읽기>는 거의 막바지에 왔습니다. 꼿꼿하게 날이 섰던 근육의 힘이 조금 느슨해지고 다른 번역판에 한눈을 팔 여유가 생기네요. 고미숙표 열하일기-『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가 드디어 눈에 들어왔답니다. '고전평론가'라는 직업을 창출했다는 그녀라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열하일기』를 원전으로 읽었을 거라고 추측했어요. 그건 아무래도 섣부른 짐작이었던 것이 그녀도 나처럼 번역판만 읽었답니다. 그러고도 『열하일기』를 21C의 코드로 읽어 21C의 삶으로 새롭게 빚어내는 일에는 전혀 미흡하지 않았어요. 2023년 12월에 출간 20주년 기념개정판이 나온 걸 보면 20여 년 동안 책이 성공리에 팔렸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이 귀에 익었어요. 수많은 고대 민요를 수집하여 『시경』으로 엮어낸 공자는 오랜 전통의 가치를 그만큼이나 무겁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조금은 낯선, 법고창신(法古刱新)이란 말이 자주 들립니다. 온고지신과 법고창신 둘 다 꿋꿋이 옛것에 바탕을 두긴 하지만 '온고'(溫古)가 새로운 것을 앎(知新)에서 멈춘다는 점에서 소극적이라면 법고(法古)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刱新) 것을 촉구한다는 점에서 더 적극적인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고미숙표 열하일기는 고미숙이 자기의 안경을 여럿에게 빌려주어 각자의 스타일로 온고지신하게 만든, 고미숙표 법고창신인 셈입니다.


다 알고는 있지만 아무도 안 읽는다는 ‘고전’을 고집스레 ‘리라이팅(다시 쓰기)’한 그린비는 '리라이팅 클래식'이라는 도발적인 이름으로 독자를 도발한 출판사입니다. 이 말쟁이가 자유롭게 맡겨 둔 덕에, 고미숙은 특유의 톡톡 튀는 감각적인 문체로, 잘 웃으며 농담과 장난을 좋아한 연암 박지원을 되살려냅니다. 책 앞표지에 있는 저자 쓰기부터 색달라요. 『열하일기』의 제목 밑에 고미숙이, 천하의 박지원보다도 앞줄에 나옵니다! 그런데, 나도 내 글을 출간한다면 내 이름을 박지원보다 앞에 둘 수 있으려나요? 이 발칙한 질문은, 그녀의 책을 먼저 읽다가는 말려들 것 같아 제쳐놨던 내 속내를 드러냅니다. 나는 나만의 열하일기를 쓰면서 ‘내가 고미숙 판을 못 쓰듯 고미숙도 정영의 판을 못 쓸 것’이라고 되뇌고 있습니다.


김탁환의 소설에 스며들어 맛깔진 맛을 내고 아롱다롱 무늬를 그린 『열하일기』는 또 다른 결의, 발랄하고 경쾌한 고미숙 표 문체로 거듭 다가왔어요. 고미숙표 『열하일기』에서는 잊을만 하면 한번씩 들뢰즈/가타리의 노마디즘이 등장하더군요. 평소에 유목민의 피가 섞였다며 엉거주춤 경계인으로 자리매김하던 나는, 생전 처음 봐도 반가운 것이 노마디즘이었어요. 그런데, 노마드에게 있어 최고의 덕목은 우정이라네요.


연암을 만났다가 헤어지는 중국 상인들은 ‘하늘이 맺어준 연분‘이라고, 이틀 밤에 만리장성을 쌓고 천생연분을 들먹이며 닭살 돋는 멜로 드라마를 찍네요. 연암은 또 중국의 큰 선비를 만나면 무슨 질문으로 애를 먹일까 라고 궁리를 하느라 말 위에서 하루에 몇 권의 책을 꾸미고요. 그렇게 친구의 친구까지 찾아다니며 안부를 전하고 통성명을 하고 친구를 사귀며 챙기는 걸 보노라니 문득 불길한 예감이 들어요. 여행에서 단체 사진 한번 찍으려면 앵글 밖의 나를 찾으러 다녀야 했거든요. 그런 민폐 동행이 나였기 때문에 나는 스스로 노마드인 체했었어요. 그런데 연암, 엄청나게 E네, 나는 I인데......


“열린 마음과 호기심과 유머 감각을 대동한 채 자유롭게 누비고 다니며 단순한 편력도 아니고 그렇다고 유랑도 아니고 지금 여기와 온몸으로 교감하지만, 결코 집착에 사로잡히지 않고 어디서든 집을 지을 수 있고 언제든 떠날 수 있는” 게 노마드라고요? 그러면 나는 노마드가 아닌가 봐. 최소한 연암 스타일의 노마드는 아니었나 봐. 그동안 혼자만 노마드인 체하는 짝퉁 노마드였나 봐 나, 유목민 아니면 정착민이었던 거야? 오늘 열하일기를 거울처럼 들여다보며, 결국 머물러만 있었던 정착민으로 나의 정체성을 찾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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