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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의 Sep 20. 2024

29.  가이드 팁의 적정선은?

패키지 해외여행을 가면 불편한 것중의 하나가 팁입니다. 가격표에 딱 맞게 계산하는 한국 맞춤형 버르장머리를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여행 경비에 가이드 피(fee)는 별도입니다. 그리고 해외 물 좀 더 먹은 선배들이 조곤조곤 일러주는 건 숙소 침대의 베개에다가 1달러 지폐를 놔두는 게 팁이랍니다. 주변에 해외여행 바람이 불어 덩달아 설레는 와중에 데에 신경쓰입니다. 코로나 바람에 물가가 다 올랐다네. 그러면 이제 1달라는 안 되고 2달라는 놔둬야 하나? 환전할 때 소액권을 얼마나 챙겨야 할까? 등등 김치국부터 먼저 마시기입니다.


오후에 연암은 공자를 배알합니다. 신 세 명과 함께 열하 태학을 방문한 겁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치지 못 하듯  유학자는 공자에게 향을 피워 올릴 기회를 놓치지 않습니다. 보니까 주자를 공자의 제자 십철의 아랫자리에 모셨네요.  글자는 붉은 바탕에 한자와 만주자를 금글씨로 썼으며  황제들의 글들이 행여 빠질 세라 여기저기 보입니다. 뜰에 향정, 위패마다 향로, 역시 황제가 해놨네요. 위패 앞마다 휘장을 드리고,  장엄하고 화려하게 모셨습니다. 경건한 걸음걸이 그대로 삼사는 숙소로 돌아옵니다. 그리고 각기 청심환 몇 알과 부채 몇 자루씩을 추사시 왕민호에게 보냈습니다. 태학을 안내해준 보답인 셈입니다.


그것이 하루 품치고는 참 약소한 선물이라고 연암은 생각합니다. 저절로 숭정 갑술년(1634) 6월 20일의 일 떠오릅니다. 조선에 온 명나라 사신 노유령이 24일에 성균관을 참배하고 함께 했던 조선 유생들에게, 은 오십 냥을 내놓습니다. 끝내 사양은 못했지만  조선의 유생들은 그 은을 일종의 모욕으로 간주합니다. 당시의 화폐가치가 어떠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국의 사신만큼 통크게 쏜 것일 터입니다. 그런데 일개 공직자인 노유령이 뭔 돈이 있다고 모욕으로 간주할 만큼 후 인심을 썼 까요.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인조임금 때 소현세자가 책봉될 무렵 나라 사신이 조선에서 은 13만 냥을 긁어갔니다. 인조실록에는 ‘노유령이 선물을 지나치게 많이 받아 국가의 체모을 크게 손상하였다. 엄중하게 다스려야 마땅하나 먼 길의 노고를 생각하여 봐주고, 그 은을 창고에 보관했다가 되돌려 보내겠다’는 명나라 측의 입장이 실렸습니다. 17세기 환관 출신 사신들은 은을 긁어 모으려고 조선에 왔다고 합니다. 선뜻 은 오십 냥을 내놓고 긁어가기는 또 얼마나 긁어 갔을까요! 오죽하면 국가 위신을 손상시킨 죄로 탄핵의 대상이 되었을까요.


명은 조선에 가혹했는데 청은 조선에 관대했다는 이야기가 18세기 쯤에는 살며시 나왔다 합니다. 이런 사정을 모를 리 없는 연암이, 우리 사신들이 대국의 성묘를 배알하면서도 두 거인에게, 변변하지도 못한 환약과 부채를 선물한 것을  부끄럽다고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몸소 그들의 숙소를 찾아, “창졸간에 나선 나그네라, 지닌 것이 없어 변변하지 못한 환약과 부채를 올리기에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하고 사과의 말까지 정중하게 니다. 살림살이도 녹록치 않은 지방 출신 거인들에게 돈독하게 쌓아올린 우정 한 스푼을 얹은 덕입니다. 넉넉하게 사례하고픈 심정, 공감이 됩니다.


두 거인은 허리를 굽히고 사례를 합니다. “주인된 도리로 인도한 것이 무슨 수고이겠습니까. 분에 넘치는 선물을 주시니 충심으로 감사하옵니다.” 그 말이 맞을 것입니다.  유학생 투어 가이드들은 조선 사신들을 위해 기꺼이 하루를  내주었습니다. 청심환과 부채는 분에 넘치는 선물로 받아들고요.  우정 한 일을 두고 가격을 매길 수는 없지요. 왕곡정이 청심환 한 알을 요청하는 편지와 은자 두 냥보내옵니다. 연암은 진짜 청심환 두 알을 보내며 돈은 되돌려줍니다. 이만하면 가이드 피(fee)는 충분할까요? 물가가 당최  알쏭달쏭하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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