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마시는 이유-2

만남을 축하하며

by 소설

"그때 3년 전인가? 마포였지? 거기 혜린이 너 회사 앞으로 내가 찾아갔던 적 있잖아. 그때 내가 진지하게 남녀로 만나고 싶다고 엄청 사인을 보냈는데도 몰랐던 거야?"

"그날 아무 이야기 안 했잖아. 맥주 한잔 마시고 헤어졌을걸. 전혀 몰랐지, 나는"

민호는 정확하게 3년 전 봄 즈음에 H 연구소 생활이 너무 고달파서 숙소를 떠나 누군가를 만나야겠다고 혜린이에게 연락한 일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좀 덤덤해 보이기 위해서 대충 기억이 안나는 듯 말을 꺼냈다. 집요해 보이는 건 별로 원하는 이미지가 아니라서 감추는 편이다.

시끌시끌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나누는 게 훨씬 쉬웠고, 친구들이 흘러가는 대로 이어가는 대화를 듣는 게 편안해서 좋았다.

내 감정의 면면이 드러나는지 신경을 덜 써도 되는 술모임이 항상 반갑다.

우르르 섞여 들어서 이야기를 꺼내면 알아서 이야기들이 결론나곤 했다. 내 의지와 상관 없이 흐를때도 많지만..


"어머 어머 어머, 이 달달한 분위기 모야? 모야? 지금"

"야, 지금도 가능성 있는 거 아냐? 혜린이 남자친구 지금 유학가 있잖아. 호주로"

"아, 그때 H연구소에 있을 때 S기업 다니는 분 사귄다고 하길래 내가 졌구나 싶었지, 하하. 어디로 유학을 가셨어?"

"시드니, 지난 부서에서 좀 힘들었나 봐, 올 가을에 들어와."

있는 집 자식들은 조금 힘들면 해외 나갈 생각부터 하고, 뭔가 불편한 맘이 들었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하아, 여기서 지금 내가 뭘 해야 되지?

따로 다시 만나자고 물어봐야 되나,

옛날에야 내가 많이 좋아했지만 그때야 어릴 때고,

지금은 뭐 그리 좋은 건지도 잘 모르겠고,

나이도 있는데 혼자 유학 간 남자친구 기다리고 있는 거 보면 결혼을 약속했나,

여자 친구도 있는데 무작정 해외로 나간 그 남자 친구는 별로 애정이 없는 거일 수도 있고,

여러 가지 생각이 몰려와서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목이 말랐다.

혜린이의 눈치를 살피며,

"너 심심하겠네, "

"뭐 똑같지, 친구들 만나고, 언니랑 영화 보러 다니고."

벽을 치는 건가, 영화나 담에 한번 보자고 해야 하나,

내가 보고 싶은 거 얘기하면 싫어하겠지,

뭐 더 괜찮은 거 없나 놀이공원이나 유람선은 좀 오버인가,

만사가 귀찮은 표정을 하고 머릿속에는 너무 많은 회로가 돌아가고 있었다. 폭발할 지경이다.

"한잔 하자."


대화교본이 하나 있으면 좋겠다.

부모님이 대화를 나누는 걸 본 적이 없다.

대형트럭 운전을 하시던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두 번씩 집에 오면 말없이 식사를 하고,

욕설하듯 거칠게 물건들을 아무렇게나 던지며, 내가 어찌 버는 돈인데 이것도 못하냐, 너는 편해서 좋겠다. 온갖 말을 쏟아내고 엄마에게, 우리에게 분풀이를 해댔다.

밥상을 엎는 일도 다반사였다.

엄마는 긴장한 표정으로 폭풍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계셨다.

그 시절 기억이 떠오를 때면 움찔움찔 악몽을 꾸는 듯 온몸이 긴장되었다.

사회운동을 그만두고 사회적 인식이 좋은 서열 높은 자리로 가야겠다고 결심한 것도, 계급이 낮은 노동일을 하는 가장은 가족을 피로하게 만들 뿐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버지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유들유들 언제나 편하게 이야기로 주의를 집중시키는 준서가 눈을 반짝이며 말을 꺼냈다.

"우리 다음 주에 야구 보러 갈래?"

준서는 여자동기들 누구와도 말을 편하게 한다.

나는 새로 나온 안주를 먹기 편하게 테이블 세팅에 목숨 걸고 수저 챙기고 있을 때, 준서는 친구들 말투를 따라 하며 유머스러운 이야기를 펼친다.

서글서글한 성격에 여유 있게 자란 티가 난다.

"진짜? 그럴까? 나 한 번도 안 가봤어"

젠장, 혜린이는 반가워하며 준서를 향해 웃는다.

"나도 가자! 그럼, "

다급하게 끼어들었다. 여기서 물러설 순 없다.

"오호, 금요일 저녁 콜?"

"나도 나도~~ 나도 데리고 가, 나 LG 팬이잖아~"

수빈이까지 합세하면 괜찮지,

"그래, 금요일 잠실에서 다 같이 만나자"

"좋았어! 한잔하자. 마시고 마시고~"

기뻐도 마시고 슬퍼도 마시고 술이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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