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도 참석하지 못하는 졸업식에 초라한 자신의 혼자 그 자리를 참석하고 싶지가 않았나 보다.
마땅히 졸업식에 입을 만한 정장 차림의 옷도 없었다. 옆에서 지켜보는 나도 안쓰럽긴 마찬가지였다. 내 옷장에서 이 옷 저 옷을 찾아보니 그나마 마리나에게 어울릴만한 까만 원피스가 나왔다. 그 옷을 입혀보니 그중에 제일 어울려 보였다. 내일 입고 갈 옷은 그런대로 해결이 된 것 같았고, 내일 수업을 빠지더라도 마리나에게 부모를 대신해서 내가 참석을 하겠다고 했다. 상원이도 올 것이다.
나고 자란 곳도 아닌 이 낯선 곳에서 부모 없이 잘 이겨내고 졸업을 한다는 것은 사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말은 안 해도 말이 통하는 자기 나라에서 부모의 보살핌 속에서도 사춘기를 이겨내기는 쉬운 일이 아닐 텐데, 하물며 그 속에서 많은 설움과 고독과 싸웠을 것이다. 여동생처럼 애처로워 보였다.
나라도 축하해 줘야 할 것 같았다. 밤이 다가오자 의기소침해진 마리나를 애써 재우고 긴 밤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자 잠을 뒤척였는지 마리나의 얼굴은 부어있었다. 평상시 화장을 하지 않던 마리나는 날이 날이니 만큼 특별한 날에 화장을 하고 멋지게는 아니더라도 평상시 보다 단정하게 꾸미고 나서 우리는 학교로 향했다.
졸업식에는 꽃다발이 필수니 상원이가 꽃은 가지고 오기로 했다. 마리나와 같은 친구인 순례도 자신의 졸업식에 참석할 것이다.
우리는 이 낯선 곳에서 어찌 됐든 한국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강한 동지애가 생겼다.
마리나도 애써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들이 옆에 있어주니 그나마 힘이 나는지 그렇게 어색하게 굴지는 않았다. 졸업식이 시작되려고 하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마리나의 근심이 어디서부터 온 지를 명백하게 확인할 수 있는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차에서 속속들이 내리는 학생들은 더 이상 학생들이 아니라 무도회장을 찾은 미녀들의 행진이었다.
한 것 부풀린 금발의 머리를 쓸어 올려 올림머리를 하고 옥색의 드레스를 입었던 너무나도 고혹적이었던 한 여학생은, 아직도 그녀의 얼굴이 생각날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얼굴이나 몸의 선이 너무나도 완벽하게 이뻤던 그녀는 전쟁과 평화의 무도회에서 방금이라도 뛰쳐나온 사람 같았다.
그녀의 뒤를 이어 무리 지어 들어오는 여학생들 역시 너무너무 이뻤다. 각양각색의 드레스를 맞춰 입고 들어오던 그녀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그 자신감이 전혀 어색하지 않을만치 시선이 그녀들에게로 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초등교육부터 시작해서 12년을 마감하는 이날이 그들에게는 가장 뜻깊은 날이었다.
여학생들은 이 날을 위하여 부모들이 드레스를 직접 만들거나 옷을 잘 만드는 사람에게 특별히 부탁하여 자신들의 자녀들이 한껏 돋보일 수 있도록 정성을 다하였다. 러시아 부모들도 자식사랑이 남다르다. 오죽하면 결혼은 안 해도 애는 낳아야 한다는 말까지 돌까.
순식간에 꽉 찬 강당은 이들로 인해 영화의 한 장면인 무도회장이 된듯한 화려하고 멋진 공간으로 바뀌었다.
마리나가 왜 그렇게 주눅이 들었는지 그제야 그 이유를 알 것만 같았다.
정말이지 러시아 여자들 이쁜 건 두말하면 잔소리지만 이뻐도 너무 이뻤다.
그 이후로도 숱하게 러시아의 미녀들을 만날 기회가 많았지만 그 날의 기억은 충격적이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영화의 한 장면 같았던 그녀들의 고혹적인 미모는 나 역시도 주눅이 들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녀들과 비교되는 나의 열등감이 들키지 않을 정도의 당당함과 뻔뻔함이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비교가 되어 나의 초라함이 그들 앞에서 드러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자금과는 다른 상황에 처한 평상시 입고 있던 옷으로 졸업식에 참석한 두 여학생이 내 눈에 들어왔다.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그녀들은 중국 국경에 가까운 곳에 위치한 몽골족이었다. 마리나는 그들 역시 이 곳으로 유학 온 거라 했다. 먼발치에 떨어져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경꾼처럼 바라만 보고 서 있는 그녀들에게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무사히 졸업식을 마치고 돌아온 우리들은 옆집 사는 총각들이 마리나를 위하여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다.
역시 한국사람들 정 많은 친구들이다. 내가 미리 마리나 졸업식이라고 이야기를 해 놓았더니 우리가 돌아오기 전에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4명의 젊은 총각들은 이미 이다를 통해서 마리나를 알고 있었다.이다도 저녁식사에 초대되어서 같이 마리나의 졸업을 축하해 줬다,
이렇게 이국에서 나는 또 하나의 소중한 경험을 추가했다.
한국 사람들과의 저녁은 이국이라는 것을 잊을 정도로 정겨웠다. 나와 비슷한 사람과 비슷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는 이 순간이 참으로 오랜만에 느껴보는 편안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