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새벽 동이 틀 무렵 아직 완전하게 날이 밝지 않아, 밖은 어둑어둑했다. 새벽 운동을 하려고 밖을 나서는 순간, 집 앞에 큰 사슴 하나가 여유 있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실제로 사슴은 가까이서 보면 등치가 꽤 크다.
도저히 앞으로 나갈 수도 없어 우왕좌왕하고 있으니 이 사슴은 너무도 여유 있게 나를 쳐다보고 있다. 도망갈 생각은 일도 없다. 마치 이 곳의 주인은 나야 하는 듯이....
내 집 앞마당과 뒷마당의 숲을 제 집 드나들듯이 하는 사슴 가족이었다.
도저히 비켜 설 기미가 보이지 않자, 나는 체념한 듯 그를 멍하니 같이 쳐다본다. 인간과 동물의 기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다. 잠시 후 사슴은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길을 벗어나 다른 곳으로 향하니 그쪽에 가족들이 있었다.
여기저기 사슴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사슴은 항상 무리 지어 다닌다. 집 뒤쪽 숲에서 살고 있는 이 사슴은 볼 때마다 여러 명이 항상 함께 움직였다. 이른 새벽뿐만 아니라 날이 밝은 시간에도 종종 동네 주변을 어슬렁 거린다.
원래 이 지역은 숲이었던 곳의 나무를 밀어내고 그 중간중간에 집들을 짓는다. 집을 짓고 난 후 뒷마당 쪽은 여전히 숲인 경우도 많다. 특히 내가 살고 있는 곳은 동네가 오래되어 땅도 널찍널찍하지만, 나무들 역시 빼곡히 들어서 있다.
마치 숲 안에 집이 들어선 것처럼 말이다.
알고 보면 동물들이 원래 살던 곳에 사람들이 나무를 밀어버리고 자신들의 보금자리를 차지한 것일 수도 있다.
주객이 전도된 느낌일 수도 있다. 동물들의 입장에선...
밤이 되면 이 지역의 또 다른 구성원인 너구리가 나무를 타고 올라와 뒷마당 데크를 넘어온다.
한 번은 딸이 창문에 붙어 집안을 쳐다보고 있는 너구리와 눈이 마주쳤다.
딸이 나에게 다가와
"엄마 누가 날 쳐다보고 있어"
설마 하고 데크 쪽문을 보니 닫힌 문으로 검은 눈이 우리를 향해 쳐다보고 있는 게 아닌가!
소스라치게 놀란 나는 너구리를 그렇게 가까이서 본 적이 없었다.
남편이 나가보니 도망도 가지 않고 쳐다보고 있다.
남편이 큰소리로 쫓아내는 시늉을 하니 그제야 무거운 엉덩이를 뒤로 하고 눈은 여전히 우리를 향해 쳐다보고, 뒷걸음질 치며 엉덩이를 씰룩거리고 나무를 타고 내려간다.
겁이 나기는커녕 그 모습이 귀여워 한참을 쳐다봤다.
그 이후에는 짝꿍을 데리고 왔다. 너구리는 귀여운 모습과는 딸리 공격성이 있는 동물이며 광견병을 옮기는 동물이기도 해서 사실 그리 달가운 친구는 아니었다. 한 번 온 곳을 계속해서 오는 습성이 있어서 한동안 안 보일만 하면 식구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어떤 동네에서는 너구리 두 마리가 길에서 싸움이 나서 둘이 치고받고 싸우는 장면도 목격했다 한다.
너구리 역시 뒤쪽 숲에서 사는 가족 들이다. 야행성이라 밤만 되면 먹이를 구하러 동네 주변을 어슬렁 거리고 다닌다.
어느 날은 어미 없이 조그마한 새끼 한 마리가 뒷마당 데크에 기어 올라와 있었다. 한눈에 봐도 새끼란 걸 알 수 있을 만큼 작고 앙증맞았다.
한 동안 계속해서 밤마다 올라와 썬룸의 스크린을 다 찢고 들어와 나만의 공간을 다 망가트려놨다.
밤의 무법자 덕분의 나만의 공간을 뺏겨버렸다.
친한 동생이 인간에게 위험하다고 애니멀 컨트롤을 불러서 쫓아내라고 했지만 , 그 조그만 생명이 위험하면 얼마나 위험할까 싶어 무력을 이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말을 들은 건가 싶게 너구리들은 무리 지어 나타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으니 조금씩 궁금해 지기는 했다.
어디서 자는지, 무얼 먹고 사는지...
다 알아서 살겠지, 인간들이 못 살게 굴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는 것은 인간이지 그들이 아니기에....
나의 집 뒷마당에는 울창한 숲과 냇물이 흐르고 있다. 비가 오면 엄청난 속도로 물이 흘러내리지만 비가 오지 않는 맑은 날이면 냇물은 거의 메말라 있다.
가끔 아는 동생들이 우리 집에 놀러 오면 비주얼은 항상 뱀이 우글우글거릴 거 같다고 한다. 사실 나는 집 주변에서 뱀을 본 적은 한 번도 없다. 옆 동네 사는 언니는 실뱀들이 막 동네를 기어 다닌다고 했지만, 나의 눈으로 직접 보지는 못했다. 다만 지렁이보다 조금 큰 도마뱀들은 여기저기 기어 다니기는 한다.
여름밤이 깊어질 무렵, 반딧불이가 여기저기 날아다닌다. 숲 속에서 밤에 반짝반짝 날아다니는 반딧불이는 모든 주변을 평화스럽게 만드는 재주가 특별난 애들이다.
저녁을 먹거나 커피를 마시며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모습을 보면 그 자체로도 행복하다.
반딧불이가 날아다니는 이유만으로도 내 주변의 공기는 청정지역이라는 걸 증명해 주는 것 같아 더없이 상쾌할 수가 없다.
나는 도시에 살면서 요즘 시골에서도 보기 힘든 자연의 풍치를 누리고 살아가고 있다.
새벽에는 열대우림에서나 날아다닐 법한 파란색의 새와 주황색의 총천연색의 이쁜 새들이 날아다니고, 나뭇가지가 심하게 흔들릴 때는 여지없이 다람쥐들이 이 나무 저 나무 옮겨 다니는 것이었다.
인간인 우리가 자신들의 영역을 침범했다고 시위라도 하듯이 다른 쪽에서는 딱따구리가 우리 집 처마를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갉아먹기 시작한다.
말 그대로 나의 집은 동물들의 천국이자 그들의 놀이터다. 나는 그들의 놀이에 심취하여 또 다른 행복감을 느끼며 비로소 나이 오십이 넘어서야 이 자연의 법칙에 순응하는 중이다.
젊은 나이에는 다소 귀챦고, 눈 앞에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자연의 위대함과 그 자연에 순응함으로써 얻어지는 마음의 평화, 그것은 물질로 얻어지는 만족감과는 전혀 다른 행복감이었다.
좀 덜 쓰고 좀 더 이해하려는 마음으로 동물과 같이 이 자연을 같이 나누며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서 한 번 더 일깨워 주는 이 집의 모든 것이 감사한 요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