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후아나의 가장 다운타운인 센트로에 자리를 잡고 6개월이면, 이 도시를 떠날 줄 알았던 기대와 달리 기나긴 기다림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전반적인 시설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이사 들어가는 아파트 맞은편 이웃은 다행히도 젊은 부부들이었는데 생각보다도 친절했다.
카르멘과 호세!
처음 보는 멕시코 현지인들이었다.
멕시코 영화에서 많이 나오는 그 흔한 이름을 직접 들으니 신기하기도 하고 마치 탱고를 연상시키는 이름들이었다.
그들 부부 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멕시코의 유명 도시 네온에서 이 곳으로 전근을 온 젊은 검사 부부였다. 이 곳이 처음인 우리 가족에게 호의적이었고, 밤이 되면 서로의 집을 초대해 저녁을 즐기기도 하였다.
나는 예전부터 어딜 가나 적응력은 끝내주는 스타일이라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나 낯섦에 두려움은 별로 없었다. 아들의 돌을 이 곳에서 치르게 되었는데, 두 부부가 데코레이션 하는 것을 손수 다 도와주기도 하는 등 다른 곳으로 전근 가기 전까지, 서로 자신의 터전이 아닌 곳에서 위로하며 살아가는 데는 도움이 많이 된 사이이기도 한 이웃이다.
어딜 가나 사람의 정은 비슷해서 좋은 사람들과의 관계는 항상 즐거웠다.
이 아파트에는 또 다른 한국 부부가 살고 있었다. 하와이에서 유학했던 젊은 부부들은 미국에서 멕시코 지사로 파견되어 1년간은 멕시코에서 살아야 하는 조건으로 이 곳에 살고 있었다.
마침 그 집 아들과 내 아들과 나이가 같아 친구가 될 수도 있는 조건이었다
예준이 엄마는 호탕하고 사람 좋게 생긴 친구였고. 예준 아빠 역시 사람 좋은 인상을 하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부부와 가까워지기 시작해 서로의 집을 왕래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무런 연고가 없는 낯선 곳에서의 이웃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은 존재였다. 거기에 코드가 비슷한 사람이거나 성격이 좋은 이웃과 인연이 닿으면, 작은 복권에 당첨된 것처럼 타국에서의 삶이 조금은 편해진다.
나에게는 이 복이 다른 이 보다 참 많았다.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든든한 버팀목들이 되어 주었다.
주말이 되어야 오는 남편이 없는 평일 동안 예준이와 세준이는 서로 간의 친구가 되었고, 예준 엄마는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예준이 아빠가 퇴근할 때가 되어서야, 우리 집에서 서서히 일어서기 시작하는 예준 엄마는 그렇게 무료한 멕시코 생활을 견뎌나갔다.
멕시코에서의 단순한 생활들은 그저 미국으로 들고 가기 위한 임시방편으로만 생각을 했기에,
그저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는 단순한 생활이 전부였다.
긴 시간이 기다리고 있을 줄도 모르고, 그저 조금만 있으면 가겠지 했던 나의 멕시코 생활은 나의 주변 사람들이 하나둘씩 미국으로 둥지를 트는 동안에도 여전히 나의 가족만 멕시코에 남아있는 꼴이 되었다.
남편이 없는 멕시코에서의 밤은 공포 그 자체였다.
밤 자체가 없던 멕시코의 무법천지인 그곳에서 아직은 그곳의 위험을 실감 나게 경험을 해 보지 않았기에 견뎌내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미국과 맞닿아 있는 국경도시는 그야말로 전쟁을 방불케 하는 위험에 노출된 도시였고 , 실제로도 한국 사람들에게도 많은 위험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던 도시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삶은 살아나가야 하는 이유가 있기 때문에 이 보이지 않는 위험한 도시에도 사람들은 넘쳐나고 하루하루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보통의 삶은 존재했다.
나 역시 그 무리 중 하나의 삶으로 이 위험한 도시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을 치고 살았다.
멕시코는 내 삶에 있어서 죽지 않기 위해서 버팅긴 삶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로 뒤도 돌아보고 싶지 않은 인생의 일부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그 돌아보고 싶지 않은 인생에서도 간혹 문득문득 기억나는 장면들은 있기 마련인데. 그 순간순간에 만났던 기억이나 좋은 이웃들!!
그들 또한 나의 인생의 한 부분이었음을 살면서 가끔 생각나는 그리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