멕시코에서 아이 낳는 풍경.

멕시코의 병원을 가다.

by kseniya

센트로에 아파트를 옮기고 난 후, 나는 뱃속의 아이를 위해 병원을 찾아야만 했다. 집에서 가까운 거리의 산부인과를 예준 엄마를 통해서 소개받아 가게 되었다.

멕시코의 의료 체계는 미국과 비슷하지만 상상을 초월하는 미국의 의료비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이유로 많은 미국인들과 미국에서 살고 있는 멕시칸들이 국경을 넘어 이 곳의 병원을 이용하거나 미국에서 구하기 힘든 약이나 보험을 통해도 비싼 약들을 구하기 위해 미국에서 멕시코로 국경을 이용해서 넘어온다. 센트로 지점에 수많은 약국들이 들어서 있는 곳에는 항상 미국에서 넘어온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 당시에는 이해를 하지 못했지만 미국에서 살면서 비이상적인 의료체계를 체험해 보니 그 당시의 상황들이 이해가 되고도 남을 지경이었다.

아이를 낳는데 만불이 넘어 든다는 이야기는 있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물론 보험으로 커버되어서 실제로 그렇게 지불을 하는 사람은 실제로 드물다. 보험이 없는 사람들은 캐시로 딜이 가능하다지만, 처음부터 그런 액수가 책정된다는 것이 이해하기도 믿기도 어려웠다.

차라리 아무것도 없는 불체자들이나 저소득층은 돈 한 푼 안 내고 아이를 낳을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뭔가 이상한 시스템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을 정도니 말이다.

그 힘들고 어려운 미국 병원의 문턱을 오히려 그들은 하루가 멀다 하게 드나드는 이상한 구조였다.


자그마한 병원에서 나온 의사는 영화에서 갓 튀어나온듯한 여배우를 연상시킬 정도로 미인이었다.

카메론 다아즈를 닮은 그녀는 얼굴만큼이나 친절하게 우리를 맞았다. 그 당시 한국에서는 성별을 알려주는 것이 불법이었지만, 이 곳에서는 물어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알려주었다.

딸이라는 말에 남편은 좋아 어쩔 줄을 몰라했다. 나 또한 이제 늦은 나이에 더 이상 출산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안도감을 느끼며 집으로 돌아왔다.

매달 정기첵업을 갈 때마다 기분 좋은 얼굴로 우리들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의사는 병원에 오는 느낌보다는 편안하고 쉼터를 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너무나 친절하게 우리들을 맞이해 주었다.

멕시코 역시 보험이라는 것이 있지만, 우리 같은 외국인들은 주로 캐시를 주고 이용을 한다. 한 번 가는데 30불 정도 드는 비용에 미국에서는 인색하다는 초음파도 갈 때마다 마음껏 해 주며 아이의 상태를 확인시켜 주었다.

한 달에 한 번씩 주기적으로 가던 병원을 달이 막달에 가까워지자 일주일에 한 번씩 다녀야 했다.

마지막 주기에 정기검진을 갔다가, 임신성 중독증이 올 수 있다고 하여 바로 유도분만으로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말에 병원에서 나오자마자 짐을 싸서 분만을 하는 병원으로 향해야 했다.

신기하게도 첫 아이를 낳을 때도 정기검진을 갔다가 그 날 저녁에 조짐이 보여 바로 택시를 타고 병원에 들어가 아이를 낳았는데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났다.


한국과 달리 검진하는 병원과 아이를 분만하는 병원이 분리되어 있어 우리는 큰 병원으로 가야 했다.

병원에 들어서자마자 나에게 일인실이 배정되었다.

벽에는 그림이 붙어있고 침대와 앉아 있을 수 있는 소파가 놓여 있는 일인실은 쾌적하고 조용한 곳이었다.

외국에서의 아이를 낳는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일이긴 했지만, 다른 모든 것들은 오히여 더 편안함을 가져다주었다.

의사들이 나의 주변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항상 사복 차림의 이쁜 모습으로 나를 검진해 주던 나의 주치의인 앙헬리카 의사가 도착하였다.

수술 가운을 입고 나의 병원에 들어와 나의 안정과 상황을 살피는 그녀가 낯설었다.

여유 있는 모습으로 다른 의사들을 불러 모으면서 각자의 일을 지시하는 그녀에게서 나는 프로의 모습을 보았다.

내 방에 세명의 의사와 간호사 한 명이 한 군데로 모였다.

한국에서는 무통분만을 잘 권유하지도 않고 참을 때까지 참자다 힘들어질 때 주는 경우가 많다. 이 곳은 처음부터 당연하다는 듯이 무통주사를 놓을 거라고 이야기를 해 주었다.

그 주사를 놓기 위해 마취과 의사가 들어왔다. 뒤이어 아이가 나오자마자 체크를 하는 소아과 의사가 들어왔다.

나의 주치의인 앙헬리카는 나의 전반적인 상황을 체크했고, 나머지 간호사가 그녀의 옆을 지키고 있었다. 무통분만 주사를 맞은 나는 아무런 고통을 느낄 수가 없었다. 평온하게 시간만 경과하기를 기다리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머지 의사들과 남편은 서로 웃으면서 남편이 가지고 온 노트북 속의 사진을 보면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었다. 이제껏 경험해 보지 못한 이상하고도 평화로운 광경이었다.


아이를 낳는 병원에서는 산모들의 고통의 신음소리 하나 들을 수 없었다.

한국에서 첫애를 낳을 때 분만실로 들어가니 칸막이가 처져 있는 각자의 침대에서 쉴 새 없이 새어 나오던 그런 시장통 같았던 광경을 경험했던 나에게는 색다른 경험이기도 했다.

시간이 되자 앙헬리카는 나에게 아이를 낳으러 가자고 이야기하며 나를 다른 곳으로 이동하여 아이를 낳는 곳으로 데리고 갔다.

너무나도 친절했던 의사들.. 각자 한 팀이 되어 능수능란하게 움직이던 나의 팀들은 부드러운 말투로 나의 심신을 안정시켜 주었고, 믿음직스러운 나의 주치의인 앙헬리카는 너무나도 여유 있게 나를 위로해 주었다.

아이를 무사히 낮자마자 하루도 안 돼서 병원을 퇴원하는 것도 신기했다. 오늘 아이를 낳은 산모를 그 날 바로 집으로 보내는 이유는 아마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병원 입원료가 비싸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았다.


한국과는 전혀 다른 아이를 낳는 풍경은 아직도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남아있다.

전혀 모르는 세계의 두려움은 인정 있는 친절로 인해 신뢰로 바뀌어있었고, 인생에서 아이를 낳는다는 무거운 일이 이렇게 즐겁게 끝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아이를 낳자마자 출생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이유로 나의 딸의 이름은 즉석에서 그녀의 주치의의 이름을 따서 앙헬리카가 되었다.

그렇게 나의 딸 앙헬리카는 멕시칸 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