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을 가르는 도로

운명의 기로에 서다.

by kseniya

멕시코에 오고 나서 이제 셋이 아닌 네 명으로 가족이 늘어났다. 그러나, 생각했던 거와 달리 미국으로 들어가는 길은 쉽지 않아 보였다. 기다림보다는 체념에 가까운 심정으로 멕시코의 삶을 이어나갔다.

남편은 여전히 금요일 오후가 돼서야 한국 장을 잔뜩 봐서 멕시코로 돌아왔다.

연년생의 두 아이를 친정부모님이 가시고 난 후 오롯이 나 혼자서 감당해 내야 했다. 그 시절 생각나는 거라곤 번갈아 채워야 했던 기저귀를 갈고 재우는 일상만이 생각이 날 정도로 단순하고 건조한 일상의 반복이었다.


옆집 카르멘과 호세가 다른 도시로 발령을 받아 친해지려고 할 무렵 이 도시를 떠났다. 예준네 역시 1년이란 기간만 지나면 미국으로 돌아갈 살황이었다. 만남은 기분 좋은 설렘을 주지만, 헤어짐은 마음속에 또 다른 공허함을 만들어 주었다.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만남으로 그 공허함을 채워주기는 하지만, 헤어짐은 항상 나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런 공허함으로 하루가 아기들 뒤치다꺼리에 몸과 마음이 지친 상태에서 예준 엄마가 다니던 교회를 같이 나가보자고 나를 설득했다.

그 당시 이런 낯선 외국에선 한국 사람을 만나는 통로가 이렇게 작은 교회를 통해서만이 가능한 시절이었다.

외롭고 힘든 상황을 이겨보려고 또는 아이들에게 친구를 만들어 주고 싶은 마음에 예준네를 따라 교회를 나가보았다.

교회라고 하기에는 민망할 정도로 가정집 하나를 빌려 교회처럼 꾸며 놓은 곳이었다.

그곳엔 아들의 또래도 많았고 , 젊은 엄마들도 많아 역시 활기가 돌았다.

나와 남편은 종교에 대한 까탈스러움이 없는 사람들이라 남편도 내가 자신만 바라보고 일주일 기다리는 것보다는, 다른 사람과 어울려 지내는 것이 더 나을 거라는 생각에 멕시코에 오면 나와 함께 교회를 같이 나가기도 하였다.

그곳엔 뜻밖에도 하숙집 할머니인 공주 할머니도 와 계셨다.

하숙집 주인인 공주 엄마의 시동생도 이 곳을 다닌다고 했으니 세상은 참 좁고도 좁은 문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작은 도시 안에 한국 사람이라고 해 봤자 얼마나 된다고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싶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서 나의 멕시코 생활도 활기를 띄기 시작하였다. 예준 엄마와 예준 아빠는 일이 있을 때마다 우리들을 데리고 다녔고, 그 안에서 멕시코 안의 모든 소문이나 이야기들을 들을 수가 있었다.



교회가 위치하고 있던 곳은 바닷가가 바로 코 앞에 보이는 소위 말하는 티후아나에서 가장 부촌인 바닷가 도시였다.

부자 동네답게 서서히 이 곳으로 들어오는 입구부터 이국적이고 다른 세상을 들어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곳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현대 회장인 정주영 씨가 피를 수혈받았다는 소문이 난 병원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한 곳이다.

매 주일마다 이 곳에 오면서 , 우리 가족은 이 도시의 매력에 빠져 도시의 이 곳 저곳을 좀 더 들러보게 되었다.

이 곳에서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 곳은 미국과 연결된 1번 국도가 지나가는 해안도시라서 가는 곳마다 바닷가가 끝없이 펼쳐져 있는 천연의 자연 풍광을 가지고 있는 곳이기도 하였다.



어느 일요일 교회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 장을 보고 이 곳 저곳을 다니다 밤이 돼서야 집으로 향하게 되었다.

교회가 있는 곳에서 집으로 가는 길에는 산 이시드로 국경이 가까이 자리하고 있었다.

남편은 멕시코의 도로 상황을 잘 모르기 때문에 순전히 도로표지판으로 운전을 해서 갔다. 멕시코의 도로 상황은 미국처럼 자로 잰 듯이 정확하게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센트로 방향으로 가던 길이 두 갈래로 나뉘었다.

남편은 그냥 가던 길로 계속 가는 것이었다.

그 길은 바로 산 이시드로 국경과 연결되어 있던 도로였다.

계속 그 도로를 타고 가면 바로 국경의 검문소를 만나게 되어있었다.

남편은 식은땀을 흘리기 시작했고, 자동차 뒷 자석에는 세상모르고 곯아떨어져 있는 두 아이가 잠들어 있었다.
남편은 갈등을 하기 시작했다.

그냥 이대로 들어가 보자고,,,,걸리면 할 수 없지만 안 걸릴 확률도 있지 않냐고 나를 설득시키기 시작했다.

계속된 국경을 넘어 이중생활을 하던 남편과 나는 사실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남편은 모험을 한 번 해 보자 했다.

걸리면 신분증을 놓고 나왔다고 하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미국을 들어가는 조건 중에 밀입국은 그 어떠한 경우에도 구제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기에, 그런 무모한 짓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차는 점점 보더라인에 가까워지고 있었고, 어느새 우리 차는 보더라인 한 줄에 끼어 있었다.

남편은 나를 종용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성공을 한 경우와 실패의 경우 실패했을 때의 무게가 더 크기 때문이었다.

긴 라인이 좀처럼 움직이지 않자, 나는 그 밤에 아이 둘을 둘러업고 가까이 줄지어 서 있는 택시가 있는 곳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달리는 내내 가슴은 두려움으로 심장이 마구마구 뛰었다. 그 밤에 우리를 어디로 데려갈지도 모르는 택시가 있는 곳으로 가며, 나는 속으로 수 없이 많은 성호를 그었다.

신의 가호가 함께 하기를 빌면서.

나와 내 아이들의 안전은 오로지 신의 손에 달렸다. 국경의 밤은 어둠 속의 하이에나가 으르렁 거리는 공포의 시간이었다.

남편은 걱정스러운 모습으로 나를 쳐다보았지만, 오로지 그 라인을 넘어갈 수 있는 유일한 신분이라 차는 서서히 그 라인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국경을 통과해야만 다시 돌아 나올 수 있는 길이 나오는 구조였다.

나는 택시를 타고 그 무서운 멕시코의 밤을 달려 다행히도 무사히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좋은 택시기사를 만난 덕분이었다. 아이를 집까지 올려 준다 했지만, 외국인의 집이 노출되는 것은 이 곳에서는 엄청나게 위험한 일이기에 나의 집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일부러 내렸다. 택시가 내 시야에서 사라질 때쯤, 힘겹게 자고 있는 큰 아이를 깨워 걸리고, 갓난쟁이인 딸을 둘러업고 다시 나의 집으로 힘겹게 향했다.


집으로 돌아와 아이들을 재우고 난 후, 긴장으로 풀려버린 다리를 펴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을 때 남편이 돌아왔다.

얼굴은 빨갛게 상기된 채 나와 아이들이 무사히 집에 도착해 있음에 그 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너의 결정이 옳았다고 이야기하는 기죽은 남편의 모습에서 가족에 대한 미안함과, 겪지 않아도 될 일을 겪게 한 것에 대한 모든 감정이 들어있었다. 삶, 참 쉽지 않은 길이었다.


그날 밤.....

그 결정은 지금 생각해도 옳은 결정이었다.

운명!!!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면 거스르는 것보다 시간의 흐름에 맡기는 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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