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내리는 밤 촛불 하나 켜 놓고....

비즈니스의 철칙 신용, 신용, 신용.......

by kseniya

개인적인 감정도 없이 사생활도 없이 나의 일은 늘어만 갔다. 체력적으로 힘들었고 정신적으로 힘든 나날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만큼 사업은 활화산처럼 타 올랐다.

정해진 퇴근 시간은 의미가 없어진 지 오래였다.

저녁시간 밖은 세차게 비가 내리고 있었다. 어느 사업장이나 마찬가지로 비가 오면 손님은 줄어들기 마련이었다.

나의 사무실에 상주했던 김과장과 사샤가 비도 오는데 술이나 한 잔 하자고 일찍 퇴근하자고 나를 졸랐다.

그러나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기다리는 사람이 있었다.


러시아 상인들이 처음 한국에 도착을 하면 짐을 풀고 하는 일이 일단은 이 곳 저곳 가격을 비교해보는 가격 쇼핑을 하러 돌아다닌다. 비즈니스에서 돈 백 불은 그들에게 더 많은 이득을 가져다 주기에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그 날 아침에 소치에서 온 제냐와 블라직이라는 청년 둘이 우리 사무실을 다녀갔다.

크라스나 다르에서 온 나의 바이어 따냐가 소개해 주었다고 했다.

자동차의 가격을 물어보고 오더를 바로 하지는 않았다. 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을 나서기 바로 직전에 오늘 밤 9시에 오더를 하러 오겠다고 기다려 달라고 했다.

예의 건성으로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이런 손님들이 다시 오기란 하늘에 별따기였다.


그러나 일단은 약속이니 나는 기다리기로 했지만 사샤와 김 과장이 나를 말렸다. 비도 오고 하는데 누가 그 시간에 오겠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고 나를 졸랐다. 그럼 둘이 먼저 가라고 했다.

나 혼자라도 기다리겠다고, 안 올 수도 있지만 만의 하나 올 수 있는 확률이 단 1프로라도 있다면 기다려야 하는 게 맞지 않냐고... 그 시간에 기다렸다 오지 않으면 그때 가도 늦지 않을 거라고..

그들은 메고 있던 가방을 풀었다. 가녀린 여자 혼자 그 사무실을 지키고 있는데 자신들이 어찌 가냐고 하면서.. 이내 먹을 것과 맥주를 사 가지고 돌아왔다.


그러나 그 날 나의 기다림의 보상으로 그들은 정확하게 9시에 나의 사무실 문을 두드렸다.

밤은 이미 어두워지고 밖은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사무실은 정전이 되기에 이르었고, 영화에서나 일어날 믿기지 않는 일이지만 정전 속에 촛불을 켜고 나는 그 날 오더를 받았다.

신기한 나는 그들에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그렇게 일찍 결정을 하고 약속시간에 나왔냐고...

제냐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의 눈을 봤다고 너의 눈에 담긴 신뢰를 봤다고.....

하!!!! 나의 피곤함이 눈 녹듯이 녹는 말 한마디였다.

그러자 이번엔 제냐가 물어보았다. 보통 자신들이 그렇게 말하면 다들 그 시간까지 기다리지 않는데 자신들도 문이 열려 있을 거라는 생각은 반반이었다고 했다.

그 시간까지 자기들을 왜 기다렸냐고... 나는 그 때나 지금이나 참 솔직했다.

너희들을 기다린 게 아니고 나와의 약속을 지킨 것뿐이라고....

그 날 우리는 그 사무실에 술자리를 만들어 놓고 밤새 수다를 떨었다.

그 수다는 다른 사람이 대신할 수 없는 나의 영업 노하우였다.


그 날 이후로 김 과장의 눈에서는 나에 대한 근접할 수 없는 신뢰감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사람에게 반하는 이유!! 분명히 있었다.

자신의 능력을 알고 있는 김 과장은 업무상 여직원들의 업무능력이 떨어지면 가차 없이 냉정한 상사였다.

여자라는 이유로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그 신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했다. 나를 보고 난 이후에..

나는 나의 신념대로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 험한 세상에서!


그런데 나의 신념에 찬물을 끼얹는 상황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을 하고 난 후 한 달이 지나자 나의 첫 월급날이 다가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내심 내가 기대하던 그 금액이 아니었다. 그저 흔한 수표 다섯 장이 들어있었다.

그 시절에 상황을 생각해 보면 받기 힘든 거금 오백만 원이 들어있었다. 당연히 기쁜 일이었다.

그런데 찝찝한 기분이 나를 지배했다. 약속되어 있던 그 외의 인센티브가 들어있지 않았다.

그 인센티브를 합치면 천만 원이 훌쩍 넘어야 하는 액수였다. 기다려 보기로 했다.

뭔가 착오가 있겠지..... 그러나 그것은 착오가 아니었다.


나는 은행으로 가서 직접 만 원권 짜리 오백 개로 수표를 바꾸었다.

만 원짜리 오백 개의 행복을 나의 아버지에게 갖다 바쳤다.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린 그 돈을 세면서 나의 아버진 눈물을 흘렸다.

드디어 막내딸의 덕을 보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엄마가 보고 온 점집에서 막내딸 덕 본다고 그 시절 귀했던 계란 프라이를 매일 해 주라던 점괘가 맞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눈물을 보면서 뭐라 말할 수 없는 묵직한 책임감이 나의 가슴속으로 뜨겁게 훅 하고 들어왔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거침없이 살아 나가는 아버지의 막내딸은 그렇게 사랑에 대한 보답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