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흐스탄에서 온 상인 둘이 찾아왔다. 그들은 러시아 본토인 슬라브 계열이 아니라 우리와 비슷하게 생긴 카자키들이었다.
원래 차를 수입하는 수입상으로 그들은 이제껏 두바이에서 차를 거래해 왔다고 했다. 그 당시 두바이는 수출 자유무역지역으로 무관세 지역이었다. 벤츠나 고급차들의 중고차들을 그곳에서 많이 수입을 해가곤 했다고 했다.
그러나 달러의 영향으로 메리트가 큰 한국시장을 자신의 동료가 알려주어 나를 찾아오게 되었다고 했다.
이들의 차를 사가는 규모는 이제껏 개인상인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차만 전문으로 수입해 가는 거상들이었다.
차를 사가는 양이 대규모라서 우리 회사와 다른 회사 두 곳을 컨택해서 나누어 사 가지고 갔다.
이런 거상을 잡기 위해서는 이익은 어느 정도 희생을 해야 한다. 다음의 더 큰 거래를 위해서이기도 했다.
차의 대수는 많았지만 이익금은 생각만큼 많지 않았다.
그러나 이들이 가고 난 후 또 다른 거상들을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은 아주 큰 거상이니 신중해야 할 거라는 팁을 남기기도 했다.
그들이 두바이에서 만난 자신들과 같은 거상에게 나의 회사를 소개해 주었다.
이제까지 사무실에 앉아 영업을 하던 것에서 벗어나 본격적으로 공항으로 그들을 마중 나가게 되었다.
청바지에 머리를 질끈 동여 맨 상태로 비교적 자유스럽게 일하던 나는 그날부로 정장을 차려 입고 그들을 마중하러 나갔다.
본격적으로 사업의 규모는 커지게 되었고, 그들의 출연은 사업이 전문적으로 발전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사샤와 안드레아!
둘은 러시아 상인이 아닌 우크라이나의 오데사 출신이었다.
역사적으로 보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는 앙숙지간이다. 우리나라와 일본 같은 관계이기도 한데 겉으로 보면 같은 슬라브 민족계열이라 구분하기 힘들다.
그들은 거상답게 거만스러웠고 사샤는 예전에 러시아 마피아였다는 소리도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나는 그런 사샤에게
" 나 지금 너 무서워해야하느거니"라고 물어보았다.
사샤가 웃으면서 이야기했다. 지금은 마피아 안 한다고 그러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ㅎㅎㅎㅎ
"그런데 아무래도 네가 마피아였더라도 나는 널 안 무서워할 것 같은데..."
"네가 보는 것보다 나는 훨씬 강해"
나의 농담에 사샤는 몸에 밴 거만함이 조금씩 자연스럽게 풀어지기 시작했다.
나의 손님 중 가장 야릇하게 나에게 다가온 친구인데 손님 중에 가장 나를 여자로 생각하고 훅하고 들어오던 사람이었다.
사업에서 남녀 사이의 감정이 개입이 되면 그 사업은 십중팔구 망한다고 나는 생가을 하는 사람이다.
감성이 이성을 지배할 때 이미 제대로 된 판단은 흐트러지게 되어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다.
나는 이성적이기보다는 감성적인 사람이긴 했지만, 일을 하는 순간만큼은 이성적으로 마음을 다잡아야 할 순간이 다가온 것이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나의 사무실에 죽치고 앉아 야릇하게 내가 일하는 걸 쳐다보기도 하고 밥도 먹고 하였다.
그렇게 할 일이 없나 싶어 사샤를 시켜 서울 관광도 시켜주고 했지만, 그가 원한 건 나였다. 나의 일거수일투족 다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부담스러운 눈빛이 부담스러웠지만 함부로 내 감정을 드러내기엔 그는 거물이었다. 사샤는 처음부터 주문을 하지는 않았다. 캐시도 가지고 들어오지 않았다. 은행으로 송금이 되면 주문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한국의 시장조사를 하고 여기저기 다녔다.
거구의 사샤는 그러나 행동이나 판단력은 아주 깔끔한 전형적인 비즈니스맨이었다. 날카로운 그의 판단력은 나를 긴장시켰고, 지금까지의 판도와는 다르게 그의 패로 끌려가게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 사샤는 내가 자기를 위해서 같이 시간을 보내 주길 바랬다. 그의 의중을 알았기에 나는 일부러 더 바쁜 척을 할 수밖에 없었다. 사샤가 온 이후로 나는 거의 정장을 입고 일을 하기 시작했다. 흐트러진 나의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서였다.
능글능글 맞게 다가오는 그의 능청스러움에 잘 넘어가야 했다. 나의 사업이 시작되고 나서의 최대의 위기였다.
그 당시 내가 여자였지만 아무도 나의 선을 넘어오는 사람은 없었다. 남자들의 입장에서는 버거울 존재이기도 했고 소위 말하는 그들의 선에서는 아주 싹수가 없는 여자였다.
어느 감정을 가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내가 선을 그어놓으면 대부분의 남자들은 그 선을 넘어오지 못한다
친구처럼은 가능해도 남자와 여자 사이의 이상기류는 만들지 않았다. 그 당시는 일이 우선이었다.
여담이지만, 원 사장님과 일할 때 옆 사무실 총각 사장이 나를 좋아하다 나에게 된통 당해서 그와 거진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나를 향해 미친년이라고 말하고 다녔다. 나는 그런 말에는 일언반구 대구도 하지 않는다.
그를 이해하기에.... 그 정도쯤이야 감수하고 말아야지.
나의 선을 넘어오려 하면 나는 엄청 차가워진다. 쌀쌀맞기가 시베리아 바람 같았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28살의 나의 감정을 나도 감당하기가 쉽지 않았다.
결정을 할 때가 왔다.
만약 이런 감정으로 비즈니스를 해야 한다면 나는 너와 사적인 감정으로는 더 이상 비즈니스를 할 수가 없다. 그러니 네가 결정을 해라. 나를 친구 이상으로는 생각을 안 했으면 좋겠다고 더 이상 불편한 관계는 원하지 않는다고 말이다. 여자가 필요하냐고 물어보았다. 만약 그렇다면 이 곳이 아닌 다른 곳을 찾아가야 할 것 같다고....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훅하고 들어오는 여자, 사샤가 무척 놀란 눈치다.
서양 남자들 깔끔하다. 그 소리를 듣더니 그전까지 느물느믈하던 행동이 다소 냉정해졌다.
속으로 하나의 거상을 잃는구나 싶었다. 더러운 거래는 하고 싶지가 않았다.
그러나, 그도 역시 비즈니스맨이었다. 반전이 시작되었다.
다음날부터 본격적으로 사업 이야기가 오고 갔다. 이제까지 능글능글 마치 개인적인 감정에 장난하듯 넘어가던 그가 이제 정상적인 자신의 비즈니스로 돌아온 느낌이었다.
본격적인 비즈니스 관계가 시작되었다. 두바이에서 보낸 돈이 조만간 한국으로 들어올 것이니 나보고 확인을 잘해달라고 했다.
자신은 이번 한국 방문이 처음이지만 당분간은 한국을 방문할 일이 없을 거라 말했다.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르겠다고 했다. 나의 회사와 은행을 통한 거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자신이 돈을 은행으로 송급하면 바로 차를 보내 주는 방식으로 사업을 하자고 제안했다. 지금까지 그 자리에서 현금으로 거래하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사업제안이었다. 가장 투명한 사업방식이기도 하다.
지금까지 그는 나를 시험한 것이었다. 믿을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오히려 그들에게 더 불리한 방식이었기 때문에 사샤는 그동안 나의 믿음을 시험해 본 것이었다.
이후에 그는 나에게 엄청난 이득을 안겨주는 바이어이자 나의 친구가 되었다. 한꺼번에 두 가지가 모두 해결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