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의 초대로 그들의 세계로 들어가 보았다. 시간을 보내기엔 더없이 좋았다. 그러나 성향이 나와는 맞지 않은 일반 신변잡기식의 대화는 지루해지기 시작하면서 이 곳 저곳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 당시 한창 인터넷으로 지금보다는 덜 활성화되었지만 어쨌든 여기저기 채팅방이 생겨나기 시작하던 시대였는데, 나는 이런 세상이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나 이 손가락으로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세상에도 감정은 있었다.
신기하게도 글에서 그 사람의 성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밤마다 신나서 밤까지 꼴딱 새워가며 지칠 줄 모르는 나를 식구들은 또 신기하게 쳐다보고 있었다.
드디어 미쳤구나! 뭐 하나에 빠지면 감당 못하는 나였다.
그런데 여기저기 돌아다니다 보니 피곤했다.
아! 나만의 방을 만들어야겠구나 싶었다.
사이트를 들어간 지 얼마 안돼 아예 나만의 방을 만들어 버렸다.
러시아방!!!!
러시아에 대해서 전반적으로 설명해 주고 그 분야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드나드는 방을 만들었다.
방을 개설하고 보니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장시간 러시아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고 개인적인 이야기도 살짝살짝 들려주기도 했는데 항상 들리던 두 분은 실제로 커플이 되기도 하였다 ㅎㅎ
방의 특성상 학생들이나 공무원들이 주로 많이들 들어오셨는데 심지어는 태국에서 특집 방송 다큐를 만들고 있던 sbs 피디님도 들어오시곤 했다. 가끔 연예계 뒤 이야기도 들려주곤 했다. 신기한 것은 예전 통기타 가수인 분도 들어오시곤 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나는 빠져 들었다.
상심을 잊는 데는 이만한 방법이 없겠다 싶을 정도로 나는 새로운 곳에 빠져 들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아이디를 들고 누군가 나타났다.
그런데 이 특정인이 말도 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가지고 않는다.
한참을 두고 보다가 내가 먼저 말을 거니 한참있다가 인사를 한다.
아마도 방을 잘못 찾은듯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선지 말도 하지 않는 특정인에게 간혹 말도 걸어주고 하면 대답은 훨씬 느리게 돌아왔다.
이런 사람들은 십중팔구 방을 잘못 찾거나 하는 경운데 이 사람은 나가지도 않는다.
내 방이 무얼 하는지도 잘 모르는 것 같아서 한참을 설명을 해주고 나니 다음에 다시 들린다고 하고 방을 나가버렸다. 그다음 날 낯선 아이디가 들어와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어제의 그 아이디라는 사람과 느낌이 똑같았다.
혹시 와사비님 아니세요? 와사비도 그냥 와사비도 아니고 와4b..
"어떻게 저를 아세요?" 신기한 듯 물어보았다.
"느낌이 그분 같았어요" 정말로 그랬다.
아이디를 바꿔 들어온 자신을 알아본 내가 신기한 듯 내 방에서 나가질 않았다.
글에서도 그 사람의 성격이 보였다.
느긋하고 느리고 나빠보이지 않는 성격들이....
내가 계속 말을 시키기 시작했다.
드문 드문 들어오는 그의 대답들이 이상하게 내 맘에 걸려들기 시작했다.
계속해서 내 방을 들어오더니 급기야는 내 방에 죽치고 들어앉아 있기 시작했다.
인연의 시작이었다. 그것이 혹여 악연일지라도 벗어나기 힘들어질 듯한 알 수 없는 보이지 않는 기운이었다.
이 무렵 벤쿠우버의 사는 친한 동생이 한국에 들어와 결혼을 하기로 했는데 부케를 나에게 던진다고 해서 사양했지만. 어쨌든 부케는 내가 받기로 되어 있었다.
부케를 받은 자는 6개월 이내에 결혼하지 않으면 6년 동안 결혼을 못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그 결혼식을 다녀오고 그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6개월 안에 결혼을 하면 되겠네..."
아무렇지도 않게 이야기를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정말로 6개월 안에 결혼을 하게 된다.
러시아방이고 뭐고 둘만의 방이 되어있었다. 시도 때도 없이 들어오는 이 남자와 할 일 없는 내가 만나는 시간이었다. 이쯤 되면 서로가 누군지 당연히 궁금해지는 건 인지상정이 아닐까?
뽀샵을 정성스럽게 한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인 듯 한 사진을 보내고 나니 그에 대한 답으로 드디어 그 남자에게서 자신의 사진이 도착했다.
우리 식구들 프린터로 전송되어 오던 그 사진이 출력되기만을 새언니까지 가세하여 얼굴만 내밀고 기다리고 있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