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잃은 상심은 생각보다 컸다.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세상으로부터 나의 것을 얻어낸 나 자신이 무색하게 나의 세상이 무너져 버렸다.
쉼 없이 달려온 나의 육체는 이미 무기력해져 있었고, 어디라도 안주하고 싶었다.
세상은 나에게 더 이상 달콤하지가 않았다.
나의 전 인생을 지탱해 준 나의 자존감은 나락으로 떨어져 버렸고,
세상으로부터 나의 문을 닫기 시작했다. 상심은 그렇게 모든 것을 내려놓게 만들었다.
아직까지도 세상은 남녀의 구분이 확실하게 지어져 있고 남녀의 각자 역할이 다르다고 생각하던 시대에, 세상의 잣대로부터 과감하게 정면 돌파할 정도로 이성적이었다. 일에 한해서는...
그러나 나도 감정적인 부분에서 누구보다 여자였다.
일과 사랑은 너무나도 달랐다. 승승장구하던 나의 일과는 비교되지도 않게 나의 사랑은 순탄하지가 않았다.
좋다는 사람은 많았는데 눈을 돌려보니 나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이미 서른을 넘어서고 있는 나이만큼
깊어가는 가을날 불어오는 바람 앞에 힘없이 흔들리는 나뭇잎 같은 처지와 다르지 않았다.
그때의 서른과 지금의 서른은 체감온도가 달랐다.
지금의 감정으로 라면 얼마든지 혼자의 삶을 즐길 수도 있었지만, 나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외로움을 잘 타는 성격이라서 내 옆에 누군가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내 주변엔 나의 가족을 빼고는 진정 내 사람이 없었다.
나에게는 결혼이라는 운명은 없는 거구나 싶어 더욱 서글퍼졌다. 남들도 다 하는 결혼.... 나는 하지 못하는구나.
영혼 없이 하루하루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었다.
남들과는 다르게 힘겹게 돌아 돌아 10년의 시간을 보내고 난 후에야, 드디어 그토록 원하던 곳을 들어간 곳을 다니기 힘들어서 휴학을 해야만 했다. 나는 그날의 나를 생각하면 가엾은 나 자신을 꼭 안아주고 싶다.
나의 식구들은 그토록 강하던 나의 자식이, 나의 동생이 무너지는 걸 말없이 지켜보고 있었다.
언니의 아는 지인이 쇼핑백을 만드는 공장을 운영을 하고 있었는데 소일거리라고 가져다준 것을 집에 틀어박혀서 아버지와 내가 접고 있는 것을 본 언니가 기가 차서 통곡을 하고 나간 후로 우리 집 발길을 끊은 적도 있었다. 봉투 접고 있는 동생의 모습이 기가 차고 웃기기도 하고, 그러나 난 그 이후로 봉투 접기 달인이 되어있었다.ㅎㅎㅎ
집안에 틀어박혀 꼼작도 안 하던 나를 언니는 무조건 나를 끌고 다녔다.
그곳에서 알게 된 지금까지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는 지인을 만나게 된다.
아마 이 지인을 만나지 못했다면 아마 나 역시 남편과도 만나지 못했을 인연이다.
인연은 하나하나 연결되어 있는 돌계단 같은 거였다.
사람은 겉모습으로만 봐서는 그 사람의 깊이를 알 수 없다는 걸 느끼게 해 주었던 사람이다.
미술전공을 한 언니는 자신을 화려하게 가꿀 수 있는 사람이자 자신의 삶을 세상의 잣대가 아닌 자신의 기준으로 살아 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그 사람만의 슬픔이 있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아침에 만나면 항상 밝은 모습이었던 언니는 항상 활기차 보였다.
뭐가 그렇게 즐거우냐고 물어보니 밤마다 들어가는 채팅 사이트에 들어가 자신과 비슷한 사람끼리 사는 이야기하는 게 그렇게 재밌다고, 나에게 한 번 들어와 보라고 언질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