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담배 말보로우에서 카우보이 모자를 쓰고 등장하는 남자 배우가 내 앞에 나타나는 줄 알았다.
미샤가 처음 내 사무실로 들어온 날의 첫인상이었다. 그 옆에는 뱅헤어의 긴 머리를 날리고 들어오는 모델 같은 검은 머리의 마리나가 그와 함께였다. 환상적인 커플이었다. 누가 봐도..
강심장이기는 했지만, 남녀의 눈부신 외모에는 나도 부러움을 감추기는 쉽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들의 외모는 빛이 났고 둘이 함께 있을 때는 더더욱 그들의 미모는 엄청났다.
그렇게 다가온 나의 바이어이자 친구인 미샤와 마리나!!
그들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들은 부부가 아니었다. 나의 사무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애정행각을 했지만 나는 말리지 않았다.
미샤와 마리나는 항상 부부처럼 같이 붙어 다녔기 때문에 나는 부부인 줄 알았지만, 부부라고 보기엔 편안함보다는 애틋함이 더 보였었다.
마치 지금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날지 모르는 안타까움과 설렘이 다 들어있었다. 그 감정들이 그들의 애정행각에 다 들어가 있었다. 보통 부부 사이에서는 나오지 않을 것 같은 그런 감정들이...
그들도 아랑곳하지 않았지만, 나도 그런 모습들이 어색하지도 않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아무데서나 애정행각을 벌이는 모습들을 너무 많이 봐 와서 그런지 무뎌진 지 오래였다. 할 일이 없는 날이면 우리 사무실에 와서 죽치고 앉아서 이 얘기 저 얘기하다가 우리는 바이어 이상으로 정이 들어버렸다.
미샤가 차를 사고 한국 수표로 돈을 지급하던 날... 너무 피곤한 나머지 미샤가 주고 간 그 돈을 나는 택시 안에서 잃어버렸었다. 돈 잃어버린 이야기와 찾은 이야기를 하니 역시 크세니아는 운이 좋은 여자라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었다.
그 돈 잃어버렸으면 자기 차는 어떻게 될 뻔했냐고 농담을 하길래, 잃어버려도 돈을 이미 받았으니 차값은 내가 대신 지불을 해야지 당연히...
조금은 놀란 눈치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 주니 안심이 된 것인지...
나의 사무실은 그들의 연락망이 되었고, 한 사람이 일을 마치고 나면, 이 곳에서 서로를 기다리는 연락장소가 되기도 했다. 배가 고프면 알아서 자기들 먹을 거를 사 와서 천연덕스럽게 앉아서 술과 음식을 즐겼던 그들, 술이 들어가니 당연히 말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대화의 장이 시작되고 시간이 흐르든지 말든지 우리는 그 속에 빠져든다. 서로의 나라에 대해서 역사나 문학에 대해서 우리는 밤이 새도록 이야기하곤 했었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나의 아름다운 시절이었다. 나는 그들이 좋았고 그들은 나를 신뢰했다. 그리고 친구처럼 편안해했다.
샹 페쩨르부르크에 살고 있는 미샤와 에스토니아의 탈린에 살고 있는 마리나의 조마조마한 불륜이 , 각자의 터전을 떠나 내 나라인 이 곳에서 이러지고 있었다. 내가 그들의 불륜에 눈 감는 이유는, 그들의 도덕성은 그들이 지어야 할 몫이지 다른 사람에 의해서 좌지우지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십자가는 각자가 알아서 지기를....
서로 각자의 배우자를 잘 알고 있는 듯하기도 했다.
대화 사이 문득문득 나오는 그들의 배우자 이름들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드라마 막장의 현장이 내 눈앞에서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나는 그들의 인생 사이에 끼어들 수 없는 제삼자였다.
하지만 이 곳에서는 그와 그녀는 나의 친구이자 나의 파트너였다.
차를 팔고 난 후, 마리나가 우리를 꼬신다. 놀러 가고 싶다고 , 어디를 가고 싶냐니 그 당시 핫한 곳인 케러비안 베이의 물놀이 공원을 가고 싶다 했다. 주말을 이용해서 이쯤 해서 잠시 쉬어 가기로 했다. 사무실 사람들과 다 함께 문을 닫고 야유회 겸 그들의 접대도 할 겸해서 , 우리는 같이 용인에 있는 물놀이 공원인 캐러비안 베이에 놀러 가 모든 시름을 잠깐 내려놓고 즐겁게 놀았다.
그 당시 애 낳고 부기가 빠지지 않아 여전히 동글동글했던 나의 언니를 보고 마리나는 나 한 번 쳐다보고 나의 언니 한 번 쳐다보고 했다. 왜 그렇게 쳐다보냐니.. 너희 아버지가 같은 아버지가 맞냐고? ㅎㅎㅎㅎㅎ
아버지도 같고 엄마도 같다고 말해주니 도저히 못 믿겠다는 눈치다.
참 즐거운 한 때의 추억들이었다
이때 나의 친절한 크라스나 야르스크의 워와 아저씨 또한 우연히 일정이 겹쳐 우리와 함께 합류하였다. 내가 회사를 오픈하고도 나의 사무실에 들려 차를 사 갔던 변함없는 우정의 바이어였다. 워와 아저씨는 나에게,,,
그들은 자라온 도시는 달랐지만 같은 러시아의 상인들이라서 그런지 금세 친해졌고, 내가 매개체가 되어서 그렇게 서로 어울려 놀기도 하고 서로 정보를 공유하기도 했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치열한 순간들이었지만 아름다운 시절이기도 했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그 시절이 문득 그리워질 때도 있다.
소중한 나의 경험들이 시간이 지나도 그리워질 수 있는 건 그들과의 돈을 떠난 우정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돈이 오고 가는 비즈니스 안에서도 인간적인 우정이 생겨날 수 있다는 걸 나는 이들을 통해서 알게 되었고, 그 우정은 내가 미샤에게 차를 팔러 핀란드를 향하는 날에 정점을 찍는다.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추억이자 그들이 나에게 온 것이 아니라 이번엔 내가 그들의 터전에 들어가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된다. 무대를 옮겨 내가 그들에게 다가가는 계기가 되었다.
내가 그들에게 간다!!! 그들이 살고 있는 그들의 도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