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키 사장님의 몰락

살아봐야 인생을 안다는 말....

by kseniya

문이 열리자마자 빛의 속도로 닫히는 엘리베이터를 타는 순간 우리는 우주선을 타는 줄 알았다. 낡은 외형과는 달리 기초과학이 발달한 나라답게 그 안에 내장되어 있는 기술력 하나는 끝내줬다.

로켓같이 쏜살같이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의 속도를 느끼며 놀랜 가슴은 선명하게 뚫린 총구멍을 보고 또 한 번 놀라게 됐다. 무식하게 크기만 한 호텔은 오래되고 낡아버려서 구 소련 시대의 잔재가 강하게 남아있는 장소였다. 합숙소 같은 곳에 짐을 풀고 나서 여독을 풀기 위해 휴식을 취했다.


다음날 아침, 아침을 먹고 나서 달러를 루블로 환전하기 위해 호텔 내부에 마련되어 있는 환전소를 찾아가니 문을 아직 열지 않은 상태였다. 그 당시는 국가에서 달러를 철저히 통제를 하였기 때문에 환전을 하는 데에도 제한이 있었다. 심상치 않은 경제상황이 피부로 와 닿는 순간이었다.

환전소 문이 열리기 기다리는 동안 원사장과 호텔 입구에서 산책을 하고 있는데 뜻밖의 인물이 우리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록키 사장님이었다.

원래도 엄청 말라서 신경질적으로 생겼지만, 그 깡다구 하나만큼은 조폭 두목만큼이나 대단한 사람이었다.

그 일대에서 가장 유명했던 록키 사장과 원사장은 친분이 아주 두터운 사이였다.

서로 반가워하기엔 그의 얼굴은 너무나 어두웠다. 평상시에는 도무지 안에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조차 없던 그런 사람의 얼굴은 걱정과 근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심상치가 않아 보였다.

독불장군처럼 무너지지 않을 그 강단은 어디에도 없었다.


내가 몸 담고 있던 카라반의 2층에 자리하던 록키 회사는 그 당시 러시아의 거상들을 다 가지고 있던 엄청난 회사였다.

나와 같이 통역을 했던 제냐라는 거물급 직원을 고용하였고 , 그 회사에 속해서 일하던 러시아 교포들의 위상도 덩달아 장난이 아니었다. 그중의 하나인 레나가 바로 위층의 카라반이 아닌 우리 회사를 자기들 바이어에게 소개해주기도 했던 친구였다.

그 일대의 하루 매상의 50프로를 다 가지고 갔던 대단한 회사였던 록키 사장의 위엄도 장난이 아니었다.

무식하지만 그 일대에서 강한 뚝심 하나로 그의 사업은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독보적이었다.

그런 대단한 사람이 지금 이 곳에서 지금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얼굴을 하고 서 있다.

세상은 참 요지경이다.

어제의 강자가 계속 그 자리를 유지하기란 그렇게 힘든 것일까?

그는 분명 이 세계에서 부인할 수 없는 강자였다. 그 앞에서 누구든 주눅이 들었고, 자신이 데리고 있던 미스코리아 뺨치게 이쁜 사할린에서 온 유부녀를 그녀의 남편이 버젓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여자를 자신의 첩으로 당당히 들인 사람이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던 중부경찰서 형사도 그의 사무실과 모종의 커넥션이 있었던 걸로 알고 있다.


원사장이 이 곳엔 무슨 일로 왔냐고 물어보았다.

모라토리움이 터질지 모르고 이 순간들이 계속 갈 줄 알고 단골 바이어들에게 물건을 외상으로 돌렸다는 이야기를 했다.

모라토리움이 터지자마자 상황을 파악하고 외상값을 회수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외상이란 것은 참 오묘하다. 빚을 진 사람이 오히려 더 느긋하게 되어 있었다.

상인들은 배째라 하고 있었고, 아직 그 물건들을 다 팔지도 못했기에 가져가려면 물건으로 가져가든지 아니면 루블로 가져가라고 말을 하더란다.

외상값을 환산해 보니 루블로 트럭 한가득을 차지한다는데 사실 그렇게 화폐가 반출된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문제이기에 그걸 알고 상인들이 그렇게 나오는 것이었다.

록키의 몰락은 그 뒤에 줄줄이 연결되어 있던 공장주들의 도산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 돈을 받지 못하면 록키는 몰락하고 말 것이다.

사업에서 외상 거래는 아주 위험한 요소 중의 하나였다.

더 큰 욕심을 위해서 이 위험한 거래를 하는 순간 피를 말리는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힘 없이 돌아가는 그의 뒷모습에서 우리의 인생에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이렇듯 사업은 하늘이 돕지 않으면 자신만의 노력으로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거대한 물결이 다가와서 영원히 머물 것 같던 파도가 다시 밀물 빠지듯 빠져나가는 그 시류를 누가 알 수 있을까?

그의 몰락은 러시아 사업 자체의 몰락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원사장과 함께 둘러본 모스크바의 대형 스왑밋 같은 야외 사장을 둘러보니 물건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원사장 역시 러시아 시장에 대해 회의만 느낀 채 한국으로 돌아가자마자 사업을 정리하고 다시 자기 자리인 공장주로 돌아갔다. 지금 이 순간은 시작에 불과했다. 모라토리움의 여파는 앞으로 더 깊게 경제 전반에 파고들 것이었다.

긍정의 순간보다 부정의 순간들이 불현듯 스쳐 지나갔다. 나의 결정의 쐐기를 박는 순간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