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의 자연은 그야말로 초원과 양 떼들, 이 두 가지만 생각날 정도로 달려도 달려도 끝없이 펼쳐진 초원 위에서 평화롭게 풀을 뜯어먹고 있는 양 떼들의 일상이 필름처럼 이어졌다. 처음 한 순간은 이런 평화로운 배경이 힐링이 되었지만, 가도 가도 같은 장면만 반복이 되니 지겨워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뉴질랜드에서 유명하다는 관광명소를 하나하나 찾아다니기 시작할 것이다.
알다시피 섬나라인 뉴질랜드는 같은 섬나라인 일본과 같은 방향의 운전대를 사용한다. 한국과 미국과는 다른 운전대가 오른쪽으로 위치해 있었다.
지도를 보며 동시에 운전을 하는 그가 좀 힘겨워 보였다.
"지도 줘봐!"
"내가 봐줄게"
"지도 볼 줄 알아?"
"당연히 알지 동서남북만 알면 되쟎어"
나는 항상 지나친 자신감이 문제였다.
'그냥 보이는 대로 이야기해 주면 되는 거지?'
'방향을 잘 보고 이야기해 줘야지'
그런데 가도 가도 목적지는 나오질 않았다.
'지도 볼 줄 아는 거 맞아?"
가도 가도 아무래도 이상한지 자꾸 물어본다.
'볼 줄 알아 그냥 쭉 가'
그런데 자꾸 차가 반대방향으로 가는 거 같았다.
급기야는 로터리를 도는데 아무래도 이상해서 차 방향이 이상해서 내가 소리를 질렀다.
그제야 남편이 가까운 곳에 차를 세우고 얼굴은 시뻘겋게 달라올라 문을 열고 나가더니 다시 문을 꽝 닫았다.
그러고 나서 큰 숨소리를 내고 한숨을 푹푹 쉬고 서있다.
그런데 나는 너무도 태연스럽게 차 안에 앉아서 왜 저러지 싶었다.
한 숨 가다듬고 온 그 남자
"진짜 지도 볼 줄 알아?"
"왜?"
"뭐가 이상해?"
"지금 완전 반대로 가고 있잖아. 모르면 모른다고 이야기를 해야지"
"아직도 뭐가 잘 못 되는지 몰라?"
"모르는데? 지도 보고 가라는 데로 간 건데.."
기가 찬 지 남편이 한참있다가 지도를 뺏는다.
사실 나는 지금도 동서남북을 잘 모른다.
그냥 지도가 가라는 대로 가면 되는 줄 알았는데, 운전대가 반대인 것도 모르고 기계치이기도 하고
방향감각도 별로 없다. 그래서 지금도 고속도로를 타지 못한다. 방향이 헷갈려서...
남편은 지금까지도 그 이야길 우려먹는다.
그를 만나고 나서 처음으로 그가 화내는 날이었다.
남편이 화가 난 이유는 나의 뻔뻔스러움이었다고 한다.
모르면 그냥 모른다고 하면 되는데 끝까지 우기고 알고 나서도 너무 태연스럽게 앉아 있는 게 너무 화가 났단다.
사람이 살다 보면 그 힘든 위기를 넘기고도 남이 보기엔 정말 사소한 거라고 생각되는 거에 무너지는 경우가 있다.
사실 지도 하나 잘 못 본다고 헤어질 생각을 한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데 그 지도 하나 보지 못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 행동이 앞으로의 결혼생활에 미치는 영행까지도 생각하지 않았을까? 특히나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는 경우엔...
지도 하나 때문에 그날의 일정은 모두가 망가졌다.
서로 말도 하지 않은 체 다음 일정을 마무리 지었다.
그런 거 가지고 화를 내는 그의 태도도 나는 마음에 들지 않았다.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차는 숙소로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마음은 예전 같지가 않았다.
남들이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마음은 상한채 가야 할 곳은 다 다녔다.
지도는 이미 내 손에서 벗어나 그의 손으로 넘어가 버렸다.
결국은 한국 관광버스가 다니는 데로 따라다니면서 이 곳 저곳을 다녔다.
길을 가다가 관광버스가 보이면 그 버스를 따라 그 날의 행선지가 되었다. 그 덕에 뉴질랜드의 유명한 곳은 웬만해서는 다 다닌 것 같다.
뉴질랜드에는 간헐천으로 생겨난 유황온천들이 즐비했다.
물의 온도를 달리하여 여러 사람들이 물에 온도에 맞게 사용할 수 있도록 칸막이를 만들어 놓은 온천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고. 물안에서는 유황의 냄새로 주변이 다 계란 노른자 썩는 냄새가 진동을 했다.
뉴질랜드 북섬에 위치한 화산지대로 이루어진 뉴질랜드 최초의 국립공원인 통가리로를 향했다.
이 곳은 마치 이 세상이 아닌 우주의 한 복판에 와 있는 듯 한 신기한 기분을 연출하는 곳이기도 했다.
산을 올라가는 길목마다 화산의 분화구가 뿜어낸 호수들로 이어져 있었으며 산에 있는 여러 개의 호수 중의 하나인 에메랄드빛의 아름다운 호수는 마치 우주의 한 공간에 와 있는 듯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색을 뛰우고 있었다.
뉴질랜드의 또 다른 명소인 로토루아 테푸이아 간헐천은 바로 지척에서 펄펄 끓고 있는 용암을 직접 볼 수 있고 , 이 곳을 도착하기 전부터 유황냄새가 공기 중에 퍼져 있었다.
눈 앞에 한 번 도 보지 못한 신기한 광경이 보인다. 시간에 맞춰가면 3시간마다 땅 속에서 솟아오르는 간헐천을 볼 수 있다. 또 다른 세상이다.
그러나 내가 마치 다른 세상에 온 듯한 것과는 달리 이렇게 위대한 자연 앞에 별 감흥이 없다.
별로냐고 물어보니, 자기가 가 본 미국의 엘로스톤 하고 비슷한데 엘로 스톤이 규모면에서 훨씬 더 장대하다고 말했다. 미국에 들어가면 꼭 데려가겠다고... 그 약속은 아직도 미완성이다.
그 외에 반딧불이의 서식지인 와이토모 동굴 또한 빼어 놓을 수 없는 뉴질랜드의 관광명소이다.
칠흑 같은 동굴 안을 배를 타고 안으로 들어가면 그 안에 반딧불이의 환상적인 광경을 만나 볼 수 있다.
한마디로 세상은 넓고 내가 아는 세상이 다가 아니라는 진리를 확인시켜주던 여행이었다.
뉴질랜드의 일정이 끝나고 나서, 우리는 다음 도착지인 호주로 떠나기 위해 비행기를 올라탔다.
그동안의 마음고생이 보였는지 기내 좌석에 앉자마자 내 옆에 있는 남자 느낌이 이상하다.
낼모레면 불혹이 다가오는 남자가 울고 있다.
왜 우냐니까? 나랑 싸우고 나서 마음이 불편했었다고 미안하다고 하는데..
나도 잘못했다고 다시는 뻔뻔하게 안 굴겠다고 서로 미안하다고 늙은 커플들이 서로 눈물을 흘리는 광경이라니 참 촌스러운 모습이지만, 눈물은 상대방의 마음을 녹이는 힘은 있었다.
어쨌든 불편한 마음이 풀리고 우리는 다음 기착지인 호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그곳으로 출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