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잡히고 나자, 오히려 우리들의 일상은 할 것이 없었다. 이미 청춘이 저물고 있는 나이들은 커플은 그다지 신기할 게 없었다. 가슴 아프게 떨리는 연애는 젊었을 때 각자 다른 이들과 해 봤을 테니, 20대의 주는 폭풍 같은 떨림보다는 편안함이 더 맞는 감정이었다. 인생에 정답이 있을까? 딱 떨어져 나오는 정답이...
앞으로 가든 뒤로 가든 길은 정해져 있다. 그냥 가는 것이다. 인생은 정답을 맞추려고 온 것이 아니라, 그냥 나에게 주어진 길을 걸어가는 것이다. 모양이 다르다고 길이 아닌 것은 아니다. 구부려져도 곧게 뻗어도 다 같은 길이다. 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다르고 조금 덜 불편하고 아니고의 차이만 있을뿐.....
나는 그저 나에게 다가온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이 말하는 잣대와는 조금은 다르게 말이다.
아버님을 따라 진주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던 지리산 온천도 다녀왔다. 남해에 있는 바닷가 앞의 횟집에 가서 회라는 회는 다 먹기도 하고... 그 곳 바닷가에서 바로 잡아 올려 그 자리에서 썰어져 나온 전어회를 먹어본 이후, 회는 역시 남해가 최고라는 생각을 해 준 계기가 되었다.
그 정도로 나는 바다에서 나는 모든 음식을 사랑했다. 나의 부모님이 진주에 내려올 때마다 아버님은 진주에서도 1시간을 넘게 가는 남해의 바닷가 마을을 직접 가서 회를 대접했는데, 유일하게 좋아하는 음식이 회인 울 엄마의 입맛에도 각인되는 회맛이었다. 남해의 회를 맛보고 난 후 , 엄마는 서울에 파는 회는 회도 아니라는 말을 했을 정도였다. 남해의 바다 음식은 정말 다 맛있었다.
늦가을이 가고 초겨울이 시작될 무렵, 진주의 거실 창문을 통해 비추는 햇살은 따사로웠다. 마룻바닥에 누워 있는 나에게 얼굴에 뾰루지가 난 거 같다고 , 손으로 내 얼굴에 나 있던 피지를 빼 내주던 나이 든 커플의 풍경은 햇살만큼이나 여유롭고 따사로운 봄이었다. 행복이라는 것은 거창한 게 아니었다.
그저 가만히 누워 내 몸을 맡기고 터져 나오는 얼굴의 고름 하나에도 웃을 수 있는, 그 순간들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내 인생의 장면이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듯한 특별한 일상이었다. 나에게는...
마치 한 십년 산 부부처럼,
5일장이 열리는 동네 시장을 츄리닝 바람으로 같이 걸으며 시장 입구에서 파는 방금 튀겨낸 고추튀김과 따뜻한 어묵 국물 한 모금 마시고 나면, 사람 사는 냄새가 내 주변을 에워싼다. 나는 유독 시골의 소박한 시골장을 사랑한다.
낡은 몸베 바지를 질끈 동여맨 허리굽은 아낙들의 세월의 고단한 흔적들을, 이마에 문신처럼 깊게 패인 주름을 달고 사는 고단하지만, 일상적인 이런 풍경들을 참 좋아했다. 일부러 찾아서 들여다보는 풍경은 아니었지만, 우연히 마주치는 이런 풍경을 사랑한다.
길거리 바닥에 소쿠리에 담아놓고 파는 금방 까 놓은 홍합 한 움큼과, 그곳에서는 전구지라고 하는 부추를 사 들고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나서 홍합을 듬뿍 넣고 지져낸 부추 부침개는 훌륭한 그 날의 술안주가 된다.
나와 두 노인네 ㅎㅎㅎㅎ
셋이서 주거니 받거니 술자리가 만들어진다.
그렇게 하루하루 나이 든 커플의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집안의 기름진 냄새를 맡았는지, 그의 친구들이 들이닥치면 집안은 시끌벅적해진다.
고요했던 이 집에 웃음소리와 사람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겨울이 다가오는 무료한 오후 햇살이 내리 비치는 날, 우리들의 역마살이 발동했다.
그냥 나가버리자고 생각을 하게 되었다. 마침 이 곳은 겨울이 시작되니 여름이 다가오는 남반구로 가자고..
이 남자 열심히 정보를 찾아본다. 느린 듯 아저씨 같던 사람이 이럴 땐 또 눈이 반짝반짝한다.
살면서 남편과 코드가 맞는 유일한 점이 바로 여행 스타일이었는데, 우리는 남들이 가는 길보다는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가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계획성이 없는 즉흥적인 경우가 많았다. 인생 자체가 그랬다.
두 사람의 인생 자체가 모두 즉흥적이었다. 계획성 없는 사람들 치고는 절반의 성공이었지만 장단점은 있었다.
결혼도 즉흥적이었고 신혼여행도 즉흥적이었다. 그러나 어차피 인생은 계획한다고 계획대로 되어 지지도 않는 것이 인생이 아닌가? 어차피 인생이란 이 길도 있고, 저 길도 있다. 어디로 가나 최종 목적지는 같다. 내가 남들과 다른 건 조금 더 무모하고 대담하다는 것이었다. 내 인생을 대하는 법이...
좋은 딜이 나왔다고 흥분하며 나에게 여행 일정을 이야기하는 그는 다른 사람 같았다.
호주와 뉴질랜드를 인도네시아 항공으로 발리에서 경유 하는 비행 일정이었는데 비행기 기내식만 먹어도 본전도 뽑고도 남을 딜이었다. 남는 게 시간이었다. 콜이다!!!!
드디어 우리는 15박 16일의 긴 신혼여행을 떠난다.
겨울을 피해 여름을 향하여 잊지 못할 우리들의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었다.우리는 먼저 뉴질랜드의 북섬의 가장 큰 도시인 오클랜드로 향했다.
가이드에 휩쓸려 자유롭지 못한 여행을 싫어한 우리는 그냥 발길 닿는 대로 다니기로 했다. 숙박장소를 정하고 우리들의 신혼여행이 시작되었다.
우리가 도착한 숙소는 아담한 1층 짜리 단층형 모텔이었는데, 다시 가고 싶을 만큼 인상적이고 깔끔했다.
딱 있을 것만 적재적소에 놓여 있던 그곳엔 각방 안에 자쿠지가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갔을 때는 아쉽게도 그런 방은 다 나가고 평범한 일반적인 방만 남아 있었고, 같이 쓸 수 있는 커다란 자꾸지가 따로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을 아무도 쓰지 않아 사실상 각방에 달린 자꾸 지보다 훨씬 큰 곳을 우리만 쓰게 되었다.
작은 부엌이 달린 원룸형 모텔이었는데 주인 부부의 부지런함으로 항상 쾌적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가까운 슈퍼를 들러 뉴질랜드의 신선한 해산물을 사 가지고 들어왔다.
이것 저것 넣지 않고 딱 소금만 넣고 끓인 살아있는 홍합탕의 그 시원함이란 아직까지도 기억나는 미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