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살다 보면 어떻게 이런 곳에서 사람이 살 수 있을까?
자기가 경험한 세상이 모든 세상의 전부인양 편협한 사고로 전혀 살아보지 않던 곳에서의 두려움이 앞서 종종 이렇게 말하곤 한다. 그러나 그 광활한 사막의 흩날리는 모래 바람 속에서도 인간의 문명이 존재하듯이 인간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길을 만들고 삶을 만들어 나간다. 멕시코 역시 타지 사람이 살아가기에는 무질서와 혼돈 속에서 부적합하고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곳이기는 했다.
길게 늘어선 은행 앞 창구의 사람들의 불평에도 눈 하나 까닥하지 않고 여유롭게 커피잔을 들고 옆에 앉아 있는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은행 직원, 기다림에 지친 고객을 비웃기라도 하듯 냉정하게 쳐다보다 그들의 VIP가 은행 문을 들어서면 눈빛이 달라지며, 바로 그들만을 위한 공간으로 불러들이는 모습에서 나는 불현듯 나의 오빠 생각이 났다.
모든 것이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되어야 하는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혈육의 공통된 급한 성격은 이 느긋함과 기분 좋지 않은 기다림의 숨넘어갈 거 같은 일상에 아마도 피가 거꾸로 솟아올라 혈압이 오를 걸 생각하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멕시코를 떠나 미국에서 살고 있을 당시 그 성격 급한 나의 오빠는 회사에서 멕시코로 발령받아 그 혈압 오르는 상황을 직접 경험하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이렇듯 인생은 참 미묘하다. 이보다 더 아이러니한 것은 그 상황에 누구 하나 불평이나 자신의 기다림에 동요하지 않는 불평등의 익숙함이었다.
시간이 지나 나 역시 그들의 무리 속에 끼여 마음속의 불을 진정시키고 겉으로는 그들과 함께 그저 바보같이 나의 순서만 묵묵히 기다릴 뿐이었다. 단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의 커피가 빨리 줄어들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시간의 또 다른 이점은 익숙해짐이다. 그 익숙함으로 또 살아지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멕시코에서 또 다른 익숙함으로 그 시간을 견뎌냈다.
젊어서부터 운이 좋게도 다른 문화를 가진 여러 나라들을 살아 볼 기회가 많았다.
나에게는 어울리지 않을 듯한 이국적인 그들의 문화방식은 다름의 차이라고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음식은 이국생활 중에 시간이 흘러도 익숙함이 도저히 적응되지가 않았다. 음식이 카탈스러운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이 전혀 카탈스럽지 않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카탈스럽지 않다고 말은 하지만, 음식점에서 나오는 맛없는 음식을 볼 때면 전혀 손에 대고 싶지 않을 정도로 미각은 살아있다.
어릴 적부터 친구 집에 들르면 그들은 나의 입에 집중을 하긴 했다. 나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그들이 더 긴장할 정도였으니 그렇게 둔한 입맛은 아닌 것만은 확실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다고 딱히 한식 마니아도 아니다. 다만, 온갖 향신료에 길들여진 서양 음식이나 치즈가 빠지지 않는 음식들의 느끼함은 외국 생활이 삼십 년 이상이 되어가도 좀처럼 변하지가 않았다.
러시아에 살 때는 음식이 그나마도 건강식들이 많았다. 연어알인 이크라나 정어리라는 등 푸른 생선을 생으로 가공한 정어리 통조림 같은 날것에 길들여진 그들의 음식은 나의 입맛을 돋우지는 못했다. 나의 정다운 이웃 워와 아저씨는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날씨로 인해 나의 콩팥이 망가져 가던 겨울의 한가운데에 자신의 집으로 나를 초대했다. 직접 키운 돼지에서 걷어내 겨울을 위해 저장해 두었던 그들의 대표적인 겨울 음식인 살라라는 돼지비계를 건네주었다. 혹독한 시베리아의 겨울을 견뎌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먹어야 하는 음식이란다.
이런 나의 음식의 카탈스러움으로 인해 해외여행을 할 때면 꼭 아버지는 고추장 양념을 듬뿍 입힌 멸치볶음을 만들어 입맛 까다로운 딸의 식성에 맞게 밥이라도 말아먹을 수 있도록 잊지 않고 준비해 가지고 다니셨다.
그러나, 이런 나의 입맛에도 멕시코의 음식들은 입에 잘 맞았다.
세계적인 음식답게 멕시코의 음식들은 일단 시각적으로 색감의 조화로 시선을 끈다.
멕시코의 대표적인 음식인 타코. 타코에서 빠질 수 없는 살사, 살사에 들어가는 속재료인 토마토와 라임과 실란트로 그리고 할라페뇨 이 네 가지의 기본 재료의 조합은 정말 환상적인 매치가 아닐까 싶다.
타코는 멕시코를 대표하는 음식답게 길거리에서도 즐비하게 늘어서 팔고 있는 경우가 많다. 길거리 음식으로도 좋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도 화이타와 함께 항상 빠지지 않는 메뉴이기도 하다.
내가 살았던 티후아나 근처에 바닷가가 보이는 허름한 타코 집이 있었다. 우연히 찾아들어가게 된 이 집에서 만들어져 나온 타코는 내 인생 통틀어서 아직까지도 나의 미각이 기억하고 있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전망과는 달리 가게 안의 모든 집기들은 허름하고 무척이나 서민적이었다. 별 기대 없이 들어갔던 이 집 타코의 맛은 비싸고 화려한 호텔의 음식과 비교해도 맛에서는 뒤지지 않을 정도로 최고였다.
숯불에 고기들을 구워 잘게 다져서 기다란 파를 구워 으깬 아보카도와 함께 내어 놓았던 그 타코!
이렇게 다양한 맛과 비주얼로 지금은 세계 각국의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음식이 되었다.
고기와 야채와 또르띠아의 환상적인 궁합은 하나만 먹어도 배가 든든할 정도이지만 맛의 끌림으로 한 없이 들어갈 수 있는 음식이기도 하다.
타코의 고향인 멕시코에선 가게 앞에 테이블과 의자를 놓아 마치 노천카페처럼 만들어 놓은 곳이 많아서 길가다 혹은 차를 타고 가면서도 그 광경이 전혀 낯설지가 않다. 바다를 끼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특성상, 내가 살던 동네에서도 꽤나 유명한 타코 집이 있었다. 여러 가지 형태의 타코 집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하루 종일 줄이 끊이지 않는 대박집이 있었는데, 신선한 생선을 바로 튀겨 살사와 함께 내어놓는 생선 타코 가게였다. 타코에 살사를 얹어 그 위에 핫소스를 뿌려 먹으면 타코의 맛은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다. 특히나 생선 타코에는 멕시코 크림소스를 얹어 먹으면 그 맛이 상상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