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삐따는 한국사람들이 자신들을 어떻게 인식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는 아는 느낌이었다. 아민과 아들이 함께 태권도 학원을 다니기 이전에 그녀는 자신의 집으로 우리를 먼저 초대했다.
그녀의 남편 즉, 아민의 할아버지를 소개해 줄 때 나는 정말 놀랬다. 닥터 지바고의 오마 샤리프가 내 앞에 튀어나온 줄 알았다. 아민을 닮았지만 하얀 콧수염은 더욱 그 배우를 닮게 만들기도 했다. 아민의 엄마인 자신의 딸 크리스티나를 소개할 땐 그녀의 나이에 또 한 번 놀라고... 21살의 대학생!
내가 스페인어 수업을 듣던 대학의 치대생이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 루삐따의 아들은 마국의 국경 도시 샌디에고에서 컴퓨터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고, 아빠보다 훨씬 업그레이드된 훤칠한 미남이었다. 모두가 인상 좋은 다복한 가정이었다.
루삐따는 남편을 대할 때마다 거침없는 애정표현을 해댔고, 그런 애정표현 한 번 받아본 적 없는 옆에 있는 나의 남편이 불쌍할 지경이었다. 멕시코 가정을 직접 경험할 기회도 없었지만, 이제껏 내가 알고 있던 멕시코 가정의 선입견을 깨 준 가족이기도 했다. 루빠따의 두 자녀는 예의 바른 청년들이었고, 그녀의 남편은 따스하고 다정한 가장이었다.
그날 이후로 , 루삐따는 세준이를 전적으로 책임지고 다녔다. 애를 낳을 시간이 다가오자, 아들과 한 살 차이인 나의 딸마저도 데리고 다니며 나를 편히 쉬게 해 주었다.
태권도 학원을 같이 등록하러 갔을 때, 카를로스 태권도 사범님을 소개해 주었는데 이 분마저도 어찌나 온화한지 아민과 세준을 사랑으로 맞아주었다. 손자를 태권도를 배우게 하기 위해 같이 도복을 입고 태권도를 배우는 젊은 할머니, 루삐 따!!! 정열적인 여자였다. 그녀 주변엔 다들 따뜻한 사람들로 둘러져있는 것인지...
나는 멕시코에 살면서 한국사람도 부러워하다 못해 질투를 느끼는 인복으로 호사를 누리게 되었다. 그녀 덕분에....
그에 대한 보답으로 남편은 주말마다 한국 장을 평상시 보다 두 배로 봐 와야 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호사스러운 인복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를 낳고 난 후, 산후조리를 하면서도 두 아이에 대해선 걱정을 하지 않았다.
몸을 추스르고 난 후, 다시 나의 집은 한국 엄마들로 북적였다. 다들 어린아이들의 엄마들이 주를 이루었기에 단연 아이들 얘기가 주된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때 마침 전화가 왔다. 루삐따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영화를 보러 갈 건데 괜챦겠냐고 내 답을 기다렸다.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아민 삼촌이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영화가 몇 시에 끝나니 그때까지 데려다 주겠다는 말을 하고 아이들을 데리고 아민 삼촌이 떠났다.
아이들이 올 시간이 되자, 또 전화벨이 울렸다. 집에서 피자를 먹을 건데 괜찮겠냐고... 피자를 먹고 좀 놀리고 난 후 아이들을 보내겠다고 했다. 그 모습을 보고 한 동생이 부러운 듯 물어봤다. 어떻게 하면 저런 사람을 사귈 수 있냐고... 그 비싼 사립유치원을 다녀도 자기들은 저런 사람들을 만나보지도 못했다고..
근데 더 웃긴 건 언니는 왜 그렇게 당당하냐고 ㅎㅎ
나의 당연한듯한 태도에 또 한번 심사가 틀렸나 보다.
그 인연을 꼭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다 하늘의 뜻이겠지!!
정확한 시간에 아이들이 집으로 들어왔다.
멕시코에 살다 보면 은행보다 더 많이 보이는 곳이 "El Cambio"라고 적혀있는 달러 교환소다. 미국이나 한국기업들이 월급을 달러로 지급하기 때문에 이곳에서 멕시코 화폐인 페소로 바꾸어 사용해야 했다. 은행이 여러군데 있긴 했지만, 은행보다 시세를 더 쳐주기 때문에 많은 외국인들이 이곳을 이용했다. 특히나 국경 근처에 위치한 우리집 근처는 더욱더 불안한 곳이기도 했다.
이러 저러한 이유로 이곳에 살면서 새로운 습관이 생겼다. 몸에 돈을 지니고 다닐 때는 항상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 따라오는 사람이 없는지 확인하는 습관이었다. 도둑놈들은 돈 냄새는 기가 막히게 잘 맡는다는 말도 있듯이.
집 주변에 볼일이 있어 환전을 하러 나가야 하는 시간에 루삐따가 같이 가주겠다고 했다. 나를 내려주고 그녀는 나를 차 안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탁 트여 있는 환전소는 아직 손님이 거의 없어 보였다. 환전소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남자 하나가 느린 걸음으로 내 뒤를 따라 걸어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순간적으로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돈을 꺼내려다 말고 다시 급한 듯이 되돌아 나갔다. 언핏 보아하니 내가 다시 나갈 때, 환전소 직원과 그 사내는 무언가 놓친듯한 아쉬운 표정으로 나가는 나의 뒷모습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문을 나서자마자 쏜살같이 루삐따의 차로 들어가니, 그녀는 기다렸다는 듯이 문이 닫히기가 무섭게 차를 움직였다. 이미 눈치를 채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그런데 차가 우리 집 방향이 아닌 정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었다. 이상한 생각에 왜 집으로 가지 않느냐고 물어보았다. 혹시 누군가가 미행을 할 수도 있으니 확인을 하고 난 후, 집으로 가자고 했다. 그녀가 살고 있는 이웃도 총을 든 강도가 그의 집 주변까지 쫓아온 적이 있었다고 했다. 집까지 쫒아와서 돈을 훔쳐가는 대낮의 대범한 강도들은 다들 총을 소지하고 있었고, 그 총에 죽지 않으려면 어쩔수가 없었다. 돈만 가지고 가면 천운이라고 했다.
사실상 법적으로 멕시코는 미국과는 달리 총기 소지가 불법이다. 그렇기 때문에 일반 가정에선 총기를 소지하지 못하지만, 갱들에게는 총이 난무하는 아이러니한 사회이기도 했다.
총은 총으로 맞서야 한다는 미국과 달리, 오히려 멕시코는 악한자들에게 저항 한번 못해보고 약자는 당하는 세상이었다.
그녀는 내가 이곳으로 이사 온 이유를 알고 있었다. 또 한 번 그녀의 세심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불안한 사회에서 살아갈 때는 위험할 것 같은 상황은 스스로 피해 가면서 살 수밖에 없다. 그마저도 운이 없으면 속수무책이기는 했지만..무사히 집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가슴이 진정될 때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크리스마스를 아민네서 보내고 나자, 여권 만료기간이 다 되어 여권을 연장해야 할 일이 생겼다.
멕시코에 있는 한국영사관은 띠후아니에는 있지 않고 수도인 멕시코시티에 있었다. 같은 멕시코지만 꽤나 큰 나라여서 비행기만으로도 약 5시간이 걸리는 거리다. 여권을 연장하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멕시코 시티를 한 번은 다녀와야 했다. 치안이 어지러운 건 멕시코시티도 마찬가지였다. 비행기 티켓을 끊어놓고 날짜가 다가오자 잠이 오질 않았다.
아래층에 살고 있는 동갑내기 친구의 남편에게 부탁을 해야 했지만 선뜻 말이 나오질 않았다. 내가 위험하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로 위험한 상황이기에... 그 친구가 먼저 남편에게 나를 공항까지만 바래다주라고 말을 꺼내보았지만, 돌아온 건 부부싸움뿐이었다. 그녀는 나에게 미안해서 내 앞에서 남편 욕을 했지만 , 내 남편도 못해주는 걸 남의 남편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다. 남편은 그 시간에 미국에 있었기에 공항으로 데려다 줄 수가 없었다.
낮에 가는 공항은 어찌 갈 수 있겠는데 하필이면 비행기 시간이 밤 12시였다. 밤 9시만 되면 도시의 모든 가게들이 철조망 같은 셔터문을 닫는 위험한 곳에서 그것도 외국 여자 혼자 그 밤에 공항을 간다는 것은 누가 봐도 위험해 보였다.
날짜가 다가오자 나는 초조해지기 시작하면서, 그 문제 하나만이 머릿속에서 맴돌아 다른 일들을 할 수가 없었다.
아이를 픽업하러 가는 시간에 루비따를 만났다. 멕시코시티를 가야 할 일이 생겼다고 하자, 루비따는 아무 말도 물어보지 않고 비행기 시간이 언제냐고만 물어보았다. 너무 늦은 시간이라 어찌해야 될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니 자신이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그녀는 항상 그랬다. 내가 원하기도 전에 미리 답을 내놓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멕시코시티를 가는 날 그 칡흙 같은 밤을 뚫고 루삐따는 집으로 나를 데리러 왔다. 아직 잠에서 덜 깬듯한 모습으로 남편을 대동하고 나타났다. 비행기 시간이 되자 ,나를 배웅하면서 돌아오는 시간에 마중을 나올 테니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란다.
가슴 속 깊은 곳에서 뭉클한 무언가가 올라왔다.그녀의 그 말 한마디가 쉬워 보이는 것 같았지만, 그 말의 대한 행동은 보통 사람들에게는 쉽게 행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에....
돌아오는 길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나는 그녀를 뒤로 하고 게이트 안으로 들어갔다.
다음 날 돌아오는 공항에 그녀는 남편이 아닌 아들을 데리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미안함과 고마움이 뒤범벅이 되던 순간이었다.
아들은 아민과의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감과 함께 스페인어 실력도 빠르게 늘어났다. 아무 꺼리낌 없이 아민과 대화를 하는 아들을 보고 역시 실생활의 언어의 위대함을 느낄 수 있었다. 한결같이 똑같은 모습으로 루삐따는 나의 멕시코 생활에 수호천사가 되어 주었고, 가족 그 이상이기도 했다. 적어도 멕시코에서는.....
남편의 부재 속에서 남의 나라에서 세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나에게 다가와준 그녀의 존재는 수호천사 그 이상이었다.
마국으로 들어가는 마지막까지도 그녀는 우리 가족의 이삿짐을 그 괴력의 힘으로 모두 다 날라 주었다.
멕시코에서의 모든 생활이 끝나고 드디어 미국으로 들어가는 날 ,남들과는 다르게 역시 평범하지 못하게 들어간 이유로 나는 다시는 멕시코로 돌아가지 못했다.
나 대신 형님이 들어가 남편과 함께 이삿짐을 싸기 시작했다. 샌디에고에 있는 예준네 집에서 나는 남편과 형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루삐따 가족들이 그 많은 이삿집을 나르며 도와주었다.
큰형님은 그들의 행동을 보고 놀랐는지, 동서는 어디서 그런 사람들을 만난 거냐고.. 그 사람들 아니었으면 이사 못했을 거라고 칭찬을 입이 마르도록 하였다.
천국 같은 생활이 이어질 것 같았던 미국 생활이 지옥의 문이 열리는 순간이 될 거라고는 그때는 몰랐다. 멕시코는 영원히 잊어버리고 그쪽으로는 뒤도 안 돌아볼 거라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래도 그때만큼 여러모로 호사를 누리고 살던 시절이 아니었나 지금 와서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추억은 고통마저도 그리움으로 희석 시키는 능력이 있었다.
미국에 건너오자마자 남편의 실직으로 힘들게 살아가고 있을 때, 나와의 연락이 닿지 않아 한국의 나의 부모님에게 전화로 안부를 물어보던 그녀의 가족들!!! 아직까지도 그녀와 연락이 이어지고 있다.
내 소중한 인연들!!!
살아가면서 느끼지만 인연에 있어서 인종 나이 성별 성격...
나와 다르다고 해서 인연이 되지 않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나는 그녀를 통해서 배웠다.
그녀에게 받은 인복을 나는 그녀에게 나누진 못하지만, 나는 또 누군가에게 루삐따 같은 존재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보고 싶은 그녀!!! 내 아들의 친구 아민!! 분명 그는 멋진 청년이 되어 있을 것이다. 따뜻한 가족들의 온기에 힘입어...
죽음의 문턱에서 삶의 불운에 잠겨있을 때, 예기치 않던 하나의 생명이 찾아와 나에게 살아갈 이유와 시간을 주었고, 그 삶을 윤택하게 살아갈 수 있게 소중한 인연을 보내 주었다.
인생의 불운과 행운이 교차하여 내 삶을 연장해주었던, 그 시절의 인연이었던 루삐따와 그의 가족들은 잊을 수 없는 나의 소중한 시절 인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