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민과 루삐따 1

잊을 수 없는 인연

by kseniya

사람들과의 인연 속에서 나의 시간도 서서히 안정이 되어갔다. 오래전 인연부터 시작해서 그 인연으로 연결된 새로운 인연들까지 새끼줄 엮이듯이 이어져 나갔다. 한국에서 아이들을 데리고 온 주재원의 와이프들에게도 이곳에서 정착하기 위한 생활정보나 교류를 위한 아지트가 되어 더 많은 인연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아이들 엄마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교육에 대한 남다른 열정은 말하지 않아도 한국 엄마들은 정말 열성적이었다. 나도 다를 바 없는 한국 엄마의 치맛바람 소리 들을 만한 여자란 소리도 종종 듣는 사람이었지만, 젊은 엄마들의 자신의 아이들에 대한 교육열은 늙은 나는 도저히 따라가기 힘들 정도였다. 극성에 가까운 열성이었다. 극성이든 열성이든 자기 자식은 자기가 알아서 하는 것이지 어딜 가도 정답은 없었다.



멕시코는 만 5세부터 시작되는 미국보다 늦을 거라고 다들 생각하지만, 실제적으로는 만 4세부터 미국보다 먼저 공교육이 시작된다. 큰 아이가 만 4세가 시작되자 국가에서 운영하는 동네에서 가까운 공립 유치원을 알아보게 되었다.


주재원이나 한국인 자녀들은 다들 영어로 된 사립유치원을 선호했다. 다들 꽤나 비싼 학비를 주고 이곳에서 유명한 사립유치원으로 다들 들어가려고 노력을 하였지만, 어차피 미국에서 살게 될 아이들에게 영어보다는 스페인어가 가까운 미래에 더 유용할 것 같아서 나에게는 사립유치원이 그렇게 매력적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그냥 옆집 아이가 다니는 국립유치원을 알아봐 그곳을 보내기로 마음먹고 이웃에게 필요한 정보를 알아냈다.


미국의 커리큘럼을 따르는 미국식 사립유치원은 겉으로 보기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다. 모여드는 학부모들도 미국과 다르지 않게 다들 세련되고 멋진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곳에 보내는 아는 동생의 말로는 그들과 친해지기는 참 힘들다고 하소연 아닌 하소연도 듣기도 하던 차였다. 많은 엄마들은 나의 결정에 반신반의하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라는 식으로 나를 말렸다. 동네 특성상 위험하기도 하고 여러 부류의 아이들이 모이기에 위험하지 않겠냐는 듯한 투였다.


결정은 오로지 나의 몫이다. 그 결정의 결과도 나의 책임이었지만 다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던가? 그다지 두렵지 않은 이유는 척박한 곳에서의 또 다른 삶 또한 내가 배워야 하고, 내 아이들이 알아야 할 세상이라는 생각에서다. 멕시코에서 살면서 확연히 차이나는 빈부의 격차는 우물 안 개구리처럼 자신이 사는 곳만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편협함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대한 오해였다.


모든 사람이 다 내가 살고 있는 주변과 마찬가지로 새벽이 되면 날씬한 몸매를 더욱 날씬하게 만들기 위해, 새벽 운동을 다니며 그 몸을 유지하기 위해서, 질 좋은 샐러드를 먹고 살 거라고, 다들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같은 새벽 쓰레기장 주변을 기웃거리며 먹을 것을 뒤지는 거리의 거지가 아닌 나와 다르지 않은 평범한 사람을 보지 않았다면....


학교가 시작된 첫날 아이를 데리고 학교를 갔다. 참!! 모든 것이 척박하다. 이곳저곳 날리는 사막의 모래바람이 불 것처럼 삭막한 시골 풍경 안에 작은 허름한 교실이 들어서 있었다. 다만 벽 주변에 알록달록한 서툰 그림들만이 이곳이 아이들을 위한 곳이란 걸 짐작케 해주고 있었다. 그 주위를 빙 둘러싸고 있는 철망으로 된 벽들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였다. 실제로 멕시코는 세계에서 가장 어린이 유괴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곳이기도 하다.


나의 생각이 잘못된 것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아이의 교실 안에 들어서는 아들의 담임선생을 만나보고는 생각이 달라졌다. 선생님이라기보다는 모든 아이들의 엄마 같은 인자한 중년의 여선생은 가식 없는 미소로 모든 아이들을 대했다. 그곳에서 유일하게 아들만이 인종이 다른 외국인 신분이었지만, 그녀에게 그것은 어떤 이유도 되지 않았다.


첫날부터 아들의 한국식 이름을 또박또박 발음하던 그녀에게서 진정한 선생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서툰 나의 스페인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말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온화한 미소로 또박또박 천천히 발음하던 그녀의 세심함에서도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그렇게 큰 아이의 학교 생활이 시작되었다.



학교가 시작되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후에 아이를 데리러 가기 위해 학교 앞에 다른 부모들과 섞여 서 있는데 누군가 나에게 인사를 했다. 전혀 모르는 사람이었다. 빨간 곱슬머리의 운동복 차림을 하고 있는 나보다는 조금 나이가 들어 뵈는 중년의 여자였다.


루삐따!!!! 그렇게 그녀와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혹시 한국 사람이냐며 말을 건네며 나에게 한국말로 숫자를 나열하기 시작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마음에 어디서 배웠냐고 물어보니, 자신이 태권도를 배우는데 그곳에서 숫자를 한국식으로 말한다고 하였다. 아마도 기합을 넣을 때는 한국식 숫자를 이용했을 것이다. 자신은 손자를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아들이 아니라 손자라고 했다.


손자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젊은 루삐타는 나의 아들과 자신의 손자와 같이 친구를 하자고 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스페인어가 늘 것이고, 자신은 한국말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

초면에 너무 친숙하게 다가오는 것이 조금은 당황스러웠지만 의심스럽거나 하지는 않았다.

내가 당황하는 모습을 눈치를 챘는지 , 루비타는 선생님께서 세준이가 스페니쉬를 못 알아들어 수업에 어려움을 느끼는 것 같다고 자신에게 도와줄 수 있냐고 물어왔다고 했다는 말을 덧붙이기도 하였다. 그날 이후로 아민과 세준은 친구가 되었다.


멕시코 교민들 사이에서는 멕시코 현지인들과는 웬만해선 가까이 교류하지 말라는 불문율 같은 것이 있어서 한국 사람들이 멕시코인들에 대한 인식은 썩 좋지 않았다. 나 역시도 그런 선입견을 가지고 있던 차에 먼저 다가오는 루삐타의 선심은 의심할 만한 일이기도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다르듯 다 그런 사람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루삐따는 세준이도 같이 태권도를 다니면 자신이 데리고 다닐 수 있으니, 그렇게 하면 아민과 같이 다니면서 스페인어가 많이 늘 거라고 생각해 보라고 했다.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매일 같이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선뜻하겠다고 말을 하지 못했다. 루삐따는 자신의 차로 아민을 데리고 다니기도 하기 때문에 세준이도 같이 픽업을 해 줄 수 있다고 했다.


그 무렵 나에게는 예기치 않게 찾아온 새로운 생명이 찾아온 후라, 몸이 무거워서 아이를 데리고 다니는 것도 버거운 일이긴 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는 놀라움으로 루삐따는 내가 이제 8개월에 들어섰다니 전혀 몰랐다고 다시 한번 놀란 표정을 지어 보였다. 내가 힘들 거 같으니 아들의 픽업을 자신이 해 주겠다고 나섰다. 짧은 거리긴 했지만, 매일 나는 택시로 아이를 데리고 다니고 데리고 오는 중이었다. 그날 이후로 아민과 아들은 방과 후에도 태권도를 같이 다니면서 항상 붙어 다니기 시작했다.

평생 잊지 못할 인연이 시작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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