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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seniya Jun 26. 2023

구절초 인연

현관문 앞에 작은 소포 하나가 배달되어 있다.

낯선 이름과 낯선 주소로부터 배달된 우체국 작은 소포하나!!!!

이미 알고 있는 이름이지만  낯선 이름과 주소에 생소함보단 반가움이 먼저 드는 이유는 그 안의 작고 소중한 보물 같은 내용물이 무엇인지 알고 있기에 더욱 설레었다.

소위 말하는 요즘 유행어로 식물 언박싱...

이 넓고 넓은 미국 땅덩어리에서 중부와 남부를 잇는 이 소포 하나가 얼굴 모르는 이로부터 나의 손안에 전달되었다.


사람과의 인연은 생각보다 쉽게 맺어질 수도 아무리 노력해도  맺어지기 힘든  인연도 있다.

누구를 만나 나의 세상이 바뀌고 누구를 만나  인생이 결정지어지는 중대한 인연이 운명이 되기도 하지만, 그저 사소한 작은 인연이  스쳐가는 잔잔한 바람처럼 나의 인생 작은 가슴에 설렘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무심코 들어간 정보 사이트에서 한 줄 한 줄 읽어 가는

하얀 구절초를 구하는 사연이 올라왔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분홍 구절초와  뿌리 나눔을 하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구절초!!!

민간요법으로 삶의 구비 구비를 넘긴 엄마의 입에서 자주 오르내리던 약초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구절초. 생리통을 심하게 했던 날엔 어김없이 쓰디쓴 약초 고은 물이 내 앞에 놓였었다. 구절초의 꽃말 역시 엄마의 사랑이다. 음력 9월 9일 채취해서 사용하면 약효가 가장 뛰어나다는 약초이기도 하다.


아는 언니네 집에서 소담스럽게 피워 나는 구절초..

이곳 미국에서는 다소 구하기 힘든 한국 자생의 들국화이다.

생명력이 어마어마한 이 꽃이 여성들에게도 아주 좋은 효과를 가진 꽃차로도 유명한 약초인 구절초.

반가운 마음에 바로 댓글을 달았다.

분홍 구절초는 또 얼마나 색다르게 이쁠까?

흰색과 분홍의 구절초가 어우러진 소담스러운 정원의 발길은 얼마나 설렐까?


얼마 지나지 않아 답이 왔다.....

그렇게 시작된 구절초 인연.

이름과 주소가 배달되고 이웃집 언니로 부터 뽑힌 구절초가 전달된다. 그저 잘 가기를 바라며 뿌리가 잘 살아있기를 바라며 작은 소포 하나가 누군지 모르는 인연에게 부쳐진다.


잘 받았다는 내용과 함께 보내온 문자...

이번엔 자신이 분홍 구절초를 보내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하얀 구절초 하나 달랑 보냈을 뿐인데, 분홍 구절초와 함께 너무너무 구하고 싶었던 쑥부쟁이와 함께 보내겠다는 것이다. 작은 마음 하나 보냈을 뿐인데 엄청난 덤을 얻은 느낌이다.


하루하루 기다려지던 어느 순간 도착해 있는 소포!!!!

뿌리가 죽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미 그 마음은 뿌리가 되어 나의 가슴에 콱 박혀있기에...

그러나, 뿌리 하나 다치지 않고 물 적신 타월 안에 꼬이 꼬이 쌓인 세 뭉치의 식물들... 가슴이 벅차다.

돈뭉치만큼이나 반갑다. 귀하디 귀한 섬쑥부쟁이와 더불어 october aster라는  이름의 쑥부쟁이가 덤으로 왔다.

여름이 되면 이렇게 이쁜 보라색의 꽃을 피운다는 사진과 함께.

세 뭉치의 값어치!!!

마음이다.


낯선 여행에 지친 뿌리가 정신을 차릴 수 있도록 조심스럽게 물에 담가 놓았다가 이른 새벽 땅 속으로 묻어 주었다.

어디서도 잘 자라는 끈질긴 생명력을 가진 야생화의 근성으로 잘 살아나 주길 바라면서.....


시간이 지나 문자가 도착했다.

내가 보낸 구절초들이 뿌리가 썩어 버렸다는 것이다.

정원 한 구석에 조금씩 자라나고 있는 구절초를 보고 있자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다시 한번 더 구절초를 보내주기로 했다. 이번에는 미안한 마음에  인도 쑥부쟁이를 덤으로 넣어서 보냈다.

부디 무사히 잘 도착해 그곳에서도 이쁜 자태를 뽐내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인연이 끊어져도 좋다. 꽃으로 맺어진 작은 인연이 꽃으로 퍼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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