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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와의 보폭을 맞추며

귀향

by kseniya

한국에서의 시간은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갔다.

앞으로 두 달이라는 시간이 아직 남아있긴 했지만, 시간이 나는 대로 미국에서의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다 놓아야 했다. 나에게도 살아야 할 현실이 있었다.


엄마는 나와 항상 같이 하기를 원했다. 제발 집에 그냥 좀 있으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았다. 벌써 따라나설 채비를 하고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그녀에게도 콧바람이 필요했었나 보다. 엄마가 살고 있는 오산에서 서울까지의 거리는, 엄마에게는 버겁고 피곤한 일이라 생각했다. 힘들 거라고 말려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하나라도 더 해 주고 싶은 마음에 나이와 몸의 상태도 잊은 건지 노인네가 고집도 세다.

그렇게 엄마와의 쇼핑이 시작되었다.


평상시 엄마는 노인들에게는 무료로 제공되는 지하철을 통해 필요한 곳을 다녔다.

버스는 요금을 전액 지원을 해 주지 않는 것도 있겠지만, 구형 버스의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나이 든 노파에겐 버거운 일이었다. 지하철에는 거의 모든 역마다 엘리베이터가 운행을 하니, 다리에 힘이 없는 노인들에게는 훨씬 유용한 수단이기도 했다.

나는 답답한 지하철보다는 밖이 훤하게 내다보이는 버스를 선호했기에, 나와 갈 때는 주로 광역버스를 이용했다.

우리나라의 대중교통의 편리성은 아마도 단언컨대 세계최고의 수준이 아닐까 싶은 감탄을 하며 버스에 오르곤 했다.

그렇게 해서 오늘의 목적은 이불과 속옷을 사기 위해 동대문 시장을 가보기로 했다.

그 안에 내가 좋아하는 곱창집도 들려 맛있는 점심을 사 주겠다고 엄마가 더 신나 보였다.

한국에 오면 항상 곱창 볶음을 먹으러 가는 것이 나의 일과인걸 엄마가 기억하고 있었다.

동대문은 엄마의 집에서 1호선이 지나가는 역이라서 갈아타지 않아도 되는 지하철을 타고 가기로 했다.


종로 5가에서 내려 엘리베이터를 탔다.

사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할 나이가 아니라 엄마를 핑계로 타기는 했지만, 왠지 도둑질을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종로 5가에 내리니 노인의 시대라는 말이 실감 날 정도로 거리 위에서 젊은 사람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약국과 금은방들이 모여 있는 곳인 지역 자체가 노인들이 모여들기 쉬운 것도 있겠지만, 내 눈으로 직접 그 광경을 보니 한국은 노인의 나라가 맞았다. 내가 타고 온 지하철에서도 노인석이 모자라 일반인석까지 꽉 차게 노인들이 앉아 계셨다.

그중 나의 엄마도 포함이 되어 있겠지만, 나와 같이 앉고 싶어 하는 엄마를 노인석으로 밀어 넣었다.

그리고 난 자리가 비어있는 일반석에 앉아 그렇게 떨어져 목적지에 가까이 오면 엄마와 다시 재회를 했다.


같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솔직히 출퇴근 시간에 버젓이 일반석을 점유하고 있는 노인들은 보면 그 이기심에 화가 나기도 했었다. 나도 노인이 되겠지만, 젊다고 피곤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나의 노인들에게도 그 시간은 제발 피해서 다니라고 강하게 말하곤 했었다. 비어있는 노인석을 두고 일반석에 젊은이들이 서서 가는 걸 보면 안타까울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젊은이들이 비어있는 노인석에 앉아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서는 엄마의 걸음걸이가 신경이 쓰이지 않았지만, 간혹 엘리베이터가 운영이 되지 않는 역이 있었다. 엄마의 난감한 표정에 나는 그냥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가자고 재촉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에스컬레이터가 내려가는 방향을 향해 두려움에 가득 찬 눈으로 멈칫하고 있는 엄마의 낯선 모습이 내 눈 안에 들어왔다. 결국 엄마는 계단이 있는 방향으로 돌아서 세 살 어린아이의 걸음마처럼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옆으로 내려오는 게 아닌가?


엄마가 다 내려오기를 기다리는 인내심보다 넘어질까 조심조심 내려오는 아기 같은 엄마의 모습을 보고 있는 동안의 나의 조바심이 더 견디기 힘들었다.

한참을 지나 겨우 계단을 내려온 엄마의 얼굴에서 안도감과 피곤함이 묻어났다.

수많은 젊은 발걸음이 지나치고 나서도 끝나지 않은 엄마의 느린 발자국.

아!!! 늙음이란 이런 거구나!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고는 가만히 엄마의 팔을 붙들고 엄마의 보폭을 맞추며 걸어 나가는 것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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