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아버지의 시간

by kseniya

엄마의 하루는 아버지의 약들로 가득 찬 봉지를 뜯어내는 걸로 시작이 된다. 가지런히 놓여있는 물컵에 물을 따라놓고 그 위에 뚜껑을 올려 약을 올려놓는다. 그러고 나서 아버지를 깨우는 것이었다. 자신의 손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아버지가 수면제를 먹고 난 후, 잠이 들면 엄마가 잠에서 깨워야만 일어날 수 있었다.


아버지의 수명은 엄마의 역할로 인해 연장이 되었고 , 그로 인해 엄마 또한 살아가는 이유가 되는 상호작용으로 인해 두 노인이 살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파도 살아있어서 다행이라는 엄마의 말은 남녀 간의 정이 아니라 인간 간의 정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너무 오래 살아버린 두 노인은 "너무 오래 살아도 죄악이야"라고 하는 세상 밖의 소음으로부터 무언의 방패막이되어 서로의 손을 놓지 않는 동지애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렇게 엄마는 아버지를 보호했고, 아버지는 그런 엄마의 보호를 말없이 받고 있었다. 더 살아야 할 이유도 없었지만, 들 살아야 될 이유도 없는 인생이 되어 버렸다.

나이에 비해 너무 건강하다는 언니의 말에 반박을 하고 싶다가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두 노인들의 정신은 아직도 온전하다는 것은 그 연세에 비해 축복 중의 축복이라고 서로 위안을 해 본다. 나는 엄마와 아버지를 보며 하루라도 더 살아주길 바라는 딸의 이기심과 더 이상 살아가는 것은 민폐라는 세상의 잣대 사이에서 방황한다.


그토록 보고 싶은 딸이 왔지만, 아버지의 루틴은 그다지 변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둔해지고 팔의 통증은 아버지의 노년을 더욱 힘들게 했다. 그저 같이 있다는 걸로만 만족을 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허리협착증으로 인해 걸음을 걸을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이 늙고 낡아버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다 같이 노화가 되어야 하는데 소화기관은 눈치도 없이 너무나 왕성했다. 아버지의 식탐은 비정상적이었다. 거절이라는 걸 모르듯 거침없이 받아먹어 치웠다. 딸이 아닌 며느리였으면 눈칫밥이 되어버릴 정도로..

아버지는 내가 알고 있던 그 젊은 시절의 부지런한 자식밖에 모르는 아버지가 아닌 , 자신의 손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둔한 영혼과 기능을 상실한 육체로 둘러쳐진 몸하나도 버거운 그런 노인네가 되어있었다.

그래도 내 아버지라서 내가 올 때까지 버티고 살아있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미국에 살고 있는 친한 동생은 한국행을 망설이고 있던 나를 향해, 빚을 내서라도 부모님 살아계실 때 한국을 나갔다 오라고 몇 번을 당부했는지 모른다.

부모님 돌아가시고 나서 가봤자 아무 소용없다고.....

살아계실 때 한 번이라도 꼭 보고 오라고...


그런 그녀 역시 다음 주에 급하게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다고 연락이 왔다. 나의 아버지와 같은 고등학교 출신인 아버지가 쓰러지셔서 자신을 보고 싶어 한다고 일주일간의 짧은 여정으로 들어온다고 한다. 우리네 인생이다.


의사가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동안 병원을 가지 않고 있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병원을 같이 가기로 했다. 아버진 나에겐 역시 약했다.

내 말을 듣지 않으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더니 아버진 아무런 저항 없이 나의 말을 따랐다.


겨우 겨우 아버지를 설득해서 엄마와 둘이 부축을 하고 간신히 택시 타는 곳까지 다다르자, 기다리고 있던 택시가 그냥 줄행랑을 치고 달아나고 있었다. 간신히 다른 택시를 잡아 타고 병원에 도착했다. 노인들이 늘어난 세상에서 노인들이 살아가기가 참 힘들겠다는 걸 목격하는 순간이었다.


병원은 더 가관이었다. 모든 것이 컴퓨터로 처리되는 최첨단 시설인데 대부분의 환자는 노인이었다.

환자들에게는 각자의 보호자가 옆에 붙어있었다.

아버지의 보호자는 엄마였는데 내 눈에는 엄마도 환자로 보였다. 그동안 이 모든 것들을 엄마 혼자서 다 해냈다는 사실에 엄마의 무게가 보여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세상에 당신도 보호받아야 하는 나이에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하는 구순의 엄마를 대신해 내가 있는 동안 나는 아버지의 보호자가 되어 이 병원 저 병원을 돌아다녔다.


병원을 다녀온 후엔 엄마의 가방 한가득 약꾸러미가 들어있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