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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가도 슬프고

귀향

by kseniya

한국에 들어오고 나서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에 집중하느라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지나갔다. 그 시간들로 인해 나는 잠시 내가 한국을 나오게 된 또 다른 이유를 잊고 지냈다.

기나긴 타국살이에 몸이 망가진 것도 잊은 채 살아가는데만 집중하고 살았다. 나 자신조차 잊고 오로지 아이들만 생각하면서 살았다.


몸에서 보내는 신호는 이미 많은 것들이 지나가고 난 후의 징조라는 걸 알면서도, 또 익숙하게 지나쳐 갔다.

눈은 침침하고, 매일밤 쥐여짜듯한 통증으로 가슴을 움켜쥐며 잠 못 이루는 밤이 늘어나고, 치아는 이미 남의 치아인양 신경이 죽은 지 오래다. 다행인지 아직 늙지 않은 정신의 감정과, 티 나게 드러나는 신체와의 불균형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나이가 되었다.

아직 마음은 이십 대의 그 순간들이 너무나도 선명하게 남아있어 가끔 착각 속에 희망이라는 감정으로 살아내지만, 신체의 리듬은 이미 반평생 닳고 닳아 여기저기 삐그덕 거리지 않은 곳이 없다.


제일 먼저 동네 치과를 찾았다.

건물마다 빼곡하게 들어앉은 병원들 속에 치과는 약방의 감초처럼 하나씩은 꼭 들어가 있었다.

너무 많아서 어디를 골라 들어가야 할지 몰라 , 결국은 엄마가 다니는 단골 병원으로 들어갔다.

상담을 마치고 엑스레이를 찍고 난 후, 5분도 채 지나지 않아 적나라한 결과가 모니터 앞에 펼쳐졌다. 이미 썩어 문드러진 치아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어찌나 선명하게 보이는지 보기에도 민망스러웠다.

어린 시절 누구보다 고른 치열을 가지고 남의 부러움을 샀던 나의 건치들이 고된 외국살이로 인해 망가져 문드러진 것이었다.

민망함과 두려움이 스치는 동안 마취약이 들어가자 께름칙한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아래 잇몸 속까지 신경이 망가져 어금니를 뽑아낼 수밖에 없었다.

나의 왼쪽 턱 아래를 지탱하고 있는 어금니가 그렇게 나의 몸에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시원함 보다는 텅 빈 나의 마음처럼 허함이 몰고 들어왔다. 조금 더 일찍 왔더라면 그나마 나의 몸 안에서 자기의 역량을 다할 텐데..

마취가 풀리면서 묵직한 통증과 더불어 부어오른 나의 뺨을 애처로움으로 감싸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하나하나 묵은 몸의 이곳저곳의 치료가 시작되었다. 또 하나의 문제인 안과예약을 하고 종로에 내렸다.

종로 1가에 위치해 있는 김안과는 우리 가족의 오랜 병원이다. 그곳에서 아버지는 오른쪽 시력을 잃은 채 60년 가까이 살던 그 대가로 장애인 판정을 80이 넘어서야 받았다.


나의 모든 필요한 치료가 이루어졌다. 너무나 편리하게 일사천리로 움직이는 병원에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모든 검사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안과라고는 안경 시력을 맞출 때 제외 하고는 거의 이십 년을 방관하고 살았다. 결과를 기다리다 나의 이름이 불려지는 순간 왠지 모를 불안감도 같이 들어갔다. 상담 의자에 앉자마자, 나도 모르게 의사 선생님의 시선을 바라보았다. 그는 이미 결과가 나와 있는 모니터를 심상치 않게 쳐다보고 계셨다.


가장 걱정했던 안압은 정상인데, 시신경이 기형으로 자리를 잡았다고 나에게 모니터 방향을 돌려 나의 육안에도 살짝 구부러져 있는 사진을 보여주었다. 녹내장이 의심된다고 다시 한번 정밀 검사를 해 보자고 다음 예약날을 잡아주셨다.

백내장도 아닌 녹내장이라니... 수술로도 고칠 수 없는 그 무서운 녹내장이라는 말이 의사 선생님 입에서 튀어나올 때 마음이 무너져 내렸다. 올 것이 온 것 같은 느낌...


그 말을 듣고 나니 나의 다음 행선지가 생각이 나질 않았다.

갈 때도 많고 볼 것도 많은 종로의 한 복판에서 나는 갈 길을 잃은 것만 같았다.

나의 발걸음은 힘 없이 집으로 가는 버스 정거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아직 종로의 해는 중천에 떠 있는데...


3월의 초입인 한국의 날씨는 내가 입고 온 두꺼운 외투를 다시 꺼내 입게 만들었고, 그다음 날은 미세먼지 하나 없는 맑디 맑은 날을 보여주는 변화무쌍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침에 나오는 순간 여기저기 걸어 다닐 생각에, 두꺼운 외투와 볼품없지만 발을 편하게 해 줄 등산화를 신고 나왔던 나의 발이 갈 곳을 잃었다.

그렇게 나의 안과 치료의 첫날이 지나가고, 다음 진료까지 불안한 마음으로 기다렸다.

마지막으로 한국을 나오는데 가장 결정적인 이유 중의 하나인 가슴통증의 원인을 알기 위해 여성전문 병원을 예약했다. 생각보다 길어진 예약기간에 나는 마음만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나의 시간은 좋았다가 슬프기를 반복하면서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좋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정말이지 막살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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