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이사하는 첫날이 그렇듯이 대충 치우고 대천 한바다 같은 안방에 이불을 깔고 일곱 식구 모두 쪼르륵 누워 쪽잠을 잤다.
아침에 일어나니 역시 공기가 다르다.
3월 초의 날씨는 아직 살짝 추워서 겨울 잠바를 입어야 할 정도의 날씨다.
조지아주는 플로리다주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미국의 동남부에 속하지만, 한국과 비슷하게 4계절을 가지고 있다, 조지아의 겨울은 눈이 거의 내리지 않는 포근한 날씨를 가지고 있고, 여름에는 어마 무시한 비가 내릴 정도로 습하고 덥다.
신선한 공기를 마시려 엄마와 밖을 한 바퀴 도니 우리 집 공터에 여기저기 노란 꽃이 보인다.
아직 겨울의 추위가 가시지 않았는데 그 땅을 뚫고 꽃들이 여기저기 들이밀고 있었다.
수선화였다. 가장 먼저 봄을 알린다는 수선화가 우리 집 마당에 지천에 깔려있다. 내 땅에 피는 꽃을 보는 새로운 경험이다.
우리 땅만 걸어 다녀도 10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앞마당에서 연결되는 뒷마당은 수풀 덤불을 이루고 있어 사람이 들어갈 길조차 덮어버렸다.
가는데 마다 낙엽이 쌓여 있어서 낙엽을 살짝 들춰보니 묵직하다.
해마다 아무도 쓸어내지 않아 차곡차곡 세월에 쌓여 묵직하게 내려앉아 있었다. 낙엽이 주는 그 쾌쾌한 냄새가 싫지 않았다. 자연이 주는 냄새다.
(집 앞마당에서 뽑아온 수선화들)
엄마는 부지런한 사람이다. 벌써부터 낙엽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아이들을 불러 본격적으로 낙엽을 치우기 시작했다.
우리 집 천하장사 힘센 딸내미는 역시나 힘이 세다.
삼지창을 가지고 와 낙엽을 푹푹 퍼 담는데 역시 젊음이 좋다.
그녀는 열세 살이다 ㅎㅎㅎ
우리 집의 고귀하신 몸값이 가장 비싼 열네 살 아드님은 집안에서 꼼짝을 안 하신다.
나의 로망은 아들은 머슴으로, 딸은 공주로 키우려고 했건만, 인생은 내 뜻대로 되는 게 별로 없다.
현실은 무능한 프린스와 힘센 무수리였으니....
우리 집 귀염둥이 막내아들은 여기저기 헤집고 다니느라 노동에는 그다지 도움이 되지 못한다. 그러나 밝은 모습으로 뛰어노는 모습만으로도 제 역할을 다하는 이쁜 아들이다.
나를 제외한 엄마와 딸의 손은 빨랐다. 부지런히 봉지에 낙엽을 담아 쌓아 놓으니 어느덧 스물 봉지가 넘었다.
낙엽을 쓸어내다 보면 땅과 가장 가까이 내려앉아 있는 해묵은 낙엽은 이미 거무스름한 흙이 되어 자연과 합체하고 있었다.
자연의 가장 본질인 흙이 되어있는 것이다.
그것도 거름 중에 가장 좋은 거름이 낙엽이 썩은 것이란다.
나는 돈 한 푼 안 들이고 가장 양질의 거름을 얻은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죽어서도 또다시 자연으로 귀화한다.
어느 하나 낙엽 한 장도 하찮은 것이 없다. 썩은 낙엽 한 장이 나에게 가장 기본적인 그러나 잊기 쉬운 교훈을 준다.
아침부터 일을 하고 나니 온 몸이 여기저기 쑤셨다. 재데로 된 노동을 한 느낌이다. 게으름의 오래된 습관으로 여기저기 딱딱하게 굳어있던 근육들이 너무 놀란 것 같다.
집안에서 어젯밤의 피곤으로 느지막이 일어난 남편은 창 밖으로 여자들 삼대가 부지런히 낙엽 차우는 모습을 본다. 커피를 마시러 들어온 나에게 남편은 신기한 듯 말한다.
자기가 이제껏 살면서 자발적으로 이렇게 열심히 일하는 거는 처음 본다면서 그렇게 좋냐고 반신 반의 하면서 물어본다.
사실이다. 너무 좋다
자연이.... 공기가.....
사실 미국에서 캘리포니아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환상적인 날씨와 자연환경을 가지고 있다.
어떤 이는 캘리를 떠나긴 쉬워도 다시 돌아오기는 힘든 주라고 말한다. 그만큼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주거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주변 환경을 가지고 있어도 내가 그것을 누리지 못하거나 마음에 상태에 따라 그 천국 같은 곳이 누구 에겐 지옥 같을 수도 있다.
내가 그랬다. 나는 캘리에서 마음도 몸도 편하지 않았다. 특히, 그 당시는 100년 만의 오는 최대 가뭄의 해라서 비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 정도로 도시는 건조하고 메말라 있었다. 내 마음도 같이 메말라 버리는 느낌이었다.
언제부턴가 나는 시원시원하게 내리는 비가 그리웠다.
그리고 매일이 햇빛 쨍쨍한 그 환상적인 날씨도 마음이 우울한 나에게는 화풀이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 메마르고 이기적인 도시를 탈출하고 싶었다.
우리가 치운 낙엽의 양은 아직 빙산의 일각이었다.
이 곳은 가을이 되면 워낙 나무가 많아 해마다 나오는 낙엽도 만만치가 않았다.
그런 이유로 쓰레기차가 올 때 지정된 봉투에 낙엽을 담아 놓으면 일주일에 최대 열 봉지씩 가져간단다. 그리고 일 년 중 바람이 없는 날에 나무를 태울 수 있는 날도 정해져 있단다.
엄마와 커피 믹스 한 잔을 타서 바깥공기와 함께 들이마신다. 평상시 습관적으로 마시던 커피의 맛과는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