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넓은 땅 위에 가장 작은집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by kseniy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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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쇠로 문을 열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리 크지 않은 집이다. 아니 솔직히 이 단지 안에서 가장 작은 집이다. 사실 집 값 비싼 엘에이에서는 평범한 집이지만 이 곳 조지아주는 캘리포니아에 비해 집 값이 싼 주라 보통 3천 스퀘어 피트가 넘는 집들에서 많이들 산다.

흔히들 한국에서 온 주재원들의 가족들은 여기 살 때 아니면 언제 이런 큰 집에서 살아보냐 하면서 3천도 작다고 5천 스퀘어 핏까지도 알아보는 경우도 있다.


우리 단지는 이 동네에서 아주 오래된 커뮤니티라서 겉보기에도 집들이 크지 않고 단지 자체도 소박하다. 오래된 동네에 비해 살짝 숨어 있어서 사람들이 잘 모르는 곳에 위치하고 있기도 했다. 우리 집을 중개해 준 부동산 직원도 이 동네를 어떻게 알아냈냐고 할 정도다.

그중에 우리 집과 바로 옆집 (아이들은 이 집을 도깨비집이라 부른다)은 이 주택단지가 들어서기 전부터 있던 집이라 다른 집과 생김새도 다르고 페인트색도 차이가 난다.

그래서 비교적 HOA의 규제를 덜 받는 편이다.

옆집은 집의 규모가 엄청 컸고, 우리 집은 아마도 농가주택을 개조한 것인지 집은 작고 땅은 엄청 컸다.


나는 집을 천천히 둘러본다.

고쳐야 할 것도 많고 치워야 할 곳도 많았지만, 이 조그마한 집에 있을게 다 있다.

일단 천장이 탁 트인 커다란 지하실이 있었고, 안방으로 연결되어 있는 곳에 썬룸도 있었다.

집은 작아도 꽤 쓸모 있는 공간이 덤으로 있었던 것이다. 사실 덤이라고 하기엔 실제로 엄청 실용적인 두 공간이다. 지하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어두컴컴하고 습기 찬 그런 곳이 아니라, 창문도 나 있고 사이드 정원과도 연결되어 있어 가족의 엔터테인 룸으로 리모델링을 하면 훌륭한 공간이 나올 것 같았다.

썬룸은 아쉬운 대로 문 하나만 달아주면 비 오는 소리를 들으면서 커피를 마실 수 있는 낭만적인 장소로 바뀔 것 같았다. 모든 것이 낡았지만 그렇다고 다 쓸모없지는 않았다.


안방은 쓸모없이 커서 오십 명도 수용할 수 있을 정도의 포로수용소 같았다.

화장실은 아주 오래된 옛날식이라 내 맘에 들진 않았지만 없는 것보단 나으니 그런대로 살아질 것이고, 부엌은 너무 엉망이라서 완전히 다 뜯어야 할 것 같았다.

이런저런 고민에 돈 들어갈 생각에 막막했지만, 집이라도 있으니 이런 고민도 하는가 싶어서 한껏 부풀어 있는 내 가슴은 가라앉을 줄을 몰랐다.


어떤 사람들은 하얀 집에 빨간 대문이 있는 예쁜 집에서 살고 싶은 로망이 있다고 말한다.

나의 집이다. 하얀 집에 빨간 문은 같으나 예쁜 집은 아니다.

오래된 페인트 칠에 삐닥거리는 이도 맞지 않는 무늬만 빨간색의 대문에 집의 뼈대가 되는 사이딩의 나무는 너무 오래되었다. 썩어서 어느 한쪽이 떨어져 나간 너무도 초라한 그런 집이다. 현실과 이상과의 차이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컸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은 아니라도 다른 집들과의 조화를 맞추기 위해서 여기저기 손을 많이 봐야 하는 집이다.

이 집을 살 때 부동산 중개인 직원의 나를 쳐다보는 눈길이 "이 집에서 과연 살 수 있을까?" 하는 조금은 측은하게 나를 바라봤다. 그 눈빛에 나는 속으로 다짐한다.

"두고 봐라! 이 단지에서 제일 좋은 집으로 만들 테닷!!!"


넓게 뚫린 거실 창으로 밖을 내다보니 앞마당은 엄청나게 넓었다.

"와!!! 이 땅이 다 내 땅이란 말이지.." 땅주인의 마음은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고 , 몸속에서 지렁이 기어오르듯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만감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땅을 지천하기 시작한 지는 그렇게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앞마당에도 나무 일곱그루가 자리하고 있었고, 뒷마당은 아예 숲을 이루고 있었다. 말 그대로 숲 속에 쌓인 산장이였다. 산장속의 집이었다.

금상첨화 건지 설상가상인지 비가 오면 계곡이 되어버리는 흐르는 물가도 있었다.

집 주변을 둘러싼 사방이 온통 초록색이라 집 주변을 온통 피톤치드로가득 차서 그 자체로 자연 공기청정기 역할을 했다. 나는 땅부자에 공기 부자까지 덤으로 가진 것이다.



타주에 이삿짐을 가지런 간 남편은 그곳에 남아 있는 애들과 친정 부모님을 데리고 내일 도착할 것이다. 나와 큰 아들은 오늘 이 집에서 첫날밤을 보낼 것이다.

차곡차곡 쌓인 먼지를 걷어내고 바닥에 드러누웠다. 천장이 보였다.

더러웠다.!!

갑자기 간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전과는 다른 서글픈 감정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런 집도 좋다고 하는 내가 왠지 불쌍해졌다.

절망은 희망으로 가기 위한 디딤돌이라 생각하고, 그 절망으로부터 한 단계씩 걸어 나온다. 다시 일어나야겠다.


내일은 아무도 걷어내지 않은 해묵은 낙엽을 치워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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