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잡아주고 싶은 도둑은 처음이네

버스 안 도둑을 만나다.

by kseniya

학교생활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무렵, 올야가 바래다주는 차를 타지 않고 서서히 버스를 타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타보는 내 나라가 아닌 타국에서의 교통수단은, 혹시나 내가 내려야 할 목적지를 지나칠까 두려운 마음에 긴장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해지면서 나에게 엄청난 자유를 가져다주었다.


내가 다니는 학교는 시내 중심가에 있어서 그나마 볼거리가 많은 중앙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박물관이나 대형 콘서트홀이 이 거리를 중심으로 위치하고 있어 사람도 붐볐고, 버스도 자주 다니는 편이었다.

학교 앞 버스정류장에서 집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어 그나마 마음의 부담은 덜한 편이었다. 낯선 곳에서의 버스가 늦기라도 하면 심적인 부담은 늘어나서 가슴이 콩닥콩닥 뛰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거기에 날이라도 어두워지면 심적인 부담은 불안감과 함께 배로 늘어나기 마련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나면 학교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친구들 집에 들러 잠깐 시간을 보내거나, 시내 중심가에 있는 서점들을 이용하거나 하면, 레닌광장에 위치한 버스 종점까지 가서 느긋하게 앉아서 오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비슷한 시간에 버스를 타는 이유로 버스 요금을 받는 사람이 같은 사람일 때도 많았다. 그 사람도 비슷한 시간에 자주 보는 내가 반가웠는지, 가끔 나에게는 요금을 받지 않고 그냥 태워주기도 했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탈 때마다 돈을 받지 않는 불필요한 친절이라서 부담스러워 어쩔 땐 그 사람이 버스에 보이면 피하기도 했다.

내가 불쌍해 보였나?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러시아의 주요 교통수단으로는 일반시민에게는 있으나 마나 한 무용지물인 택시를 제외하고 , 일반 시내버스인 압토부스 와 시내버스와 비슷한 노선으로 운행 중인 버스와 비슷한 노상 전차인 트롤 레이 부스, 그리고 일반적으로 트램이라 부르는 전차인 트람바이 이렇게 세 가지 수단이 대표적인 이 도시의 교통수단이었다. 트롤레이ㅐ공부8살부스와 트람바이의 차이는 트롤레이부스는 주로 시내 주변을 중심으로 운행이 되었고 , 트람바이는 외곽지역까지 운행이 되었다.

압토부스도 일반적인 버스 크기의 버스와 15명 정도만 태울 수 있는 작은 봉고차 정도의 작은 버스 두 가지 종류로 또 구분이 되어 있었다.


특이한 점이 대부분의 버스기사나 트람바이 운전사가 여자였다. 사람 좋게 생긴 적당히 넉넉하게 살이 찐 중년 여성들이 주로 운전을 했는데 , 그 이유는 일을 할 수 있는 남자들이 적은 것도 있고, 사회주의 시대에 여자들의 노동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해서 남녀평등의 일환으로 생활전선에 여자들이 나선 이유기도 했다. 실제로 집에서 일을 안 하는 여자들은 적정 노동연령을 채운 노인들 뿐이었다.



오늘은 길을 걷다 전날의 타냐의 머플러가 나의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가장 경멸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음흉한 사람들인데 그 날의 올야의 그 음흉함에 나는 몹시 심기가 불편했었다.

딸이 둘이라 다 같이 이쁜 걸 주고 싶은 마음은 엄마 마음으로서 이해가 가는 편이기도 했지만 , 차라리 나에게 솔직히 말했다면 나는 기꺼이 아마 나의 것을 내어 주었을 것이다.

나는 물건에 대한 애착이 그다지 없어서 악착같이 내 것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별로 없다. 남의 것도 관심이 없는 편이지만, 나의 것에 한 애착도 별로 없는 편이다.

올야는 타냐가 목에 두르고 있는 명백한 증거에도 꼼짝 않고 이해를 바라지도 않았고, 변명조차도 하지 않았다.

알아도 그만이란 것일까? 난 그때 따져 묻지도 못했다.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이 그리 좋지 못한 결과를 가져다줄 거라는 정도는 알만한 나이였으니 , 그 쯤에서 체념하는 것이 모두에게 조용히 지나가는 것이 나을 거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다. 다만 인간에 대한 지워지지 않는 명백한 상이 나에게 확실하게 박혀서 마음에 새겨진 것 외에는.....


오늘도 날은 겨울의 끝물 언저리 날씨답게 춥다. 사람들의 옷은 버거울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고, 그 옷 속에 파묻힌 사람들의 얼굴에선 아무런 표정이 읽히지 않았다. 단지 삶이 쉽지 않다는 무언의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내가 기다리는 버스가 드디어 내 앞에 서있다. 이날은 종점인데도 퇴근시간이라 사람들이 많아서, 앉아서 가는 거는 포기를 해야 했다. 버스가 떠나고 다음 정거장에 설 때마다 사람들을 쏟아내고 또 다른 사람들로 채우고 있었다.


나는 지금이나 그 때나 약간 칠칠맞은 편이었는데, 항상 가방을 열어 놓고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오히려 열어 놓고 다녀서 그런가 아무도 나의 가방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런데 내 앞에 있는 남자 , 누가 봐도 이상하리만치 얼굴이 훨씬 빨갛게 달아올라 있었다. 그의 불안한 눈빛은 나를 향해 있었고,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해서 그의 얼굴 위로 쳐다봤다. 그의 눈빛은 점점 더 흔들렸고, 그의 샤프카에 덮어져 있는 머리가 미세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의 눈빛을 따라 시선을 따라 내려오다 보니 어느덧 나의 가방의 위치까지 가게 되었다. 살짝 내 가방에 손을 넣어 보니, 이미 내 손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손이 닿았다. 속으로는 엄청 놀랐지만 아무래도 놀란 기색을 보이면 안 될 것 같았다. 서서히 빠지는 그의 손과 동시에 빨갛게 달아오르는 얼굴에서 그는 전문적인 도둑이 아님을 나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부쩍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 소매치기도 많았고, 여기저기 좀도둑이 기승을 부릴 정도로 어지러운 세상이었다.



그 당시 일반 시민들의 월급이 100불 언저리였다.

사샤의 소방관 월급이 150불에서 200불이 조금 안 되는 돈이었다. 그 돈으로 어떻게 살까 싶지만 다 살아지게 되어 있었다. 다만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살뿐이지.. 보이는 월급은 이 정도였으나 생각보다 사회주의의 서민들에 대한 보이지 않는 복지는 아주 단단해 보였다. 의식주의 모든 걸 책임지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에게 주택은 자식의 숫자에 의해 공급하는 기준이 있었고, 여기서는 가정경제의 큰 몫을 차지하는 아이들을 맡기는 탁아소 비용이 거의 무료였고, 우리가 알아서 해야 하는 일들이 그들에게는 국가의 몫이었다. 적어도 그 이전까지는......


삶은 변하고 있었다. 그 삶은 누군가에게는 이전보다 더한 감당할 수 없는 부를 가져다주는 기회를 만들어 주고. 누군가에게는 이제까지 안전했던 삶의 기본적인 수단마저도 해결할 수 없게 만들 엄청난 위기를 가져다 줄 거였다.

서민들의 삶을 위협하는 경제적인 대혼란은 그들의 표정에서도 드러나기 시작했고, 이제까지 다 같이 평등해 보였던, 겉으로 보이는 그들의 안전한 세상은 전혀 다른 방향의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거리에 걸어 다니는 외국인들은 그들에게는 달러 덩어리로 보였을 것이고,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달러를 몸에 지니고 다닌다는 소문이 날 정도로 달러를 남발하고 다녔다.

조용히 다니고 있는 우리 같은 학생들에게도 그 불똥은 떨어지기 마련인데, 아마도 이 남자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열려 있는 가방의 유혹에 빠져든 것이었을 거다. 조용히 손을 빼는 그의 순진함과 당혹감에서, 나 또한 그의 시선에서 눈을 떼고,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사건으로 일어날 수도 있는 날이었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거처럼 결론 났던 날이었다.



그런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나의 가슴은 쓰렸다. 내 가방이 도둑맞을 뻔했다는 안도감보다는, 부끄러운 그의 손이, 그의 눈 속에 비치는 처량함이, 그 시대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서.....

지금 나는 너무나도 풍족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너무나 많은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그 날의 그 눈빛이 나를 다시 상기시켜준다.


그 도둑은 분명 가장 일반적인 서민이었을 것이고, 어느 가족의 가장이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나의 가방이 꿋꿋하게 닫혀 있었다면, 그는 그 유혹에 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의 당혹한 눈빛과 서서히 빠지는 그의 손에서 느꼈던 모습에서 나는 혹시라도 모를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 싶었다.